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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호 우리는 알고 있다

편집국장 공인배

극한의 대립상태, 그 남북의 교착 혹은 국지전은 장기화 될 공산이 높다. 빛 좋은 개살구가 된 무슨 ‘선언’들은 오히려 서로에게 ‘농락’이 되어 어느 한 쪽이나 둘 다의 파국을 부르는 구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미국에 의존하거나 미국의 눈치를 보는 한 남북의 ‘선언’들은 어떤 구속력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그 선언들은 체제 유지나 체제의 동력을 획득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사적 사건들은 반복되는 패턴을 보인다. 딱히 주기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류에 닥치는 재앙은 늘 과거에도 있었다. 바이러스가 낯설지 않고, 북한의 도발도 새롭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재앙이 반복 될 때마다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를 점검하면서도 반복되는 사건 앞에서 대부분 속수무책일까. 왜 해석에 그칠 뿐 예측하고 바꾸지는 못할까.

자연과 인간의 관계 또는 체제와 체제 간의 비극은 부조화에서 비롯하지만, 서로의 틈이 넓은 만큼 또는 갈등의 골이 깊은 만큼 부조화를 조화로 돌이킬 시간은 먼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착각에 빠졌다. 백신을 떠올리며 코로나를 단숨에 극복할 수 있다거나, 국가 원수들이 손을 맞잡고 삼팔선을 넘나들면 당장에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 착오를 번번이 겪고 있다.

과학적으로 체질적으로 도시적으로 눈부신 진보를 이룬 강한 우리는 그에 비례하는 희망을 신봉한다. 재앙의 명확한 인과 앞에서 자만심에 빠지는 이유다.

자만심은 개별화와 파편화의 산물이면서 개인화와 파편화를 가속화시킨다. 건강하면 코로나에 걸려도 아무렇지 않다는 축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권력을 거부하는 축은 제2기 코로나 대유행의 원인이 되고 있다.

악순환이 고리다. 강한 나라일 수록 국가나 사회가 개별화를 방조하거나 부추긴다. 그랬던 탓에 재앙에 닥쳐서는 공동체의 안위라는 명분으로 개별성을 더 과도하게 유린하게 된다. 부작용을 일으키는 구조다.

지금 눈 앞의 도시들 자체가 불안한 공동체다. 재앙 앞에서 허풍을 떨면서도 허둥거리는 이유다. 무엇보다 겸손하지 못한 인류는 다시 돌아올 재앙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리더십의 벼리는 통합이지만, 개인간의 수평성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리더십은 전체를 꿰지 못한다. 지금 강한 리더십이 개인들과의 적대에서 발현된다고 믿는 리더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개인들이 저항하면 상상할 수 없는 힘으로 압살하겠다는 의지는 가차 없는 폭압의 실천에 의해 개인들에게 각인된다. 국가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냉전시대는 종언을 고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한 생존의 위협들에 노출되어있다. 무력 증강으로 상대의 도발을 억지하던 시대에는 차라리 반쪽짜리 평화라도 누릴 수 있었다.

서로의 길항력을 믿는 기반 위에서 어느 정도는 내일을 예측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는 무역 규제와 같은 생존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전쟁이 일상화 되었다.

냉전의 긴장감이 아닌 전쟁통의 긴장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머지않아 그 긴장감의 임계점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휴업과 폐업이 장기화되고 실업난은 점증하고 있다. 코로나19에 오만한 열강들의 경제전쟁까지 겹친 탓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우리가 겪는 재앙이 이렇듯 인재(人災)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세계는 리더십을 잃었으며, 예측불능의 혼돈 속에 빠져들었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도 그 일환에 속한다. 체제 내부에 어떤 지각변동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북한의 실정은 가늠 할 수 있다.

김여정의 망동은 우리가 겪는 고통에 비견되지 않는 단말마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 제재와 코로나19의 직격, 여기에 주변의 여파는 북한 체제를 위기상황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은 그럴 때마다 항용 되어 온 수단이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의 다음 행동은 연평도와 같이 사거리가 닿은 곳에 묻지마식 포격을 가할 것이다.

그보다 더 할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 북한의 지도부는 그런 식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적으로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표방할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되는 패턴을 보이기에 해빙의 시대를 예고한 김대중-김정일의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다시 닥쳤던 안보위기를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런데 오히려 남북의 접촉과 그 기록들은 짙은 먼지가 되어 남북을 가로막았다. 햇볕 정책으로 시계를 밝히려 했던 남쪽에 북은 우격다짐으로 일관했고, 끊임없이 도발했으며 전쟁위기를 조장했다.

허공 중에 핵탄두 질을 해댈 때 우리는 알고 있었다. 4.27 판문점 선언이 준비되어있다는 걸 가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황홀했던 순간을 통일의 전조로 해석했을 뿐이다.

우리의 국가 원수에 대한 바닥을 치는 모욕이 뜻밖이라는 태도로 상황을 응시한다. 왜 우리는 그닥 새롭지도 않은 것에 펄쩍 뛰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알면서도 그런 허무맹랑한 소꿉장난을 해오는 것이다. 리더에게 기회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인데, 그것을 생각해 볼 수 조차 없는 형국이다.

오만한 트럼프는 자연의 재앙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오만한 트럼프는 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힘으로 찍어 누를 줄만 알고 대승적 해법은 모르는 탓이다.

그러나 자연의 재앙 앞에 몸을 숙이고 한 호흡 한 호흡 낱낱이 정성을 다해 국난을 헤쳐나가는 문재인은 트럼프를 넘지 못한다. 주체적인 신념을 가졌으면서도 사대주의를 타파하지 못한다.

자만의 수렁

우리는 알고 있었다. 판문점 선언 때 우리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거창한 해석으로 헛물을 켤 뿐 실천하지 못할 것이라는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을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한 것은 강대국이 같은 생각을 해 줄 것이라는 헛 된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의 지도자가 패러다임을 설계하지 않고 직접 판도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다.

불확실성을 주도하는 트럼프와 그에 따른 변수들을 계산 할 여유가 없었다. 성공 가능성의 극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기다려야만 하는 입장이다.

우리는 북에 있는 동족에 관한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따져보고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한다. 그런 현실을 직시하는 우리는 절망한다.

우리는 북의 문제에 관해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미국의 부당한 혹은 국가이기주의를 앞세운 억압에 굴복해야 한다.

재앙 앞이든 대립하는 체제 앞이든 당장은 어렵지만 해법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거기에는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고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개인은 전체의 한 부분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으며, 끊임없이 노력한 연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빈번하게 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