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못가면 죽어서라도 가야지." 꽤 오래 전, 풍문으로 접했던 말이다.

소리가 어쩌다가 '민주'와 흡사하게만 들려도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던 신군부 독재 시절이었다.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야당의 당수가 면회 온 한 지인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가 이렇듯 죽고자 했기에 여러차례의 죽을 고비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했던 것은 아닌지, 살아 돌아 온 그의 손에 매번 어둠을 밝힐 민주주의의 조각이 들려 있었던 건 그 댓가가 아닌지, 그런 그는 민중의 희망이었다. '죽고자 하면 살고, 하고자 하면 쟁취 할 수 있다'는 신념의 원천이었다. 

그와 국민이 40여년간 피흘려 맞춘 민주주의의 퍼즐 조각들이 다시 산산이 부서져 어둠 속으로 흩어져간 오늘, 그는 영면에 들었다. 그는 죽어서, 억울하고 서러운 사람이 없는 평화로운 이 땅 위에 만개한 민주주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국민들에게 그의 죽음은 또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인가.    

전국이 애도의 물결로 출렁이는 조문정국이 폭풍전야의 전조와 흡사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런 미련과 기대 때문일까.

숨죽인 한나라당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몰고 올 역풍을 먼저 감지하고 있는 듯 하다. 연일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찬사를 내보내며, 일절 정치일정을 중지한 채 애도 분위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례없이 두려워 하는 빛이 역력하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노무현과 김대중이라는 두 큰 별을 잃은 민주당은 정작,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민주당이 다각적으로 추출한 김대중의 의미를 새 전기 마련에 쓸 에너지로 재생산 할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환골탈태를 감행하지 않는 한 그 한계는 뚜렷하다. 에너지는 곧 다시 방출 될 것이고 오는 10월 재보선에 쓸 화기 조차 확보하지 못 할 공산이 높다.

민주당은 감히,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온 국민과 더불어 수 십년 세월 일궈놓은 민주주의와, 이에 역행하는 반민주 전선의 충돌을 내심 바랄 것인가. 나아가 노골적으로 김대중 효과를 촉발시키는데 혈안이 될 것인가.

죽어서라도 이루고자하는 수많은 젊은 피의 희생을 부추길 것인가. 노무현도, 김대중도 지키지 못한 행동하지 않는 정당이 가증스럽게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국면 타개의 변수로 활용할 것인가.   

MB 정권은 출범 1년 6개월 만에 보여줄 수 있는 독재정권의 행태를 다 보여줬다. 광우병 쇠고기 정국에서 시작하여, 용산참사, 쌍용자동차사태, 언론악법 날치기, 남북위기 조장 등 '공안 통치' 흐름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았다.

한 인권 학자는 이 정권을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의 초기로 규정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한번이라도 쇼가 아닌 죽음을 각오한 의지로 공안정국을 정면돌파한 적이 있는가.

김 전 대통령의 행보와 성취는 개인적인 것에 국한 되지 않고, 희망을 가진 모든 국민이 함께 공유해 온 것이었다. 그의 수 차례 생사를 넘나든 인생 역정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범국민적 수난사 였고, 그가 결국 이룬 정권 창출은 모진 풍파 속에서 익혀 온 민주주의의 과실이었지 않은가.

한나라당이 이 조문정국에서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일은 야당의원들의 국민을 대신하는, 진정성이 담보 된 '행동'이다. 국민이 감동하는 정치다.

김 전 대통령은 서거 두달 전에 "방관하면 악의 편"이라고 했다. 쇼가 절반이고 방관이 절반인 정당을 누가 따르겠나. 아직도 모르는가.

국민들은 김대중을 보내지 못한다. 그가 곧 민주주의 역사이고, 그가 곧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MB 정권과 민주당은 수천만의 김대중을 직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