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시에는 당장 화급을 다투는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그 해법들은 대부분 모호하다. 해결 의지도 불투명하다. 그 바람에 모든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혔다. 고장난 행정기관이다. 그러나 선장은 그것을 고치지 않고 있다.

고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거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고칠 능력이 없는 것일까. 어쨌거나 표류하는 현안들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부적격한 선장'이다. 자신의 태생적인 한계나 결함을 잘 모르는 선장이기에 고장의 원인을 모를 수밖에 없다.

아니, 고장난 줄도 모른다. 엔진이 정지되어 죽음의 늪을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인데도 그는 그 배 위에서 비전을 가리키고 있다. 배는 당장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갑판 위에서 풍장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이꾼 저꾼 이패 저패를 갑판 위에 등장시켜 비전을 향해 나아가자고 바람을 잡고 있다.

더구나 '익산역 유라시아 철도 시발역 선정'이라는 그 목표는 허황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다른 후보지들을 압도하는 입지도 아니고, 익산지역이나 도내 유력 정치인들의 관심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정헌율 시장은 토론회다 연구용역이다 자꾸만 일을 벌이면서 익산시 예산을 축내고 있다.

갈수록 강도 높은 결기를 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1년 남짓 추진해 온 '시발역'은 찻잔 속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전라북도 차원에서 추진되지 않으면 성사될 수 없는 일인데, 익산지역의 이기주의로 치부되고 있는 탓이다.

'시발역' 선정이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먼저 시계(市界)를 넘어 전도적(全道的)인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도내 정치인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추진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전문가들 몇을 불러다 놓고 익산역이 '시발역'의 요건을 갖추었다는 등 그 적격성을 토론하고, 지역사람들 몇의 입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면 도내 정치인들이 압박을 받을 것이고, 인식이 바뀌리라는 순진한 기대에서 비롯한 것일까.

전 고위직 공무원 마인드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시발역' 추진에 정치가 없는 까닭이다.

하다못해 전주권 현역 국회의원들 상대 다수가 정헌율 시장과 같은 민주평화당 소속이다. 같은 정당의 정치인들에게조차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시발역'인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정 시장의 '시발역' 카드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산적한 현안문제들을 덮으려 하거나 시선을 돌리려는 꼼수로 비쳐지는 것이다. 나아가 '시발역'은 그럴듯한 비전이어서 이슈를 선점해 나갈 경우 상당한 정치적인 실익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실패해도 전혀 리스크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으론 이렇게 정 시장이 목청 높여 외치는 장미빛 청사진은 그가 말하거나 듣기를 꺼리는 현안들을 가린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그것 또한 의도된 것이 아닐까.

현안을 호도하는 설레발

얽힌 현안 가운데 하나를 들어 본다. 폐기물 재활용업체가 운영하는 폐석산에 맹독성 발암물질이 무려 3만9,000톤이나 묻힌 사실이 드러났다. 퍼내야 할 전체량은 150만톤에 달한다.

사건이 발생한 이래 2년 5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이후 또 1년 동안 퍼내서 정상 처리한 양이 1.9%에 그친 현장은 익산시에서 표류하는 현안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현주소다.

한마디로 3년 5개월 동안 고작 3,000톤의 발암 물질을 치운 것이다. 이는 이 폐석산에 묻혀있던 다른 폐기물들과 흙을 오염시키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발암물질에 오염된 빗물이 범람해 인근 하천과 토양을 오염시켰다. 무엇보다 지하수가 지속적으로 오염되었다.

지하수는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도시 전체의 지층 아래 흐른다. 농산물이 2차 오염되고 생수 공장의 물이 암을 일으키는 물로 변해가고 있다. 사람이 살 수가 없는 도시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보다 화급을 다투는 문제가 또 있겠는가.

신청사를 짓는다고 수백억원을 들이거나 허황한 일에 재정을 낭비할 일이 아니다. 발암물질 제거에 예산을 집중하고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 정헌율 시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2016년 6월 24일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의 수사결과 발표로 사실이 드러난 직후 그는 익산시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했다.

이 발암물질은 5년 동안이나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 환경청이 관리하는 '올바로시스템'을 무사 통과해 익산지역에 반입되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관리하는 환경부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환경부가 반박했다. 익산지역에 반입되는 폐기물에 대한 지도 감독 책무가 익산시장에게 있지 환경부장관에게 있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엄밀히 따져보면 양쪽 모두에게 과실이 있다. 처음부터 그 책임의 한계를 놓고 협상을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정 시장이 환경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바람에 접점을 찾기 위한 협상 테이블 자체가 마련될 수 없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발암물질 매립 사실이 알려진지 6개월만에 환경부와 익산시가 고작 내놓은 것이란 배출업체와 매립업체에 석산복구 이행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명령은 이행되지 않았다. 9개월을 준 이행기간 동안 독극물이 든 폐기물을 단 한 삽도 퍼내지 않았다.

예견된 일이었다. 대표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상태의 업체에 행정기관의 명령을 이행할 의지부터가 있을 턱이 없었다. 하려고 해도 돈이 없는 업체의 입장에서 할 방법이 없었다. 환경부와 익산시가 복구 이행기간을 1년 더 연장해 주고 또 연장해 줬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익산시는 그렇게 시민들이 독극물에 폭로 된 상태에서도 안일하게 시간을 허송한 것이다. 그 사이 현지 주민들은 독극물 매립장에서 범람하는 침출수 관련 증거들을 익산시에 제출하면서 원인을 즉각 제거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침출수는 비만 오면 넘쳤다. 비오는 날 침출수를 모으는 저류조의 둑이 1m 정도 터져 대량의 침출수가 방류되기도 했다. 농경지에 독극물이 유입되는 걸 속수무책 지켜봐야만 했던 주민들은 익산시가 저류조의 침출수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일 거라고 의심한다.

주민들은 페석산에 독극물이 매립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콘크리트 구조물 등을 설치해 독극물 범람을 예방해 달라고 익산시에 수년 동안 요구했다. 하지만 익산시는 이를 묵살해왔다. 삽으로 금방 허물 수 있는 둑을 유지해 온 것은 우기에 고의적으로 무단 방류를 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지점이다.

익산시는 이에 앞서 침출수를 금강동 하수처리장을 통해 방류하다가 전북지방환경청으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서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또한 문제의 폐석산 불법매립을 익산시가 적극적으로 도운 사실도 드러났다.

당초 복구물량의 무려 3배에 육박하는 추가 복구를 승인하거나 복구율 97.6%의 복구지에 또다시 24만9,458㎥를 추가 승인하는 등 비상식적인 변경승인이나 연장승인을 불법적으로 자행했다. 관리감독 의무가 있음에도 석산복구지 승인 후 계획대로 복구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석산복구지 점검계획서를 만들어 점검한 사실이 일절 없었다.

익산시의 자체 감사 결과다. 2017년 2월 27일 공인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문제의 폐석산 주변 지하수의 독극물(비소) 오염도는 경천동지할 상태였다. 먹는물 수질 기준의 620배를 초과한 것이다.

그러나 정헌율 시장은 '도의적 책임' 선에서 슬그머니 사과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직접책임'을 희석했다. 기회주의자가 되어 환경부에 복구비 부담을 떠넘기며 주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환경부가 복구비 전액을 내놓을 수도 없거니와 필요한 만큼의 비용을 적기에 내놓을리도 만무하다.

이대로는 폐석산 독극물 대란은 장기화 될 게 뻔하다. 무엇보다 환경부가 어느 시점에 비용 부담을 중단할 경우 익산시가 직접 처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지형에 다다르게 되어 있다. 정헌율 시장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정 시장은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않고 '청사 신축이다' '유라시아 철도 시발역이다'에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며 인기영합 정치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사이에 익산시는 죽어가는 도시가 된 것이다.

정헌율 시장은 다음과 같이 익산시민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은 저의 무능과 익산시 공무원들에게 있습니다. 저는 책임을 통감하며, 주어진 임기 동안 폐석산에 묻힌 독극물을 전량 퍼내는 것으로 시민들에게 사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렇게 시민들 앞에 사과한다면, 그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인정할 것이다. 그가 진정성 있는 익산시의 수장이라는 점을 인정받을 것이다. 그나저나 정헌율 시장은 왜 제대로 된 사과를 할 줄 모르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