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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신문의 날, 불편한 언론의 진실을 응시하며

편집국장 공인배

이 나라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보수와 진보의 정체는 무엇인가. ‘수구’와 ‘급진’이다. 사회적으로 그들의 이념은 공히 어느 때는 이롭고 어느 때는 해롭다.

각자가 극단을 달리는 탓이다. 이 나라의 정치사에 합의는 없고 타협만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렇게 두 축은 이해관계로 대치하며, 끊임없이 충돌한다. 혼란과 소요를 주도하며 사회의 유해요소가 된지 오래다.

국론이 분열되고, 지역할거주의가 노골화되고, 소모적 논쟁으로 날이 저물고 있다. 양대 정치 진영은 그런 일련의 과정이 결국 발전의 방향성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진영의 이중대 노릇을 해 온 언론은 무어라 책임을 피할 수 있겠는가.

내일(4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독립신문 창간(1896년 4월 7일) 61주년이 되는 1957년 같은 날을 기해 창립된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고 자유와 품위 등을 강조하는 취지로 제정한 날이다.

독립신문 창간을 기리는 날을 신문의 날로 정한 까닭을 먼 곳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권을 침탈한 일제강점기의 압제에 굴하지 않았던 신문의 제호가 그 정신을 형형하게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독립’은 어떤 것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주권을 의미한다. 대다수 신문이 자본과 권력에 예속되었고, 그 병변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신문의 날’은 성찰의 계기가 된다.

공기(公器)여야 할 신문이 사유화되어 편을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는 비정상이 만연한 오늘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균형을 잃은 신문은 ‘보수 언론’이 되기도 하고 ‘진보 언론’이 되기도 한다. 언론이란 ‘공익’을 지향 할 뿐 보수 일 수도 진보 일 수도 없는데, 상당수 언론은 보수이거나 진보를 자처한다. 소비자들의 그러한 규정에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심지어는 ‘수구 신문’이라 해도 개의치 않고 태도를 바꿀 기미조차 없다. 다른 축의 신문은 ‘진보 언론’이라는 평가를 들으면 또 자랑스럽게 여긴다.

심지어 여당성향의 신문, 야당성향의 신문으로 갈린다. 용비어천가로 세월을 보내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힐난에 혈안이 된 언론이 있다.

신문의 날을 오늘날 언론이 독립신문을 감계(鑑戒)로 삼아야하는 까닭일 것이다. 변질이 거듭 된 나머지 병든 정신에 신문의 사명과 책임 그리고 품위가 지표로 깃들 리 없다.

오늘, 통시적(通時的)인 관점으로 오로지 공익을 지표로 삼는 신문이 되기를 다짐하게 되는 까닭이다. 지역 신문의 입장에서 뛰어넘어야 할 장애를 응시하게 되는 오늘이다.

지역은 폐쇄성이 강하다. 특히 로컬시대 이래 특색 있는 것은 보호하고 육성하되 흠이 되는 것은 감추려하는 그릇 된 공동체의식이 고착화되었다.

최소한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급격한 인구감소 현상이 겹치면서 지역의 고립은 가속화되었고, 갈수록 패배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그것은 선거기간 중에 더 두드러진다. 익산이라는 지역색은 민주당 깃발색으로 나부낀다. 민주당 후보가 독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은 여론조사가 거듭 될 때 마다 급등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5개 정당에서 후보를 내고 한 명의 무소속 후보까지 6명이 출마한 익산 을의 경우 민주당 한병도 후보가 61.9%의 지지를 받았다. 익산 갑은 5개 정당의 후보 가운데 민주당 김수흥 후보가 72.9%의 지지를 받았다.

이대로라면 이번 총선에서 익산이 전국 최고의 몰표를 받은 지역으로 기록 될 공산이 높다.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일까.

민주당에 대한 몰표란 유권자들이 출마한 사람의 됨됨이나 역량 또는 경륜을 평가대상으로 삼지 않은 결과다. 투표의 목적이란 지역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역색을 재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무기력의 소산이다.

익산의 민주당은 기득권이고, 심지어 성역화 되었다. 현주소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난립하는 익산의 지역 언론도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 변종 언론도 생겼다.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서는 것도 모자라 선거 일선에서 상대 후보 진영과 전투를 일삼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그러한 별동대를 자처하고 있다는 점에 참담해진다. 마치 성전(聖戰)을 행하는 듯 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정치인과 어떤 이해관계에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다가 또 섬뜩해진다. 그런 그들을 아무도 지적하거나 질타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되는 지점이다.

고립을 자초하는 지역

문득 실화를 다룬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떠오른다. 익산의 현주소를 비추면서 동시에 언론의 정체성을 비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 팀명이다. 보스턴에 소재하는 이 신문사 기자들은 보스턴 카톨릭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사건을 파헤친다. 하지만 장벽은 높았고 진실에 접근하기까지는 수 없는 좌절을 겪어야 했다.

한 신부가 몇 년 간 지속적으로 교구를 옮겨다니며 수십 명의 아동을 성추행했고, 보스턴 담당 추기경은 이를 알고도 덮어준다는 내용의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한 변호사가 폭로했지만, 구독자 중 가톨릭 신자의 비율이 높은 보스턴 지역 특성상 ‘보스턴 글로브’의 기자들은 가톨릭교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며 크게 동조하지 않는다.

또한 온갖 장애를 힘겹게 극복하며 치밀하게 추적한 끝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는 단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편집장은 추기경을 대면하게 되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극명하게 갈리는 관점이 드러난다. 추기경은 "지역사회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여러 공동체가 힘을 모을 때 이루어진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담당 기자는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라며 거절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사제들의 성추행 사건이 상당히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며 보스턴 내에만 아동을 성추행 했던 사제가 약 최대 90명까지 있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폐쇄성은 가해자들을 보호하고, 피해자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면서도 지역공동체의 명예를 위해 감내해야만 하며, 지역공동체 전체가 사제들에 대한 구조적인 보호막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초법적인 집단이란 신성한 조직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등에 업고, 법 위에 군림한다. 이 영화는 지역사회의 그 거대한 힘을 차분하게 조명한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고등학교에서도 성추행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취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달음에 달려온 가톨릭계 중요인사들은 "모두가 같은 결론을 내릴 때까지 함구하고 있자"라며 왜곡 된 의식에 기댄 보도 관제를 시도한다. 하지만 ‘보스턴 글로브’ 편집장은 "나도 다른 학생들도 그저 운이 좋아서 당하지 않았을 뿐이었다"며 거절한다.

가톨릭계 고위인사는 편집장에게 "외부 사람이야 잠깐 여기 와서 들쑤시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보스턴에서 나고 자란 너는 어디로 가겠느냐"며 에둘러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스포트라이트’ 팀의 진정성 있고 끈기 있는 진실 추적에 결정적인 증인과 관계자들이 잇달아 동조한다.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이 드러나고 ‘스포트라이트’팀이 추적한 충격적인 스캔들이 밝혀진다.

그렇다. 지역사람이 성역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약점을 만드는 것과 같다. 심각한 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근원은 가해자들을 절대시하며 피해자들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는 지역사회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신문의 날'에 소통신문을 포함한 지역언론을‘스포트라이트’앞에 세워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