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사한 익산시 공직사회의 청렴도가 지난해보다 1단계 강등됐다. 청렴도는 총 5등급으로 분류되는데 3등급에서 턱걸이하던 청렴도가 4등급으로 떨어졌다. 정헌율 시장이 스스로를 차별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청렴 이미지가 구겨진 것이다.

익산시는 정 시장 체제에 접어든 민선자치 6.5기 이후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해왔다. 덕분에 전국에서 꼴찌(5등급)였던 익산시 청렴도는 나름 상승했었다. 총 75개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51위까지 끌어 올려 3등급에 진입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어서, 익산시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으로부터 청렴도를 높이기 위한 강도 높은 행정혁신과 자구노력을 요구 받고있는 중이었다. 정 시장도 2017년을 으뜸 청렴도시 원년으로 선포하고 각종 공직비리 및 불법행위 척결을 위한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놨다.

"부정청탁, 금품수수 행위 적발시 공직에서 영원히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신고센터 및 부조리신문고를 운영해 민원부당 반려행위, 비리관련 고발사항, 불친절한 행위 등은 사안에 따라 최고 중징계 등 엄중 문책하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또한 직원들의 공감대 형성과 인식 공유를 통해 직원 스스로 청렴 마인드를 향상시켜 나가도록 지속적으로 주문할 방침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그나마 상승했던 청렴도가 뚝 떨어진 것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하고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끝없이 추락할 낭떠러지에 서 있는 국면이다.

익산시가 시행해 온 여러가지 청렴 끌어올리기 방안이 잘못된 것일까. 익산시 감사담당관 외 49개 부서는 그동안 청렴캠페인, 청렴계단 오르기, 청렴퀴즈왕 선발, 청렴메아리 엽서, 청렴독서 릴레이, 청렴식권제, 인허가민원 처리기간 단축, 기술용역 조달발주 행정절차 간소화, 건축허가·신고 투명성 제고 등 다양한 청렴시책을 추진한다고 홍보해 왔다.

또 정 시장은 특별히 외부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친절도'를 승진인사의 지표로 삼기도 했다. 익산시의 청렴시책에서는 별다른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다. 청렴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점이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왜 청렴도가 상승하지 않고 추락하는 걸까.

그 가장 큰 원인은 다른 곳이 아니라 정헌율 시장에게서 발견된다. 그의 청렴 정책을 해치는 행태가 문제인 것이다. 정 시장은 지난 해 말 "국·과장들의 근평을 못 믿겠다"며 2019년 1월 정기인사를 간부공무원들의 부하직원들에 대한 근무평가를 배제한 상태에서 단행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그는 2018년 실시한 자체설문조사에서 익산시 직원 52%가 '채용, 승진 등 인사업무와 관련해 금품, 향응 제공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결과를 빌미 삼았다. "나만 깨끗하면 뭐하냐. 아무리 공명정대한 인사를 해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소연도 했다.

그가 단행한 정기인사는 그야말로 파격을 넘어선 '전횡' 그 자체로 평가 되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승진인사는 갖가지 억측을 불렀다. 정 시장의 사돈에 팔촌이 개입한 인사였다거나, 6.13지방선거에서 정 시장을 도운 누군가에 대한 보은인사였다거나, 정치적 관계 또는 견제 관계인의 인사개입이었다거나 등 무성한 소문이 전염병 돌 듯 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정헌율 시장이 간부공무원들을 불신한다는 점이다. 또 그런 자신의 의중을 공표했다는 점이다. 그는 나아가 간부공무원들이 부하직원들을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인 근평권을 부정함으로써 간부공무원들을 무장해제시켰다.

물론, 그가 명분으로 내세운 '간부공무원들에 대한 직원들의 불신'이 무겁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간부공무원들의 근평을 배제한 정 시장의 인사는 예측가능했어야 한다. 공명정대하지는 못할 망정 공명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인식될 만은 했어야 나름이나마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사추는 특수성 쪽으로 크게 기울면서 직원들의 불신을 불렀다. 2019년 1월 인사 이후 익산시 공직사회는 어떤 인맥을 타고 가야 정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느냐는 탐색으로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다. 승진 배수에 들지 않은 직원들의 촉수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다. 정 시장은 스스로 간부공무원들의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직원들로 하여금 정 시장 본인이나 주변인들을 승진인사의 로비 대상으로 여기게 한 것이다. 간부 공무원들이 금품수수나 향응을 제공받을 것이라는 직원들의 생각이, 시장이나 시장 주변이 그럴 것이다는 생각으로 옮겨가게 한 것이다.

스스로 부정(不淨)의 중심이 돼

정헌율 시장의 간부공무원들에 대한 불신과 근평부정은 또 익산시 공직사회를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에 빠지게 했다. 다른 문제들을 차치하고라도 청렴 시책과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운영 실태가 단적으로 그걸 방증한다.

청렴시책의 경우 청렴퀴즈왕 선발대회라든가 청렴독서 릴레이, 청렴 식권제 등은 지금껏 제대로 실행된 적이 없다. 그 결과를 취합하고 관리해야 할 청렴시책 담당부서인 감사담당관실은 다른 자치단체의 청렴시책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감사담당관실은 또 인허가민원 처리기간 단축, 기술용역 조달발주 행정절차 간소화, 건축허가·신고 투명성 제고 등에 대해서는 각 실과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그 실적이 어떠한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다.

지난 2003년 내부 규정에 의해 시장이 시민단체나 시민 가운데서 위촉했던 명예감사관제는 3년 전에 한 번 실행된 이후 지금까지 유야무야 되고 있다. 2016년 낭산 폐석산에 발암물질이 반입되자 당시 위촉된 명예감사관들이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이후 정시장은 더이상 명예감사관을 위촉하지 않은 것이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시행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신고센터 및 부조리신문고 운영 역시 유명무실한 상태다. 실명을 기재하도록 되어있는 시스템 때문에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단순 민원게시판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공직 내부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한 탓이다.

공무원이 동료의 비리나 부조리한 행태를 신고하려면 집단 왕따를 각오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익산시의 청렴시책이란 연간 몇 번 안 되는 교육이나 캠페인성 행사들이 전부인 셈이다. 한 번 걸리면 퇴출시키겠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방침도 엄포에 불과한 실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익산시 공무원들의 인식을 바꿀까. 그 최고의 명약은 '공명정대하고도 투명한 상벌'이다. 그것은 조직의 기강을 세우는 요체다. 무엇보다 조직 운용의 기본이다. 그런데 상을 줘야 할 직원에게 벌을 주고 벌을 줘야 할 직원에게 상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신분상승을 바라는 모든 구성원들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기본이 무너져 개판 오 분 전이 된 조직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칭 행정의 달인이라는 정헌율 시장은 그러한 병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 시장은 오히려 낭산 폐석산에 막대한 발암물질이 반입되는 것을 방조해 온 환경직 서기관이 명예롭게 퇴진하도록 길을 열어줬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기시켰다가 결과가 발표되자 자체 중징계는커녕 기다렸다는 듯이 업무에 복귀시켜 정년을 채우게 했다.

폐석산에 매립된 발암물질을 원상복구하는 문제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수반한다. 발암물질이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수에 섞이고 주변 농경지나 하천으로 범람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전이 필요하지만 사건 발생 3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그 일부를 퍼내는 작업에 착수한 실정이다.

우리는 익산시 환경직 공무원들의 부작위에 의한 또는 직무유기에 의한 범법의 결과를 목하 목도하고 있으며, 이 현장은 오랫동안 진행형으로 우리 앞에 머물 것이다. 또한 이 현장의 지옥경을 익산시 공직사회의 모든 구성원들도 바라보고 있다.

정헌율 시장은 또 상급기관의 감사에 의해 비리천국으로 규명된 공사현장을 진두지휘한 토목직 사무관을 징계하기는커녕 서기관으로 승진시켰다. 그는 목하 기술직들의 수장자리를 꿰차고 익산시의 모든 직원들에게 비리를 저질러도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상벌이 적용되지 않은 인사로 조직을 무사안일과 비리왕국으로 전락시키는 정헌율 시장은 얻는 게 과연 무엇일까. 게다가 원칙과 기준에 어긋나는 과도한 발탁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예측가능성을 담보하는 가늠자를 인사 기준에서 빼버리는 정 시장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그는 최근 익산시의 청렴도가 한 계단 하락한 것에 대해 "지난번에는 내부청렴도가 낮았는데, 이번에는 의외로 외부청렴도가 낮게 나왔다"면서 "금품수수 같은 것이 아니라, 공공서비스 과정에서 편의제공 관련 응답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익산시의 하위에 머무는 청렴도는 정 시장 자신에게 있다는 점은 터럭만큼도 성찰하지 않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정 시장은 익산시 조직을 일하지 않는 조직, 부정한 조직으로 전락시키는 바이러스의 숙주다. 맹성과 환골탈태를 요구받는 형국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