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인문운동가)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마음대로 안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관통하는 인류의 과제다.
대체로 다음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다투지 않아도 충분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자(物資)를 갖추는 것이다.
둘째 일정한 선(線)을 정해서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제도와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 몫을 넘어 폭을 넓히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더 나아가 서로 양보하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되는 것이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제도와 규범이 많이 진전했는데도 과거 부족한 시대와 약육강식의 수탈과 억압의 시대를 살면서 훈습된 공격과 방어의 기제가 의식(意識)을 지배하는 동안은 서로 경계하고 다투는 차가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첫째와 둘째가 필요조건이라면 셋째가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논어를 읽으면서 이에 대해 공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하는데 당연히 큰 관심이 있었다.
공자가 어떤 마을을 제자들과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 것이 논어 자로(子路) 편에 소개되고 있다.
 
“백성들이 참 많구나.”
“백성이 많아진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유하게 해야 한다.”
“부유해지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교양을 길러야 한다”                         
子適衛 ?有僕 子曰, 庶矣哉 ?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사회가 이루어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공자는 ‘부지(富之)’라고 답한다.
공자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있어 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도덕주의자·정신주의자로 보는 것이다.
사람의 행복은 결국 정신의 성숙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상주의자이지만, 그 정신의 성숙은 물질적 수요의 충족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과학적인 현실 인식 위에 서 있다.
그는 물질적 부(富)가 정신적 성숙으로 이어질 때, 인간다운 질서 즉 예(禮)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정신적 성숙의 내용에 대해서는 현대의 위기 국면과 관련하여 다음 칼럼에서 다루어 보기로 한다.

다음은 논어 이인(里仁)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예(禮)와 양(讓)으로 나라를 운영하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예양(禮讓)이 함께 하지 못한다면 그 예(禮)는 헛되지 않겠습니까?”
子曰 能以禮讓 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 爲國 如禮何

물론  당시의 사회나 국가를 배경으로 한 말이지만, 시대나 사회가 바뀌어도 통하는 말이고 현대에 올수록 더욱 절실해 진다.
양(讓)은 마음이고, 예(禮)는 질서다.

조건과 환경은 많이 바뀌었는데, 관념(의식)은 여전히 묵은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식의 큰 전환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이제 인류라는 종(種)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과목으로 되고 있다.
그 출발은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넘어서 소유하는 것은 다른 존재에 대한 침범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민주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대에도  개인 간, 집단 간, 국가 간의  침범이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침범에 대한 알아차림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변화해 왔다.
예를 들어 일정한 경계(境界)를 그어놓은 땅을 침범하는 것은 가장 알기 쉽다. 지금도 끊임없이 이 경계 다툼이 일어나고 그것으로 재판정이 쉴 틈이 없고, 그것으로  살아가는 직업들이 많다.
그런데 그 경계(境界) 자체가 선점과 침범 그리고 수탈의 과정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침범 당하고 있는 집단의 저항과 인류 의식의 진보에 따라 사회제도가 바뀌어 왔다.
신분제, 계급제도,  식민지,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오고,  또 집단으로부터 개인의 해방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그 변화의 내용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침범들의 가장 근저를 이루고 있던 가장 오래된 침범 즉 남성의 여성에 대한 침범이 요즘 가장 뜨거운 잇슈가 되고 있다.
그런 일반적 관점과는 별개로 나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심각한 침범들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것을 대단히 위험하게 보고 있다.
투기가 일상이 되고 각종 지대소득과 불로소득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침범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기 어렵고, 합법적 불공정 사회로 되어 양극화가 심화되어 고착되면 돈의 유무로 구분되는 신분제 사회로 퇴행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다른 한편에는 평등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갑을(甲乙)관계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남의 갑질에는 민감하고 저항적이지만, 자신의 다른 사람에 대한  갑질에는 둔감하다.
이른바 지금까지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사회 정치 운동도 이런 위선적인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것을 더 이상 진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침범을 알고 그 침범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바탕이 될 때 양(讓)의 마음이 커지고, 이 의식 위에서 참다운 인간의 질서(禮)가 이루어진다.
전제나 독재의 폐단인 사람의 지배(人治)로부터 법의 지배(法治)로 이행하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그 법치가 지향해야할 방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공자의 말은 당시보다 오히려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에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법제로 다스리고 형벌로 질서를 유지하면 사람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지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