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홍

협동사회연구소 대표

책자형 선거 공보가 왔다. 책상 앞에 앉아서 정색을 하고 잘 정돈해서 펴놓았다. 가급적 선입관을 지우고 뭔가 희망적인 기대를 가지고, 긍정의 눈빛으로 공보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한다.

 공보의 선거 효과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들이 있다. ‘누가 보겠어?’라는 의견과 ‘공보 보고 투표하는 사람들 많아’라는 의견이 있다. 둘 다 맞는 얘기일 것이다. 어차피 정해진 표심에는 공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표심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방선거에서는 투표의 단위도 많고 그런 만큼 후보자들도 많고 그만큼 판단해야 할 정보의 양도 많다는 것이다.

교육감, 도지사, 도의원, 시장/군수, 시/군의원, 광역비례투표, 기초비례투표를 해야 한다. 선거 단위별로 후보자들 3명씩만 잡아도 15명이나 되고, 거기에 비례후보 정당 투표까지 해야 한다면 당적을 가지지 않은 시민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어려운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보를 통해서 주요 정보를 얻고 표심을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적지 않을 것이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공보를 만들면 진심과 정책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호소력 있는 표정의 사진들, 정책의 우선순위를 선택하고 배치의 형식도 여러 고민을 하며 공보물을 제작한다. 그러니 그런 후보자들의 입장과 유권자들의 요구와 시대 상황을 함께 고려하며 공보를 살펴보면 훨씬 더 깊은 정보와 행간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후보자의 철학, 정책의 우선순위와 실현 가능성, 정책들의 일관성, 보수 진보의 성향들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준비가 많이 된 후보일수록 그런 내용들의 전달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전달되도록 공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준비가 안된 후보일수록 이런 저런 정책을 짜깁기해서,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거나 어떤 철학적 경향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공보를 통해서 그런 부분들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요즘처럼 과제가 많은 시대에 뭔가 통찰력 있는 비전을 내세우는 후보가 있다면 큰 기쁨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도지사 후보 2명, 교육감 후보 3명, 시장 후보 4명, 도의원 후보 2명, 시의원 후보 5명의 공보를 꼼꼼하게 표시하며 두 시간 동안 읽어보았다. 광역비례 책자형 선거공보를 낸 5개당의 공보, 기초비례 3개당의 비례공보도 모두 살펴보았다.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표심이 이미 결정이 되었던 탓이 컸을 테고 정치권에 대한 선입관, 정치 냉소와 불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완전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보를 읽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다만 모두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 와중에 안으로 굽는 팔까지야 어떻게 하겠는가? 공보를 차분히 읽어보면서 드는 생각은 공보나 TV토론 등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꼼꼼하게 살펴보면 정치가 훨씬 긍정적으로 많이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후보들이 많이 생각해보지 않은 내용들을 얘기하다 보면 그 깊이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짧은 글에서조차 설득력의 차이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되도록 많은 질문 앞에 서서 생각해보고 토론해봐야 한다.

그런 토론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정책은 당사자들, 시민들, 국민들의 이해수준이나 합의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보나 TV토론을 통해서 공론장이 활성화되면 준비되는 비전과 정책의 깊이도 깊어지는 선순환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지적하고 욕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책임지고 바꿔나가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정치는 대안을 만들고 그 성과로 답해야 하는 영역이고 보면 유권자들의 노력에 따라 훨씬 더 생산력 있는 정치로 바뀌어 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공보를 꼼꼼히 읽고, 후보자들의 TV토론을 챙겨보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의정치가 결정하는 의제의 크기나 권력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또 그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아야 하는 일상의 삶을 생각한다면, 유권자가 들이는 비용에 대비해 많이 남는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체장들은 TV토론에 출연하기 때문에 TV토론과 공보를 함께 살펴보면 확실히 깊게 읽어진다. 특히 TV토론은 실시간 생중계로 공통질문과 상호질의응답을 하기 때문에 후보가 얼마나 준비된 후보인지 말하는 모습과 내용을 들어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거기에 공보까지 읽어보면 말 그대로 전문가들의 연출된 작품인지 후보의 고민과 생각이 깊이 뿌리내린 결과물인지 잘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교육감, 도지사, 시장의 공보물은 TV토론에서 발언했었던 모습과 내용들이 연상되면서 훨씬 이해하기가 쉬웠다. 기초의원들의 경우 그런 점이 아쉬웠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부 언론방송들이 시도했던 기초의원 토론회의 경우 앞으로 꼭 필요한 신선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몇 사람이나 본다고 시간을 들여 준비하느니 토론을 준비하고 나가는 시간을 선거운동에 쓰겠다”면서 참여하지 않은 어느 기초의원 후보의 항변도 현실적인 면이 있겠지만, 어떤 정치가 필요하고 바람직할지라는 차원에서 보면 아쉬운 판단이다. 또 느낀 점은 재선, 삼선을 준비하는 현역과 초선들의 정책역량의 차이가 드러난 점이다. 경험과 자료 제공의 차이가 분명히 있을 테니 그만큼 더 많이 준비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현역들의 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초선 출마의 경우에는 추상적 수준의 내용과 표현들로 공보가 채워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안타까움은 많이 나열된 정책들은 많은데 막상 큰 방향이나 목표설정이 부족해 보이는 공보가 많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후위기의 문제가 일상의 문제로 이미 다가와 있는 상황인데 그 많은 공보중에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었다. 필자가 찾아낸 것은 16명 후보들의 수백가지 공약중 ‘탄소중립선도도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북에너지조례 제정’ 등 단 두 가지 정도였다. 산업 전환, 일상의 변화 등 그 앞으로 무엇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기후 위기의 상황에 대한 공약이 그만큼 없다는 것은 익산의 지방자치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크게 들었다.

살펴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공보를 공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