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전쟁터에서 온갖 전설을 양산한 이순신 장군이 충성과 희생의 상징일지언정 민주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는 없다.

두루 알다시피 이순신이야말로 이념과 정파의 희생자다.

광화문 광장 재조성 설계도가 난데없는 이념 논쟁의 불씨가 됐다.

서울시 공모에 당선된 이 설계도의 핵심은 중심부에 차도가 없는 온전한 광장을 조성하는 것인데, 기존 광장에 있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북서쪽 400m 밖으로 옮기는 것이 입길에 올랐다.

동상이 있었던 자리를 포함한 광장 바닥은 역사적 사건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하고, 촛불시민혁명을 형상화한 장식도 새긴다는 설계다.

공모 결과가 발표된 직후 반대론이 제기됐다.

광화문 광장의 상징물을 없애선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당선작을 낸 대표 설계자는 "광장 중심은 역사의 축으로 비워두고 영웅들은 옆에서 지켜보도록 하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 이순신 장군 동상 인근인 광장 중남부 지점에 촛불 시위를 새기는 행위는 '이념·정파적 성격이 짙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발표 하루만에 "시민들이 이순신 장군 동상의 존치를 원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며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 시장은 또 "비판과 반대를 억압하면 폭발하게 된다"면서 "민주주의라는 게 늘 소란한 것이다.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1,040억원이나 투입되는 광화문 광장 재조성사업이 결국 민주주의 광장의 의미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풀이된다.

그의 "당선작 설계자들은 동상 이전을 작은 요소 중 하나로 생각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심각한 것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에서 그가 여론을 어떻게 대하는지의 태도가 충분히 읽힌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 동상이 광화문 광장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또한 동상이 있던 자리에 촛불 시위 장면을 새기는 것이 이념·정파적 행위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전쟁터에서 온갖 전설을 양산한 이순신 장군이 충성과 희생의 상징일지언정 민주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는 없다.

두루 알다시피 이순신이야말로 이념과 정파의 희생자다.

그는 모함에 의해 참혹한 전쟁터에서 혁혁한 전공을 올리고도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백의종군으로 임금에게 승전보를 안겨주고도 조정을 능멸했다는 이유로, 죽음의 목전에 다다르는 고문을 감당해야 했다.

형장에서 바른말을 한다고 "쳐 죽여라"하는 임금이었다.

선조는 끊임없는 살육으로 자신의 권력과 왕권을 확인하던 남자였다.

이순신은 전제국가 시대 군인의 전형이었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 아득한 바다에서 적과 맞서야 했고, 등 뒤에서는 자신의 목에 보이지 않는 칼을 겨누는 임금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순신은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던 남자였다.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던 남자였다.

임지에서 임금에게 올리는 장계에 "전하, 전하의 적들이 전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신은 결단코 전하의 적들을 전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적들은 전하의 적이 아니라 신의 적인 까닭입니다"라고 적었던 남자였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며 임금을 안심시키던 이순신.

그를 왕은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죽이고 싶었고,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살리고 싶었다.

죽음의 기로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결정해야 했던 이순신.

그는 압제의 덫에 걸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밖에 달리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전장으로 자신을 밀어 넣은 세상의 덫에 맞서지 않았다.

않았다기보다 그 보이지 않는 덫은 칼로 벨 수도 없었다.

억압에 순응하고 권력에 맹종해야 하는 하늘 아래 그가 살았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순응한 군인의

동상이 광장의 상징이라니

그의 동상이 광화문 광장의 상징이라 말하는 그들은, 국민에게 맹종을 요구하는 무리들일 것이다.

이순신이 나라를 지킨 덕에 우리는 그 광명 아래 민주주의를 획득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독재에 맞서 온몸을 던져 저항하지 않았다면, 유혈이 낭자한 투쟁사의 부침이 없었다면 광화문 광장은 '민주주의 광장'의 의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광장을 광장답게 재조성해 국민에게 돌려주는 길 위에서, 이순신이 광장의 상징이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전장에 있는 이순신의 칼로써 막아낼 수도, 헤쳐나갈 수도 없는 저 위의 세상에서 붕당 놀음에 혈안이던 자들의 후예들일 것이다.

기실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면서 사직의 안위를 명분으로 국민들을 손바닥 뒤집듯이 사지로 몰아넣은 자들의 후예들이 분명할 것이다.

칼도 화살도 닿지 않는 권력의 방호벽 속에서 선민의식을 키우고, 노동은 천민에게 주어지는 호패와 같다고 여겼던 오만무도한 자들의 후예들일 것이다.

권모술수를 가장 갖춰야 할 능력으로 여기면서, 상대방의 등에 칼을 꽂고, 순박한 백성을 가축 정도로 취급하던 '비겁무쌍'하고 '극악무도'한 자들의 후예들일 것이다.

촛불 행렬을 가로막아 방해할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광장에서 무엇 때문에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광장에서 소란을 피우며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난신적자들이라는 이순신의 호통을 들으라는 것인가.

성웅 이순신을 전쟁터보다 더 복잡한 광장에 세워놓는 자체가 불손한 행위가 아닐까.

이순신 장군은 지하에서조차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