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 아이들의 교육 현장이 갑자기 가까워졌다. 학교와 학부모들이 함께하면 보다 질 높은 교육이 실현될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두루 잘 미친 덕이다. 하늘 높이 신장된 교권에 감히 도전 할 학부모는 없을 것이니, 학부모들의 역할은 그야말로 '협력'에 그칠 일이다. 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일은 예산부족으로 미뤄 온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것일 터이니, 학부모들이 필요한 재원을 경쟁적으로 조달하는 과정에서 학교 전반에 위화감이 조성될 것이 농후하다. 과거, 그런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그런 기류를 타고, 사라졌던 치맛바람의 망령이 도처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스승의 날을 한 달 앞선 4월 말 어간에 선생님들이 학부모 집단으로부터 이미 옷이나 장신구 등을 선물로 받았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목이 집중되는 스승의 날 전후에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얼씬거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소문도 따라 붙는다. 이처럼 지능화 되고 양성화 되는 촌지 문화는 이 정부의 빈약한 마인드가 초래한 것이지만, 들여다 보면 아이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학부모들의 몸부림이 선연하다.

도대체 이런 역기능이 확연한 데도 전교조나 교육 일선에서는 왜 침묵하는 것인가. 자신이 거기 속해 있으면서도 내 일이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방관은 종국에 공멸을 초래 한다. 교권은, 정부가 새 정책을 수립하려 할 때 가장 먼저 일선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교풍이 정착되어야만, 비로소 신장된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던지는 질문이다. 교사들에게 학교는 노동현장에 불과하고, 학생들은 그 이익창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각의 조소를 성찰의 기제로 삼아본 적은 있는가. 학교현장에 교원평가제가 상륙하는 등 '개방'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바람직한 '스승'은 눈에 잘 띄지 않으니, 교사들의 나태한 타성은 만연한 정도에 이른 것인가. 이런 지형에 학교 현장이 학부모들에게 가까워져서 촉진 할 순기능은 무엇인가.

국민 대다수가 교원평가제를 지지했고, 부적격한 교사를 검증해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보인 것은 그런 교육철학의 부재와 교사에게 요구되는 도의적 책임을 방기한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그나마 도입된 교원평가제는 이해당사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본래 취지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평가가 우선되지 않고 그런 평가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가면서 교원평가제를 시행해야 할 명분은 전무하다. 교육현장은 학교장의 권력을 증강하여 전교조를 장악한 실리로 충분한 것인가. 그 시작의 저의가 궁금해 지는 오늘이다.

본질은 성실한 스승의 희소성이다.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고 목표를 보여주는 스승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교과서 밖에서 인생의 지표를 세운 스승이 절실하다. 교사 스스로 스승이 되려하지 않고, 제자를 삼으려 하지 않는 불통의 지형이다. 완전하지 않더라도 끊임없는 자기성찰로 사표(師表)가 되며, 꿈과 열정을 배가하는 스승이 우리 교육 현장에 돌아와야 한다. 자신을 속이면서 신독(愼獨)을 등진 교사가 발 붙일 곳이 없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교육의 문제는 일선 교사가 가장 잘 안다. 교사들은 더이상 정치적으로 부침을 거듭하는 교육정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교사의 힘은 학부모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마음에 참 스승이고자 하는 성실함이 있으면 그것은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가 보지 않을 때에도 스승이 아닌 것을 경계하고 근신하며, 누가 듣지 않는 때에도 스승의 길을 벗어났는지 자문하면서 두려워하는 신독(愼獨)을 일상의 지표로 삼는 스승이 필요하다. 전승되는 잠언을 살피니, 자신을 속임이 없이 그 뜻을 성실하게 갖는 이 라면, 비로소 제자를 얻을 수 있게된다. 그런 스승은 학부모에게도 스승이 되었다. 불의에 저항하는 스승은 그런 때에 존재했다.

교사와 학생이 주어진 시간을 소모하면, 속박일 뿐이었던 서로의 관계를, 탈피할 뿐인 오늘이다. 옛 사람들은 제자가 한정 된 지식의 수용자에 그치지 않고,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스승이 될 재목으로 여겼다. 제자에게 스승은 '미래'다. 그 정도를 정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들이다.

스승의 시작은 무자기(毋自欺)

1000여년 전 당나라의 대문장가인 한유는 스승이 해야 할 세가지 일을 전도(傳道)와, 수업(授業)과, 해혹(解惑)으로 정리했다. 지금 우리들의 스승들은 완전하든 불완전하든 '수업'을 행하고 있으니, 거기에 전도나 해혹을 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나친 욕심일까. 과거, 우리의 진정한 스승들은 늘 자신이 안 팎의 불의에 저항하되 부끄러움이 없는지를 살피고, 자신의 잘못에 준열한 채찍을 가했는지를 묻되, 한 점 의혹이라도 있으면 당장 스스로를 가두고 맹성(猛省)의 길을 택했다. 자신을 속일 수 밖에 없는 곳에 머무는 것은 자신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악이라는 신념에서 비롯한 결정이었다. 사람이 아닌자에게 전하지 않았듯이 스승 스스로에게 의혹이 있으면 전하지 못한다. 사람을 만들고 지식을 전하며 흔들림 없이 '옳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스승을 낳는 스승의 길이라는 옛 스승들의 가르침이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은 평생을 불의(不義)에 섞이지 않고 칩거와 방랑으로 생을 마쳤지만, '매월당시집'과 '금오신화'를 남기는 등 대문호가 되었고, 중민(重民)에 기초한 왕도정치의 사상을 확립하는 사표(師表)가 되었다. 단계(丹溪) 하위지는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부름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녹봉(祿俸)은 거절했고, 어린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는 등 불의(不義)에 저항하다가 끝내 순절한 자신을 속이지 않았던 사표다. 이 밖에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난을 택한 스승들은 많다. 하필 김시습과 하위지를 거론하는 것은 이들 스승의 극단적인 가르침 정도는 돼야 각질 두꺼운 타성을 비집고 들어가지 않을까 염려 된 탓이다.  
다시, 스승은 추억이다. 제자의 거울이며, 희망이고, 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