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몰랐을 리 없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당장 발등의 불인 추경안을 처리할 수 있고, 뜨거운 감자를 버릴 명분을 동시에 만들었다.

의도했는지 아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두 개혁 입법이 무산된다면 민주당은 자한당에 동조한 죄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복귀했다. 국회는 극적인 정상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현안들이 정상적으로 처리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각 당의 추구하는 목적이 확연히 다른데다, 특정한 현안에 대해서는 각 의원들의 득실 계산이 다른 탓이다.

항복에 가까운 '사실상 무조건' 국회 복귀를 택한 자한당의 입장과 속내는 빤히 드러나 있다.

국회선진화법 위반 등으로 구성원들 대다수가 피고발된 상태다.

법조계는 자한당 소속 의원들의 경우 혐의가 입증되면 양형규정상 의원직을 상실할 것으로 전망한다.

자한당이 보여 온 그동안의 행태를 감안하면, '고발 취하'와 국회차원의 선처 분위기 조성이 복귀를 선택한 직접적인 이유다.

자한당은 6월 임시국회에 상정된 추가경정예산안을 그 협상의 무기로 삼았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은 오는 19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표면상 추경안 처리를 위해 자한당의 복귀를 유인했다.

미끼는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위원장 중 민주당이 선택한 곳 외의 나머지 특위 위원장을 자한당이 맡기로 한 것이다.

동시에 민주당과 자한당, 바른미래당은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을 무조건 교체하기로 합의했다.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용'은 정치개혁의 골자이고 정의당의 당론이다. 또 국민적 요구다.

당초 심상정 정의당 위원이 정개특위 위원장이었던 것은 여·야 4당이 그러한 시대정신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사법개혁 반대'를 당론으로 세운 자한당을 불러들이면서 정의당을 중심축에서 배제했다.

더구나 정개특위나 사개특위 위원장 중 한 자리를 자한당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어느 쪽을 택하든 자한당은 두 개혁입법을 공전시킬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셈이다.

막상 자한당이 복귀하자 부담을 느낀 민주당이 두 특위 위원장 중 한 자리를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어쨌거나 여러 정치역학 면에서 민주당은 정개특위 위원장을 선택해야 하는데도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자한당은 이 같은 상황을 국회 복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예측했을 공산이 높다.

그 예측의 지표는 매우 단순하다.

거대 정당과 지지층이 겹치는 소수정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해 상당수 의석을 잃게 되는 것은 자한당만의 처지가 아니다.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도 같은 처지다. 게다가 민주당은 야3당과 정개특위 출범의 당위를 공유하면서도 선거법 개정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무엇보다 비례대표제 의석을 늘리기 위해서는 지역구 의석을 줄여야 하는데, 익산처럼 급격한 인구 유실을 겪으면서 상한선 기준일을 넘겨 더 이상 두 개의 의석을 유지할 수 없는 지역이 의외로 많다.

정당의 이기주의에 앞서, 1석으로 줄어드는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부심하고 있다. 그들의 좌고우면이 시민들에게 포착되는데 자한당이 모를 리 없다.

단적으로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을 당론으로 내세웠으면서도 내부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

그런데 검경수사권 조정 등이 골자인 사개특위의 안건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공약이다.

자한당은 이 사개특위를 틀어쥐고 민주당을 흔들면 민주당이 못 이기는 척 선거법개정 추진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에 따라 복귀를 결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나아가 자한당이 사법개혁을 민주당의 뜻대로 추진할 턱이 없으니, 두 개혁입법은 민주당이 자한당을 끌어들이면서 정의당을 중심에서 밀어낸 순간 무산이 예고 된 꼴이다.

좌고우면은 시민을 잃을 것

그렇다면 민주당은 자한당의 국회 복귀 협의 과정에서 이를 몰랐을까.

몰랐을 리 없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당장 발등의 불인 추경안을 처리할 수 있고, 뜨거운 감자를 버릴 명분을 동시에 만들었다.

의도했는지 아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두 개혁 입법이 무산된다면 민주당은 자한당에 동조한 죄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민주당은 겉으로는 참민주주의의 의제를 앞장서 표방해 왔으면서도 속으로는 유불리를 따지며 미적거리다가 종국에는 정파이기주의에 경도되었다는 점에서, 애당초 악역을 자초한 자한당보다 죄질이 더 무겁다.

더구나 '촛불시민혁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당론으로 채택한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자한당이라는 너울을 끌어들여서 양 개혁법안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마치 떠밀려 표류하도록 의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불편한 시나리오는 국민들도 읽고 있다.

민주당이 어떤 수작을 부리든 국민을 배신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국민들은 양당의 기득권 동맹 조짐을 자한당이 복귀 한 순간부터 눈치채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법안 중 선거제 개혁의 본질을 다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목적은 거대 양당은 과다대표되고, 소수정당은 과소대표되는 식으로 '민심을 왜곡해서 반영(불비례성)'하는 현행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민심을 그대로 반영(비례성)'하는 제도로 '개혁'하자는 것이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연동형 비례제를 줄곧 주장해 온 이유다.

19대 국회 때는 '50% 연동형 비례제' 개정을 정의당과 함께 주창했고, 2015년 7월26일 민주당 혁신위원회에서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골자로 한 '5차 혁신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현행 선거제가 불완전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고, 직접민주제 보완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확인시켜 준다.

민주당이 이제 와서 그러한 주창을 부정한다면, 똑같은 선거제의 문제를 야당이었때와 여당이었을 때 바라보는 시각이 각각 다르다고 인정하는 꼴이 된다.

민주당이 시험대에 올랐다.

개혁을 무산시키기 위해 자한당을 끌어들였다는 추론이 틀렸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개혁정국은 종전보다 더 짙은 안갯속에 빠졌다.

민주당이 스스로 택한 험로다.

정개특위 활동 시한은 한 달 보름 앞으로 임박했다.

민주당이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 비상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야 하는 까닭이다.

양 개혁 특위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혁명' 정부로서, 그 지위를 확인하는 정통성 확보의 관문이다.

민주당이 그 사실을 망각한다면 '시민'을 잃게 될 것이다.

특히, 양 개혁 법안 상정 불발의 책임은 전적으로 민주당이 져야 한다.

그 사실을 부정해도 회피해도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