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지핀 행정구역개편론의 도깨비 불이 질풍(疾風)을 만났다. 지역간 통합논의가 거대한 불길을 이루며 건조한 초가을의 국토 전역에 급속하게 번져나가고 있다. 상당수 자치단체들은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상황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정부와 정부의 의도에 발맞추는 일부 자치단체들이 이 낯선 상대에게 지나치게 자심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역간 통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한 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과 한 달 전에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행정구역개편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부가 마련한 행정개편 예상안의 짝짓기는 지역주의 해체와는 전혀 무관하다.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일절 해명이 없다.

단지, 지역의 단위를 키울 뿐인 구획 재편이 국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달라지게 한다는 것인지 논의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게다가, 행정안전부의 추진절차를 보면, 자치단체의 통합 건의 시한은 이달 말까지로 촉박하다.

오는 12월 초에 통합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내년 7월 1일 통합자치단체를 공식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하여 공론화 과정이 전면 생략된 가운데, 오직 국비지원 인센티브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자치단체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각 자치단체들은 벼랑 끝에서 단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단시간 내에 가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실정이다.

낙오하면 궁핍한 고립무원에 떨어지게 된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며, 국민이 하염없이 왜소해지는 국면이다.

정부가 지금 직시해야 할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이해 득실을 따지며 한 껏 욕심에 부풀어 있는 국민이다. 가이드라인도 없는 '광역화'라는 모호한 깃발을 들고 영토 전쟁에 나선 국민이다.

지역간 통합에 나선 각 지역들이 서로 겹치는 통합안을 건의할 경우, 무엇으로 조율하고 조정할 것인가. 이것이 결격 사유가 되어 주민투표도 실시하지 못한채 통합의 대열에서 밀려나는 지역이 속출 할 것이 아닌가.

더구나, 지금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정부의 행정개편 당위만 있을 뿐, 자치단체는 통합논의를 이끌 구심점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부터 행정개편에 따른 공론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자율통합지원법은 자치단체나 의회 또는 주민 등 어떤 주체든지 지역 통합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누구든지 통합의지만 가지면 되고 지역내 각 주체가 합일점을 찾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일단 통합을 건의한 지역의 통합 안은 동시 주민투표에 붙여지고, 투표율이 10%에 그쳐도 그 결정은 유효하다.

통합에 관심을 갖고 투표장으로 나서는 주민들은 대부분 찬성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등식을 염두에 둔 장치다.

어떻게 든 지역들의 덩치를 키우면 그만이라는 식의 행정개편 추진 이다. 건국이래, 지리적 역사를 기반한 문화공동체를 재편하는 일에 이렇듯 무개념으로 덤벼드는 정권은 없었다.

제한 된 정보와 지역내 또는 지역간 논의의 부재 속에서, 이익의 분점을 미끼로 막연한 기대심리를 부추기는 이런 따위의 정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지금 도깨비 불에 홀려있는 국민이 각성하는 그날이 국론분열의 시작이 될 공산이 높다. 통합을 성사시킨 지역과 실패해서 고립 된 지역은 물론이고, 통합을 이룬 지역 조차도 이런 원칙의 부재 속에서는 지역간 이기주의에 따른 충돌로 한 순간에 분열되기 십상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재화와 사회적 비용의 낭비가 얼마인가. 그 책임은 결국 정부가 져야 한다.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최소한 1년 정도는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고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치사적 염원인 지역주의 청산을 위한 지역간 통합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무사안일한 태도로 행정개편을 밀어붙이다가는 이 정권이 자멸의 길로 갈 공산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