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시민과 자치단체가 살림살이를 함께 걱정하고, 선행해야 할 일과 선결해야 할 사안들을 공유하며, 구석구석의 문제들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그런 시민들은 육성된다.

노무현 서거 10주기, 그를 기리기 위해 봉하마을에 몰려든 행렬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장사진을 쳤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노무현은 재임 전이나 재임기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그가 보낸 짧은 여생도 사람들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인간 노무현의 마지막 454일간의 기록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시민 노무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의외로 뜨겁다.

지난 23일 개봉한 이 독립영화는 개봉 6일만에 1만 관객을 돌파했다.

몇 개 되지 않는 상영관과 평일 1회 한정, 오후 1시대에 편중된 스크린의 사정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다.

노무현과 그의 정치적 동지들이 자연인으로 돌아가 함께 나눈 담론, 혹은 노무현의 일상을 담은 영화에 대한 평론이란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다만, 우리 사회에 아직도 여전한 노무현 신드롬의 근원을 이 독립영화가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일별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 영화는 '노무현의 무엇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것일까'하는 질문에 직답하고 있다 할 것이다.

'시민 노무현'이라는 제목이 이 영화의 내용을 함축하여 드러낸다.

노무현은 보통사람 '시민'이었고, 우리 사회에서 억압받거나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보통사람'의 지위를 확인하는데 전부를 바쳤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노무현이란 '힘을 뺀 권력' '정의로운 시민'으로서의 노무현이다.

권위주의 청산과 특권주의 해체를 지상명령으로 삼고 그 실천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노무현을 보통사람들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상한 시대, 노무현은 출현부터 남달랐다. 상고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더니 당시 무소불위의 국가보안법에 유린당하는 사람들 편에 섰다.

국가보안법을 초법적 칼로 휘두르는 정치권력은 그에게 직접 칼을 겨눴다.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은 당시 너무나 당당하던 거대한 정경유착세력에 맞섰다.

논리정연했고 절규에 가까운 그의 질타는 바로 앞에 앉아있는 경제권력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보통사람들은 보통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정경유착세력들에 대해 새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노무현은 출범식 연설에서 부와 권력으로 국민적 의무와 공적 책임을 유린하려는 편법과 변칙 행태에 과감하게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법과 제도를 대폭 개혁하겠다고 했다. 꼴찌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낙후된 지역 경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의 도움없이는 안 되기에 보통사람들을 믿고 용기를 가지고 힘차게 출발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그는 정권의 시녀였던 검찰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보통사람이었다.

기득권의 벽에 부딪혀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법부개혁에 실패했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제도 개선도 미완의 상태로 남았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 역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보통의 상식이 우리 사회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다.

지난 10년은 공전의 역사다. 하지만 노무현은 어느 사이 우리 곁에 되살아났다.

미증유의 비극 세월호와, 박근혜의 국정농단 탄핵과, 노무현 정신을 잇는 문재인 정부와, 그 촛불들과 함께 노무현은 우리 곁에 왔다.

역량있는 '시민'이 곧 경쟁력이다

노무현은 보통사람이 스스로 자기 지위를 찾아가게 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노무현은 보통사람들이 되었다. 노무현이 준비하고 치른 대가는 '시민'을 세웠다.

노무현 서거 10주기, 시민의 가치가 시대의 상처 아래에서 돋아오르는 생살이 된 것이다.

진보의 종착지란 시민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다.

새로운 노무현은 사회적 시민권을 요구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깨어나기를 바란다.

지역주의 타파도, 분권·균형발전도 자기 몫이라 생각하는 '시민'인 나를 주목하는 세상을 바란다.

자치단체가 이 새로운 시대의 지표인 '거버넌스'를 도외시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방자치란 중앙에 예속된 지방의 자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자립'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필요하다. 자치단체가 애향심 강하고 역량 있는 시민을 육성해야 하는 까닭이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나와 이웃과 동네를 변화시키는 시민, 공동체의 가치 극대화에 협동하고 협력하는 시민, 지역공동체의 특화를 고민하고 주도하는 시민, 지역 생산품을 앞장서서 소비하는 시민들이 곧 자치단체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들어선 것이다.

시민과 자치단체가 살림살이를 함께 걱정하고, 선행해야 할 일과 선결해야 할 사안들을 공유하며, 구석구석의 문제들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그런 시민들은 육성된다.

익산시와 같이 현안문제들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통행 한다면 그런 시민들이 존재할 자리란 없다.

지방자치의 근간인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러하다. '시민'을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자치단체장을 선출직으로 정한 이유다.

시민들이 뽑은 이유를 시정의 지표로 삼되, 시민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반영하라는 취지인 것이다.

분권의 완성 역시 시민 중심 시정운영 또는 국정운영이다. 노무현이, 시민들이 대가를 치렀다.

이 시대 우리가, 자치단체가 그 결실을 지불 받아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상하로 배열된 종적인 사고의 틀, 달리 말해 폐쇄적인 틀에 갇힌 인물이 자치단체장이라면 이 역사적 소명이 남의 일일 것이다.

정헌율 시장의 집무가 벌써 3년을 지나가고 있지만, 익산시정의 방향성은 거버넌스와는 무관해 보인다.

행정공무원 출신의 한계 논란을 자초하지 않는 측면에서라도 당면한 현안문제들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익산시가 더이상 시대착오적인 진격의 거인에서 탈태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