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동시성 1. 여행]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휴가철이다.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이들이 도시를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급히 떠나다가도 문득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를 화두로 삼게 되는, 한 때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할 곳이 필요한 때다. 다양한 의미들이 여러갈래 길 위에서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공통적으로 '동시성'을 단호하게 배척하려 하지만 '비동시성'은 허락되지 않는 희망일 뿐이다. 오히려 일상에서 보다 더 큰 행렬을 만들어낸 동시성의 기염에 여행자의 존재감은 속절없이 위축되고 만다.

지난 달 말부터 지난주 초까지의 제주도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섬사람들에게는 낯선 공연장과 전시장에 방문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도시의 여느곳과 다르지 않은 공연과 전시, 차별성을 갖추지 않은 낯익은 것들과의 만남을 위해 수백킬로미터 바다를 건너 온 것이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뙤약볕에 노출되거나 염도 높은 습기에 전신을 포획당하여 숨막히는 행렬에 섞임, 불산지옥인들 어떠랴. 그런 고통을 감내하는 고행(苦行)도 여행의 한 목적이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어느 무심하고 울창한 삼나무 숲에서, 머뭇거리거나 목청을 높이지 않는 숲속붙이들을 만나서 여행자는 여행지의 고즈넉한 태도를 발견하기도 한다. 풀벌레나 매미들의 놀라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제주도란 이런 곳이구나. 준비하지 않았으나 경건해지는 마음에 스스로 놀라며 모조리 거부감을 털어낸 상태의 태도, 여행이란 그런 것이구나. 이런 숲을 둘러싼 바다는 어떨까.

해가 진 뒤 바다에 당도한 여행자는 탈피(脫皮)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섬은 어느 지점에서 더이상 뛰어들지 않고 멈춰서서 버티어 평온한 올레길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긴장의 역설에 저항하는 밤바다와 깎아지른 벼랑 뿌리에 부서지는 포말은 오징어잡이 선단에 조명되고 있었다. 덕분에 길은 여러 줄기 빛에 일렁이며 역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다 쪽은 오징어 잡이 선단의 환한 불 빛에 더 칠흑이 되는 또 한번의 역설을 연출하고, 섬은 숲 속 어둠속에서 보이고 싶은 것만 드러내고 있었다. 멀리서 섬을 향해 돌진하는 투명한 어족(魚族)의 실루엣이 하늘거리고, 어족을 품어내는 섬은 생존본능이 아니라 황홀한 빛에 눈이 멀어 생사를 초월했다. 무모한 탐미(耽美)의 무리가 몰려드는 선경(仙境)의 둘레를 걷는 여행자는, 내밀한 곳에 감춰 두었던 상처를 치유하며 자각증상의 각질을 벗겨내고 새살이 돋기를 기다렸다.

여행의 또 다른 의미는 '그대로 놓아 둠'이 아닐까. 여행자와 여행지 모두 그 필요성을 공감한다. 하지만 탐욕은 그런 명제를 하위가치로 전락시키고 과잉의 문화를 양산한다. 이 지점에서 여행지가 여행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목적을 추구 할수록 여행지는 여행자로부터 멀어진다는 역설을 대면하게 된다.

[동시성 2. 교육] 전라북도는 지금 자율형사립고 문제로 열병을 앓고 있다. '자사고'는 이른바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 중 하나로, 또 하나의 사회적인 논쟁을 촉발한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현실을 투영한다. 공교육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 사교육비를 절감한다는 취지의 발로다. 그동안 교육평등주의에 경도되어 봉착했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의 일환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으로 대별되는 쪽에서는, 자사고는 외국어 고등학교나 현재의 자립형 사립고처럼 입시 위주의 교육 학교이고, 일부 부유층만을 위한‘귀족학교’라고 주장한다.

논쟁은 꽤 긴 시간을 끌어 왔지만, 사안이 복잡다단했던 탓에 직접 대면하기를 기피해 오던 전임 전북교육감은 임기 말에 전격적으로 도내 자사고들을 지정 고시 처분했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의 주자였던 새 교육감은, 학교법인의 법정부담금 납입의 불확실성과 고교평준화에 미치는 영향, 불평등교육 심화 등을 이유로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당사자인 학교법인은 가치관의 문제를 취소 사유로 내세우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행정의 독단에 맞서 법정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맹렬하게 천명하고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입시지옥을 해소한다는 미명 아래 수 많은 정책을 폈으며, 일선교육의 폐부까지 들어가 개입하다 갖가지 충돌을 야기하였고, 어느날 흐지부지 정책을 철회하는가 하면, 금새 새로운 정책으로 교육을 정치적 목적에 순치(馴致)시키기를 반복하면서 혼란을 조장해 왔다. 악순환은 악화를 낳았고 교육을 과열시켰다. 그렇다면 이번 '자사고' 프로젝트가 궁극적인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까. 우려와는 달리 자사고가 성공한 정책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계의 한 축을 대척점에 서게 한 실정은 다른 수 많은 가능성을 지우고 있다. 숲을 보지 못한 고찰, 그런 한계를 아는 정책은 여론 수렴에 인색할 수 밖에 없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이 필요 할 따름이다.

[동시성에서 벗어난 비동시성]

아주 오래 전 중국에 나무를 잘 기르는 곽탁타라는 이가 있었다. 탁타는 나무 심는 것을 생업으로 하였는데, 모든 장안의 권문세가와 부자중에서 관상용이나 열매를 파는 이들은 모두 다투어 탁타를 맞이하여 그를 시켜 나무를 길렀다. 탁타가 나무를 심거나 옮겨 심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 크고 무성하여 일찍 열매 맺어 번성하였다. 다른 나무 심는 이들은 비록 그를 엿보고 본받아 따라하려 하여도 같게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비법을 물어보니, “저는 나무로 하여금 오래 살고 번성하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비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무의 천성에 따라서 그 본성에 이르도록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모든 나무의 본성은 그 뿌리는 펴지려고 하고, 북돋은 땅보다는 평평한 땅을 좋아하고, 그 흙은 처음에 뿌리내렸던 것을 좋아하고, 그 흙의 다짐은 치밀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주십시오. 또, 이왕 끝냈다면 움직이지 말고 생각하지 마시고, 떠나서 다시 돌아보지 마십시오. 나무를 심는것은 마치 자식처럼 하고, 그것을 방치함은 마치 버린것 처럼 하면, 하늘로 부터 받은 것이 완전하게 갖추어 지고 본성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나무가 자라는 것을 해치지 않을 따름입니다. 다른 나무 심는자들은 그러하지 않으니, 뿌리가 말려지고, 흙을 바꾸니, 그들이 흙을 북돋음은 혹여 ‘지나치지’ 않으면 ‘부족'합니다. 혹은 이것과 반대로 하는 사람은, 나무를 아낌이 너무 마음을 쏟고, 걱정함이 너무 부지런하여, 아침에 보고 저녁에 어루만지고, 이미 떠났으면서 또 다시 돌아봅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 껍질을 손톱으로 긁어 나무가 살았는지 말랐는지를 점검해보고, 그 뿌리를 흔들어 봄으로서 그것이 흙 안에서 성긴지 치밀한지 살펴보니, 나무의 본성과는 날로 멀어지게 됩니다. 비록 아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해치는 것이요, 비록 걱정한다고 하지만 원수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가 나무 기르는 것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또 어찌 능히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