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방송이 격랑속에 빠져들었다. 문화방송 사장의 임명권과 해임권을 가진 공익 법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난 8일, 본래적 기능인 방송의 '자율권 수호'와 '공영성 강화'를 스스로 부정하면서 부터다.

이날 방송문화진흥회는 문화방송 엄기영 사장의 의사를 묵살하고 본부장 인사를 강행했다. 이는 곧 지휘권 침탈이다.

엄기영 사장은 사퇴의 변에서, 방송 독립과 경영 자율은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가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화방송은 장악하려는 쪽에서 보았을 때, 사장만 갈아치우면 앞잡이 방송으로 만들기 쉬운 곳이라는 등식은 태생적인 한계에서 비롯한다.

방송문화진흥회의 모든 지분인 70%가 22년 전 방송공사 KBS로부터 양도 받은 것이다. 당시 KBS의 최대주주는 정부였고, 방송문화진흥회 역시 국영법인이다.

따라서 방송 독립과 경영 자율은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방송문화진흥회가 설립될 당시 과연 당초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냐는 우려를 낳았던 배경이다.

하지만 다행히 방송문화진흥회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나름의 자리매김을 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정부의 '불간섭주의'가 이룬 소중한 성과였다.

덕분에 국민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는 방송을 갖게 되었다. 문화방송은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국론의 방향타가 될 수 있었다.

국민으로부터의 권력을 지향하며 스러져간 백년 '순교'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공든 탑이 무너졌다.

문화방송에는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거나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질 공산이 높아졌다.

문화방송이 암흑기로 퇴행하는 것을 막으려는 민주세력과 국가권력간의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MB정부는 전과자 양산 공화국이 될 것인가.

살펴보면 법과 제도는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며, 권력의 흉기가 될 수도 있으니 우리에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국영법인 방송문화진흥회는 단초부터 권력이 손만 내밀면 잡고 흔들 수 있는 재갈을 물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세번이나 바뀌는 동안 방송문화진흥회는 방목 되었다.

문화방송은 그런 토대 위에서 언론자유가 민주주의의 척도라는 실증을 보였다. 광우병 보도를 비롯한 4대강 사업, 용산참사, 세종시 수정, 언론법 개정 등 대형 사안들에 대해 공정성이 담보된 보도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상대다수 국민 여론을 반영하고 공익의 잣대를 놓지 않는 논조가 유지 되어 나왔다. 그런데 이 정부는 이 모든 일이 일장춘몽이었다 여기라 하는 것인가.

여론다양성시대 종언, 불신의 시대 도래

언론을 도구로 삼으려는 발상은 야만에서 온 것이다. 이제 문화방송도 KBS나 YTN처럼 순치(馴致)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정부는 이미 KBS사장을 탈법적으로 해임하고 YTN 사장으로 특보 낙하산을 전격 투입해 속전속결로 접수했다.

그 과정에서 겪었던 민심이반의 경험 탓인지 이번 문화방송 장악은 방송문화진흥회를 내세운 차도살인(借刀殺人)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목소리가 단일화되고, 여론 다양성은 사멸해 갈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언론기능이 독재시대로 퇴보하고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그 때로 돌아 갈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의 국정홍보 방송이 국민들에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신분열 환자가 MB 정부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돌아보니, 이 정부의 문화방송 장악 기도는 집요하고도 치밀했다. 출범 직후의 피디수첩 때리기는 그 정지작업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 안전한가'편은 왜곡.편파.정부전복 프로그램이 되어 경찰과 검찰, 방송통신위원회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피디와 작가들의 집까지 샅샅이 압수 수색하면서 공안정국을 연출했다.       

이어진 언론법 개정은 표면적으로 거대 신문사들의 방송 겸영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문화방송을 압박하는 수단이었다.

속출할 민영방송사들은 한정된 광고시장을 잠식할 것이고, 문화방송의 자생력은 기존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뒤 이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들이 친여적이고 보수적인 인사들로 물갈이 되면서, 문화방송 경영진 퇴진을 조장했고, MB 정부의 언론장악이 완성단계에 놓이게 됐다. 

이 정부는 이제 무엇을 얻을 것이라 믿는가. 식물언론을 병실에 가두고 제 자식을 해친 방송문화진흥회와 같은 보호자들을 내세워 정권의 나팔수 역을 대신하게 할 것인가.

지금 점령한 고지가 천년 한나라당을 보장할 정권 연장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보수 우익의 편향성을 유니폼으로 입고 독선과 독단의 무기를 전진 배치했으니, 그 막강함의 위세로 무혈 수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인가. 돌아보라 그런 치기에 찬 자화상을.

자유를 억압하여 망국적이고 소모적인 투쟁과 끝없는 갈등을 부추기는 일은 당장의 욕심을 위해 내일의 파멸을 부르는 자살 행위다.

폭약에서 기폭관과 도화선을 제거했더라도 마찰에 의해 폭발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오늘 날 언론자유를 공유하는 지구촌의 네트워크는 마이크로 단위의 속도를 자랑한다. 한 곳이 막히면 그것을 뚫기 위한 작동이 시작 된다.

이 정부는 어는 순간에 일어날 대내외적인 폭발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