편집국장 공인배

어떤 이들은 대개 성공한 사람을 동경하지만, 애써 외면하는데 능숙하다. 자기 노력이 크고 성과는 늘 적다고 생각하는 이 일수록 그 성공한 사람의 우월적 지위에 대해  천착(穿鑿)되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격차에 비례하여 입게 될 상처를 미연에 피하려는 방어기제다. 그런 이들에게 소위 소수의 '오르지 못할 나무'들은 세상 밖에 존재한다. 누구든지 차별없는 환경에 속해있고, 그 활용을 제한받지 않지만, 이런 지극한 천부의 기회를 어떤 이들은 그대로 방기하고 있다.

대부분 성공한 이들의 시작은 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였다. 호기심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낸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 역시, 오랜 세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한 촉수를 거둔적이 없으며, 이 세상을 바꾼 테크놀로지는 결국 거기에 필요했기에 발견해낸 소산이다. 그가 가장 최근에 만든 '아바타'는 완전히 새로운 영화제작 기술의 산물로 평가되고 있고, 그는 영화계에서 "영화 예술가들을 위한 창조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는 몇달 전 한 강연에서, '아바타'는 공상과학 소설에 빠져지냈던 유년시절과 자연환경을 탐구했던 학창시절, 그리고 나머지 깊은 바닷속 탐사에 심취해 온 여정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상상했던 그 어떤 장면보다도 다채롭고 이국적인 모습을 지닌 그 바다에 그가 얼마나 빠져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어쩔 줄을 몰랐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탐닉(耽溺)을 수반하며 중독성을 지닌다. 그것은 일을 신명나게 해낼 수 있는 흥(興)의 자가발전소이며,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관계'들의 결합을 촉발한다. 제임스 카메론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바타'에서 본체를 이탈한 의식(意識)은 시공을 초월한다.

제3의 유기체로 이동한 의식은 아바타의 생명활동을 작동시키고 신세계 '판도라 행성'이 열린다. 여기에서 그가 창조해낸 외계생명체나 외계세상의 표본은 직·간접적인 방법에 의해 깊은 바닷속에서 채집된 것이었다. 그는 유년시절, 전설적 다이버인 자크 쿠스토가 텔레비전에 등장해서 보여준 심해의 경이로운 세계와 생물들을 접하면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었다. 우주선을 타고 실제로 외계로 나가보기는 가망 없을 지 몰라도 자크 쿠스토가 보여준 곳들은 자신이 진짜 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격정적으로 매료되던 그였다. 그런 15살 카메론의 열망은 스쿠버다이버가 되는 꿈을 이뤘고, 그후 40년 동안 3,000시간을 바다에서 보냈다.

그런 신명과 탐닉의 배후, 또는 그 원류(源流)는 어디인가. 제임스 카메론의 본류를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가 유년에 관계를 설정한 이래 단 한번도 놓아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놓지 않을 끈의 시작지점에는 놀랍게도 그와 너무나 닮은 이가 있다. 다름 아닌 미래과학자 '아서 클라크'다. 그는 1917년 영국 서머셋주 마인헤드에서 태어낫지만, 스쿠버다이빙의 매력에 빠져서 1956년 영국을 떠나 콜롬보로 이주한 이후 스리랑카 국적을 취득했을 정도다. 그는 물속에서 우주의 무중력 느낌에 가장 가깝게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여기에 착안하여 지구 밖에서 정지한 채 국가간의 통신을 전달해 주는 위성에 대한 논문을 1945년 발표 했는데, 이는 실제로 정지궤도 위성을 쏘아 올린 1963년에 20년이나 앞섰다.

특히, '아서 클라크'의 3대 법칙은 영화 제작자 제임스 카메론의 진화를 추동해 왔다. 우선 카메론은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는 마술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법칙을 신봉한다. 또 '가능성의 한계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계를 넘어 불가능한 곳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는 것'이라는 법칙은 그의 좌우명이자 지표다. 그는 거듭 기적을 일으키며 '아서 클라크'의 법칙들을 명증해냈다. 그 첫번째로, '어비스'를 제작하면서 특정한 서사 구조를 풀어나가기 위해 액체로 된 생명체를 창조해야 했고 영화사상 최초로 CG 애니메이션 기술을 도입해 전세계 관객들을 명백한 마술에 빠져들게 했다. 그는 다시 '터미네이터 2'에서 액체 금속 인간을 창조하는 마법을 써서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며, '아바타'에서는 비주얼 효과와 CG 효과의 한계를 완벽하게 뛰어넘어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실적인 캐릭터를 창조했다.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완전하게 메워내는 마법을 구현한 것이다.  

전인미답은 존중하는 이들과 함께 가야 할 곳

그가  영화제작사(映畵製作史)에서 전인미답의 신천지에 도달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렇게 구축된 탄탄한 사고(思考) 시스템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은 그 힘을, 같은 목적을 추구하며 가능성의 한계를 가늠하고자하는 이들과의 결합에서 찾고 있다. 극한의 환경을 기꺼이 함께한 유대감을 얻으면 서로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품게 되고,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명도 못할 유대감과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면 리더에게는 수평적 리더십이 생긴다. 이렇게 한 가족이 된 팀은, 영화사적 측면에 앞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를 찍는 근본적인 방법과 과정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들은 한 번도 가본적이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들을 거침없이 개발해 냈다.

제임스 카메론의 역정을 돌아보면 그는 늘, 현실을 극복하지 않으면 기회를 잡을 수 없는 무심한 환경 속에 있었다. 그가 바다로 가기 위해 스쿠버다이버를 꿈꾸었을 때 그는 캐나다 내륙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바다가 965킬로미터(600마일)나 떨어진 곳이었다. 결국 카메론은 한 겨울, 뉴욕주 버팔로의 한 실내수영장에서 자격증을 갖게 된다. 스스로 살아돌아오지 않는 한 구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깜깜한 적대적 환경 그 심해((深海). 그의 상상력에 비하면 자연의 상상력은 실로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그 바다를 그는 그렇게 만났다.

그는 북대서양 해저 약 4km(2.5마일)의 500℃ 열수(熱水) 분출구 주변에서, 화학 합성을 하는 환경에서 서식하는 생명체들을 만났다. 햇빛에 의존하는 생태계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외계 생명이었다. 호기심과 과학적인 요소에 온전히 지배되고 있던 그에게 이런 심해(深海) 탐사가 미친 영향은 '아바타 제작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직도 잠수를 할 때면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절대적 경외심을 느낀다. 바다에 대한 그의 사랑은 현재진행형이고, 처음처럼 여전히 강렬한 감정이다.

그의 말대로, 혁신을 요구하는 중요한 시도들은 반드시 위험을 수반한다.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매혹되었는지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