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이 일을 하며, 다하고도 드러내지 않는다. 깨달은 이는 자기를 앞세우는 일 없었으나 언제나 앞에 있고 자신을 버리지만 항상 중심에 있다. 사사로움이 없으니 능히 그 사사로움도 이루어진다.

도덕경(道德經)의 본류에 흐르는 담론이다. 도가(道家)에 입문한 바 없는 문외한으로서 그 현학(玄學)을 논할 수는 없다.

다만, 도가를 창시한 노자(老子)의 가르침(無爲自然)에 기대어 살펴 보면, 천생 범부의 눈에도 이 세상을 지탱하는 하찮고 우스운 것들,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거들먹거리지 않는 '산소'나 '물'같은 수 많은 존재들이 그 가치를 드러낸다.

그 본류는 삼라만상의 저변에 흐르되, 속세의 관자(觀者)에게는 아무래도 삶의 바른 도리로 빛난다.

그런 관점에서, 도가의 본질은 무한 자유에 바탕을 둔 관조(觀照)이면서, 속세의 정치에 마주 할 때는 그 나아갈 바를 밝힌다.

정치가 물과 같이 최고로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 만물을 이롭게 하되 함께 가며 다투는 법이 없고, 뭇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으로 흐르는 물, 그런 마음으로 사람 생각을 깊게 만들고, 물같이 줘서 사람들이 서로 믿게 하면 두루 이로울 수 있다는 설파(說破)다.

정치가 참으로 물을 닮게 되면 상생의 도(道)에 능숙해지고, 때에 맞게 움직이며, 다툼이 없으니 허물도 없다.

그러나 현실정치에서 도가의 담론은 그야말로 현학에 불과하여 먼지 수북한 서고에 밀려난 처지다. 

오늘, 익산지역이나 중앙의 정치는 모두 자욱한 흙먼지가 가라앉지 않는 지점에 놓여있다.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위정자는 한사코 진 쪽을 뭉개고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굳건히 하는데 진력한다.

정글이 된 정치판의 복마전(伏魔殿)에는 간계(奸計)만이 득실거린다. 공존공영의 이념은 승자의 전유물일 뿐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적자생존의 논리는 민주주의 광장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상대 다수에 의해 배제된 패자는 대중으로부터 먼저 외면 받고 전의를 상실한 패자는 무기력증에 빠진다. 패자의 이념은 이미 선거 결과와 동시에 고형화되어 물처럼 흐르지 못한다. 대중 속의 산소가 되지 못한 패자는 늘 대중에게 낯설고 나약한 존재가 된다.

선거판에서 승부를 가리게 되는 시기가 도래하면 각종 대형 폭로 이슈들이 난무하는 것은 그런 적자생존의 냉혹한 현실에서 비롯한다. 결국 패자의 한방주의는 네거티브 선거판의 진앙지가 되고, 혼탁선거는 갈수록 심화될 수 밖에 없으며, 위협과 폭로로 한 탕을 노리는 정치 브로커들을 양산한다.

그 진원지는 독선과 전횡을 일삼는 승자 쪽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나, 재단하는 칼로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덤비는 무모한 독단 역시 경직에서 기인한다.

이는, 무슨일이든 갈등과 반목을 낳고 후유증을 남기는 기제다. 당초 승자가 되기 전에 위정자가 부르짖던 공존공영의 이념은 희박해져 더이상 지표가 되지 못한다.

물같이 주고 대중을 섬기라

오늘의 위정자들은 권력의 연장을 지상과제로 삼는다. 무슨 일이든 가급적 부산을 떨며 큰 소리를 내어 하고, 한 일은 최대한 드러낸다. 너무나 많은 일들을 작위적으로 일으켜서 대중이 혼란에 빠지곤 한다.

대중은 위정자의 역행에서 비롯하는 그 일들이 공적인지 사적으로 시행되는 것인지 모호한 경계에서 그런 일들과 관련하여 무감각해진다.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위정자는 반드시 공익을 빙자하여 공공의 그릇에 사익을 담아 편취하는 도적이다. 치부를 감추려는 본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비전을 노래하는 논객들은 양산하지만 비극을 문제삼는 논객들을 말살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래로 흐르는 속성이면서 행복만을 추구하는 대중은 자신이 길을 잃은 것 조차 망각하곤 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위정자가 대중이나 패자를 주어진 임기 동안 그저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경우를 무수히 목도한다.

특히 도래할 선거 국면에 들어가서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는 자신감에 넘치는 위정자일 수록 자기와 주변 이외의 것들을 더욱 업수이 여긴다.

그들 위정자가 대중은 물이나 바람처럼 순리를 따른다는 걸 간파한 탓이다. 위정자는 물길을 갈라 다투게 하고 열기를 조장하여 바람길을 돌리는 말초적 수법에 도취된다.

오늘 대부분 위정자의 염두에는 대중이란 이름도 냄새도 없는 바둑돌에 불과 할 뿐이다. 그 대중이 자신을 존재케 하는 물이거나 산소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발은 땅을 딛고 머리로 하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그 깊은 도가의 현학을 현실의 지표로 삼으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위정자에게 대중을 하늘 같이 섬길 것을 권유 할 수 있는 것은 위정자란 대중의 필요에 의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승자와 패자의 파트너십을 담론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경쟁자의 참여가 위정자로 하여금 대중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건강한 긴장관계가 승자와 패자 사이에 형성될 때 위정자는 비로소 대중에게 물이 되고 산소가 될 수 있다.

승패는 숫자로 갈린다. 그러나 숫자가 혹은 권력이 되거나 혹은 짓밟혀 버려지는 것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

한 방울의 물도 쓰임이 있고, 한 번의 호흡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우도 많다. 천생 범부의 관점에서 도덕경을 살피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없이 자기 일을 하고, 아낌없이 주면서 바라지도 않는 하찮은 것들의 가치를 발견한다. 참으로 물같이 주는 위정자가 절실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