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기왕에 시작한 일, 진정성을 가지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당면한 문제 해결에 진력해 주기를 바란다.

정헌율 시장이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선정을 익산시정의 중추 목표로 삼고 있다.

익산역이 그 필요충분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저돌적으로 밀어붙여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열렬하게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없다.

익산역에 대한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선정 논의 자체가 전북도민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익산역은 철도를 연계하는 거점 기반이 취약하다.

뿐만 아니라 익산시는 그 기반 구축을 위한 협치와 추진 역량이 미약하다.

정 시장의 관련 행위들이 공허한 이유다.

정 시장이 유라시아 철도거점도시 구축을 2019년 시정의 역점시책으로 세우게 된 발단은 지난해 11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철도 인프라 구축 방안 세미나였다.

이날 김시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철도전문대학원 교수가 남북철도 시발역으로 서울역 등 5곳을 추천하고 익산역 등 3곳은 후보지로 제안한 것이다.

김 교수가 적합(추천)역과 후보지를 구분한 주요 요소는 국제철도 플랫폼 확보여부·경제성(배후도시 인구규모)·상징성이었다.

서울역을 비롯한 삼성역·부산역·목포역·광명역은 모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익산·오송·동대구역은 적정한 플랫폼은 확보하고 있으나, 철도시설 이용인구(배후인구 포함)의 하한선을 500만명으로 잡았을 때 미달되는 것으로 평가했다.

고속철도 출발지로서의 상징성은 없는 지역들이었다.

김 교수의 평가 결과는 익산시에 좌절을 안겨준다.

추천역들과의 경제성(인구) 격차는 현실적으로 좁히기 어려운 탓이다.

주요 평가 조건이 플랫폼과 이용인구라고 본다면, 익산역은 절반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애당초 익산역은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선정 경쟁 대상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지표다.

하지만 김 교수의 고속철도 출발지로서 적합 여부를 기준으로 삼은 상징성 평가는 공신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시발역이란 출발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간 이동을 할 때 거치는 세관검사·출입국관리·검역 등 3대 수속 기능을 수행하는 역을 말한다는 점 때문이다.

김 교수가 목포역이 호남선의 시점 혹은 종점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시발역으로 추천한 것은 아무래도 부적절해 보인다.

만약 목포를 시발역으로 선정한다면 최소한 목포 이북의 호남지역사람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남쪽을 내려가서 3대 수속을 밟은 뒤 유라시아 종단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시 자기집을 지나가야 된다.

그런데 목포 역시 철도이용 인구 규모에서 익산역과 마찬가지로 미달 평가를 받았다.

'철도운행을 기준'으로 한 정량적 평가에서 목포나 익산이나 모두 경제성이 미흡한 것이다.

따라서 시·종점이라는 물리적 이유를 시발역 적합여부로 삼은 잣대가 잘못되었다.

그런데 익산역을 시발역으로 선정한다면, 당장 익산 이남 사람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순방향으로 상행하기 때문에 '철도 이용객 기준'의 경제성이 확보된다.

특히, 익산역은 충청 이남 사람들까지 이용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당초 김 교수가 수행한 정량적 평가와는 다르게 익산역은 철도이용 배후인구를 충족하고도 남을 공산이 큰 것이다.

이 같은 점들을 감안한다면 익산시는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선정 경쟁에 뛰어들어볼 만하다.

정 시장이 주민과의 순회 대화에서 감초처럼 내세운 'KTX익산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 장항선의 4개 철로가 분기하는 지역'이라는 플랫폼의 우수성이 빛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익산시는 철도거점도시를 구축하는데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그 주요 기반인 '복합환승체계 구축'이나 '전북권 광역전철망 구축' 여부는 한마디로 미지수다.

같은 후보지인 동대구역이 이미 구축하고 있는 풍부한 철도 거점 기반을 감안하면 이 부문에서 익산역은 아예 경쟁력이 없다.

익산역 '복합환승체계 구축'의 경우는 민선 4기에서부터 추진됐고, 민선 5기에는 익산시와 현대엠코(한국투자신탁)가 투자협약을 체결(2012년 5월 3일)하는 등 착공단계에까지 진전을 이룬바가 있었다.

그러나 익산지역 상인연합회가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복합환승센터 내에 대규모 판매시설(백화점)을 갖추는 계획 때문이었다.

지역상권이 붕괴된다는 것을 전제한 생존권 수호 차원의 반대였다.

민간자본이 투자이익이 없는데 3,000억원에 육박하는 사업에 투자할 까닭이 없었다.

탄력을 받았던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에 떨어졌다.

협약 2년 뒤 민선 6기 익산시장은 복합환승센터 사업추진 중단을 공식화 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다. 정 시장이 이 사업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규모를 확대해서 유라시아고속철도 시발역의 기능까지 감당할 수 있는 '광역환승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방향 설정을 위한 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그런데 정 시장은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관심 조차 보이지 않고있다.

당초 이 사업을 반대했던 상인들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하고는 상관없이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이런 협치 부재는 지극히 불안한 요소다.

지역간 분열과 반목을 조장한다.

갈등 구조 안에서 목적을 달성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불통과 불화의 끝은 어디인가

'전북권 광역전철망 구축'의 경우는 정 시장이 민선 6기 후반기에 들고 나온 것이다.

타 지역에서의 접근성을 향상해 철도 이용객들의 편의성을 증진시키고 KTX익산역의 효용가치를 극대화 하겠다는 정책이다.

이 사업은 2단계에 걸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1단계는 익산과 전주를 운행하고 있는 전라선 25.5킬로미터와 익산-군산선 21킬로미터, 논산-익산-김제-정읍을 운행하고 있는 호남선 80.6킬로미터 구간에 전철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2단계는 전주역-전북대-도청-혁신도시-김제역을 연결하는 레일을 깔고 트램(노면 전차)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익산시는 1단계부터 절벽에 부딪혀 있다.

비용이 1조원 가까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사업이다.

1단계사업 노선들을 운행하는 기존 열차로도 수요를 충분히 소화하고 있는데,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새로운 교통수단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의를 끌 수는 없다.

또한 철도 교통수단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국토교통부의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 계획은 5년마다 한 번씩 수립되는데, 다음 계획은 3년 뒤인 2021년에 수립한다.

그런데 익산시는 독자적으로 국토교통부에 전북권 광역전철망 구축 사업안을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

절차상 전라북도를 경유해야 한다.

그러나 정헌율 시장은 전라북도가 부송4지구 택지개발 승인에 조건을 걸며 미적거리자 도지사와 대립각을 세우고 불화를 조장하고 있다.

특히 전주쪽에서 혁신도시역 설치 주장이 불거졌을 때, 지난 지방선거기간 중에 이를 강력 성토하는 등 선거의 이슈로 삼은 바람에 전주권 정치인들과의 갈등이 심화됐다.

지난 2월 KTX혁신역 타당성 용역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이 같은 결과를 예측하며 공연히 논란을 키우지 말라고 조언했던 이춘석 의원은 정 시장이 익산역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선정이나 전북권 광역전철망 구축을 추진하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공론화하는 것 자체에 우려를 표명하고있다.

도민들 및 정치권의 지원과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익산역이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적합지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론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무엇보다 전주 중심의 사고를 깰 만한 정치적 역량이 정 시장에게는 없어 보인다.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력해야 할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려는 노력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재임기간 중에 익산시의 명운이 걸린 일에 올인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일을 추진하다가 잘못되어도 책임을 전가할 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비전없는 일을 달성하겠다며 조직을 개편하고, 외부인들을 영입하고, 새 기구에 업무를 분장했다면 그것은 익산시민들을 속이는데 시민들의 혈세를 쏟아붓는 형국이다.

나중에는 시민들을 볼모삼아 뒤로 숨고, 시민들을 동원해 뒤처리를 하지 않을까 적이 우려되기까지한다.

기왕에 시작한 일, 진정성을 가지고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당면한 문제 해결에 진력해 주기를 바란다.

값싼 자존심을 버리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며 험로를 마다하지 않는 태도만이 믿음을 세울 수 있다는 전제 앞에서의 맹성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