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는 데서 찾았다. 더하지도 덜 하지도 않는 중력, 만물이 나오고 되돌아가는 섭리, 변하지 않는 큰 틀에 천변만화를 수용하는 질서에서 신을 발견했다. 신의 영역은 그 질서이고, 신이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이를 주재하는 권능을 지닌다.

물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근원 중 하나다. ‘물 폭탄’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신은 이렇듯 사람이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일깨운다. 지나치면 생명의 근원이 생명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내 평생 이런 비는 처음이네” 요즈음 주변의 연로한 분들이 자주 하는 말씀이다. 수일 째 ‘산사태’다 ‘홍수’다 재난 소식이 벌떼 소리처럼 천지를 가득 메웠다.
멍해지고 망연자실해진다. 하늘을 우러르게 된다. 천재지변은 하늘에 어떤 뜻이 있을 때 일어나고 그 재앙은 피할 수 없으니 사람으로서 잘못한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옛사람들이 신을 섬긴 이유일 것이다. 기우제와 같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신에게 예를 갖추는 형식이기도 하지만,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점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속수무책일 때 자기 탓을 찾는 태도가 박물관 한쪽에 진열된 순수 시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첨단 과학이 신의 권능을 대체했다고 믿는 세태라 하더라도, 과학이 신의 영역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나아가 천재지변 앞에서는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득을 안겨주는 것 같지만 기실 인류의 절멸을 앞당기고 있지는 않은지 의구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가 마주한 재난은 지구 온난화와 같은 신의 영역을 훼손한 데서 비롯하고 있는 탓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는 데서 찾았다. 더하지도 덜 하지도 않는 중력, 만물이 나오고 되돌아가는 섭리, 변하지 않는 큰 틀에 천변만화를 수용하는 질서에서 신을 발견했다. 신의 영역은 그 질서이고, 신이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이를 주재하는 권능을 지닌다.
공명정대한 신의 뜻이 사람의 갈 길인 이유다. 신은 자신의 영역을 통해 사람에게 무엇보다 ‘지나친 것은 해롭다’고 이른다. 그러나 과학의 진보는 그 반대쪽에 있다.
당장 우리가 겪고 있는 물난리는 툰드라와 같은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한 데서 기인한다. 동시에 지구의 온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균형이 깨진 것이다. 달리 말해 지구의 온도가 온난 쪽으로 기울었다.
뜨거운 것을 억제하던 차가운 것이 줄면서 지구는 갈수록 더워지고 그러한 기후 환경은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할 것이다. 한랭 전선의 불균형으로 대기 환경은 불균형해지고 인류는 종국에 늘어나는 바닷물과 퍼붓는 물 사이에서 오갈 곳을 잃게 될 것이다.
물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근원 중 하나다. ‘물 폭탄’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신은 이렇듯 사람이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일깨운다. 지나치면 생명의 근원이 생명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의 길이란 삶에 대한 또는 삶을 둘러싼 모든 작용에 대한 ‘정성’이다. 주어진 길을 가되 지극히 성실하다면 후회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엎친 코로나에 덮친 물난리 속에서 우리는 지금 신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 생각이나 행위가 옳았는지, 혹은 옳은 삶에 정성을 다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신을 섬기는 종교의 입장에서는 더 형편이 없을 것이다. 종교단체가 보수성을 잃지 않는 이유이며, 진보에 대해 길항력을 갖는 까닭이다. 최근 일부 기독교 단체가 정의당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 금지법’에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모두를 위한 차별 금지법은 ‘평등법’으로 약칭된다. 개신교 보수진영은 이 법이 “건강한 가정을 해체하며 사회의 기본적인 도덕을 파괴하며 헌법을 위반하여 신앙과 양심,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더 많은 국민들에게 이해충돌과 역차별과 역평등과 불합리한 법적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국민을 차별 대상으로 만들고, 모든 국민들의 생활 영역을 차별 사유로 규정해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들 수 있으며 또 모든 국민을 감시자와 고발자, 심판자와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직장 상사와 학교 교사 등의 언행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국민이 법안의 당사자가 되어 숨 막히는 감옥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철저한 감시와 고발과 처벌의 사회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동의한다. 과유불급이다. 현행 개별적 차별 금지법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평등 법안의 취지는 공공장소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성적 지향성 등 때문에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 신의 뜻 저버리지 말아야

종교시설이나 길거리에서 나누는 이야기까지 막겠다는 것이 아니며, 형사처벌 조항은 1개 뿐이고, 이 경우에도 차별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줄 때만 처벌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평등법’은 국회를 통과해야겠지만 사회적 담론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안 내용을 침소봉대하거나 곡해한 것을 전제로 반대해서는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법안은 13년 동안 7차례나 발의되었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이번이 여덟 번째다. 개신교 보수진영의 ‘평등법’ 반대 근거는 이 전에도 대동소이했다.
개신교 보수진영은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표를 계산해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옳은 길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 선택의 어려움은 13년 동안 일곱 차례 좌절된 법안이 말해준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 선택의 지표를 신의 뜻으로 삼기 바란다. 신은 ‘평등’에 관해서 어떻게 뜻을 보이는가. 태양이 비추기를 꺼리는 곳이 없는 것에 그 뜻이 있다.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에 그 뜻이 있다.
신을 섬기는 종교 지도자들의 도리가 신의 뜻에 반한다면 무엇으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다는 말인가. 종교의 이기주의에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과 반목이 심화한다면, 그래서 유혈 충돌이 일반화된다면 신을 저버리고 폭주하는 과학과 무엇이 다른가.
이른바 인류의 ‘종말’은 인류의 오만이 초래한다. 생각은 해 봤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