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관련 결정은 국민을 돌연한 공포에 빠뜨렸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법'이 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린 국면이다.

국가 최고의 법리판단 기관이 그런 우리 법의 모호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크다.

입법절차의 하자를 확인하면서도, 그 법은 유효하다는 결정을 따르라는 것이다. 법을 만들 권한을 위임받은 선량들의 찬·반 표결이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부당한 결과에 따른 미완의 법에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체제의 이념이 먼저 용인하지 못한다.

이런 헌법재판소를 계속 존치시키는 것은 국민들에게 너무나 큰 위험을 수용하도록 강요하는 일이다.

국회의 미디어법 심의 쟁점은 대기업에 언론 소유를 허용하는데 따른 부작용이었다. 보수매체와 대기업들의 합종연횡으로 언론의 산업화와 여론 독과점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법이 내포한 역기능은 사회적 저항을 불러 갈 길 바쁜 우리사회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높다.

정부는 이미 이 법을 즉각적이고도 단호하게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장, 이에 비례하는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판이다.

행정부가 주도한 법의 독소조항과 입법부 여당의 부당한 입법활동, 사법부 최고기관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결정 등 이 나라의 권력 3부 모두가 법과 민심을 저버렸다.

국민적인 불신과 좌절이 뒤섞인 혼란 국면이다. 저항의 양상이나 수위는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의 불행한 현실에 기인한 암울한 미래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악화(惡化)는 인문.사회.경제 전반의 희망을 넘어뜨리는 도미노의 시작이 되어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불러 올 공산이 높다.

오늘의 국가적 파동과 유사하게 절차적 정당성의 가치를 무너뜨린 예는 민선4기 익산시에도 수두록하다.

특히, 출범 초에 입지선정의 절차상 하자가 명백한 소각장(신재생자원센터) 건설을 강행한 것은 민선자치 이래 미증유의 폐해를 낳았고, 그 폐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선 민선3기는 임기 말에 소각장 입지선정 공모에 참여한 부송동 해당지역의 유치신청 서류가 위조되고, 행사되어 심각한 하자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입지 결정을 철회하지 않고 고시했다.

민선4기는, 특정인이 서류를 위조하고 행사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어 확정판결을 받았는데도, 소각장 건설업체를 선정하는 등 사업을 계속 밀어붙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민선3기 말에 해당지역 주민들이 제기한 '폐기물처리시설(소각장)입지결정·고시 및 변경결정·고시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심리한 법원은, 민선4기 출범 초에 "소각장 결정·고시처분은 위법하게 구성된 입지선정 위윈회의 의결에 기초하여 행하여져 위법하다. 그러나 당연무효로 돌릴 만큼 객관적으로 중대한 하자가 아니라 그 처분을 취소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익산시는 최소한 소각장 입지선정 절차를 취소하고 입지를 재선정해야 할 법적인 책임을 안게 되었지만, 이 판결과 관련하여 아무런 석명(釋明) 조차 없이 소각장 건설을 강행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의 가치를 포기했다.

이는, 당장 주민들간 분열과 반목을 야기했고, 행정행위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을 초래했다. 특히 이는, 공공영상미디어센터나 청소년유스호스텔과 같이 위법한 절차로 강행되는 사업들을 양산하고, 모든 신규사업들이 불신과 의혹을 받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불신은 단절과 파멸의 기제다. 법이 부여한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힘의 논리로 세운 권력은 소통부재와 폭력을 부르는 속성을 지닌다.

민주국체(民主國體)를 이루는 법이 무너져 약육강식이 질서가 되는 곳에, 권력 3부나 지자체는 저 원시의 용족, 호족, 늑대족, 뱀족 등 '탈'의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