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그래서 경청은 늘 불편하다. 그 이후에는 경청보다 더 모진 인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보편성에서 벗어난 나와 다른 상대방의 의견은 이해하는 것부터 어렵다. 생각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경청이란 상대방에 대한 조응을 전제한다. 자극을 받아야 하고 반응해야 한다. 그러니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연말이 되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경청하였는가"이다. 경청의 필요 가운데 하나는, 나 위주의 판단이 아니라 상대방 의견과 내 의견이 교집합되는 면적을 구하기 위해서이니, 다분히 직업적 관성에서 비롯한 질문이다. 자기 불만에서 기인한 타인에 대한 폭력을 견제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청이란 나와 상대방의 교집합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교집합 밖에 있는 상대방의 독자적인 의견을 가려내는 방법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경청은 늘 불편하다. 그 이후에는 경청보다 더 모진 인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보편성에서 벗어난 나와 다른 상대방의 의견은 이해하는 것부터 어렵다. 생각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경청이란 상대방에 대한 조응을 전제한다. 자극을 받아야 하고 반응해야 한다. 그러니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상대방의 의견이 자기 기준에서 전부 무가치한 것일 수도 있다. 보편성에 배치되어 고려 할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다른 의견은 보편적이지 않은, 또는 나와는 다른 생각에 의해 도출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하물며, 내 의견이 틀렸고 상대방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당장에는 알 수 없는 처지이고, 상대방 의견이 억압과 편견·기득권의 적폐를 혁파 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처지라면, 자신의 단견을 뒤로 밀어놓고 다른 의견을 통해 내일을 예측해 보는 기회들은 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청을 잘 하지 못한다. 내 생각이 보편적 가치에 준거하기 때문에 내 의견이 정당하다고 믿는 탓이다. 스스로 균형을 잃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눈에는 다른 의견이 이상하기만 하다.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진다.

나와 다른 생각의 결정을 헤아린다는 것 자체가 낭비라는 생각이 집중력을 분산시킨다. 근거없는 맹신은 편견에서 비롯한다는 판단 기준 탓이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 "경청하였는가" 연말에만 할 것이 아니라 월말마다, 또는 매일 저녁에 질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청'이란 매번 자기혁명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경청하였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번 연말에는 익산시도 같은 질문을 했는가 싶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 시정운영 방향의 길잡이가 될 사자성어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선정했다니 말이다.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의 '구동존이'는 중국의 탁월한 외교지도자이자 총리였던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 대표들이 모인 반둥회의에서 중국측 대표로 연설한 평화공존 5원칙에 대한 보충발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피력하면서 유래되었다.

당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은 서구 제국주의 로부터 정치적·경제적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또 미국과 중국으로 대별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적 차이에 따른 각국간 갈등이 팽배했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구동(求同)과 진영의 차이를 인정하자는 존이(存異)는, 당시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 국가가 국제사회 속에서 확보해야 했던 당위(외교적 지위)를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그들 국가의 외교적 방향성의 천명이었다.

이후 특히 중국은 국제사회 속에서 진영논리를 허물고 서구열강들 속에서 동등한 경제·외교적 지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구동존이'의 효과와 영향력을 확인한 중국은 현재까지도 그 정신을 외교 제 1원칙으로 준수하고 있다.

'구동존이'가 혁명적 키워드로서 국제사회가 거부할 명분을 찾지 못하는 사이 중국이 뜻하는 바를 관철시킨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은 스스로에게 "경청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본적이나 있을까. 사드문제에 대한 대한민국의 다른 입장을 이해하려고 해 보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태도 그 어디에서도 '구동존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국내에서 혐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대한민국으로 향하려는 중국 관광객들의 발을 묶고, 한류문화유입을 차단하고, 남북화해와 북핵 문제에 뒷짐을 졌다.

중국 정부의 치졸한 행태는 사회주의 체제를 십분 활용하는 일사분란한 행동을 주도하면서도 시장에 개입하지 않은 척 중립을 지키는 척 시치미를 떼는 데서 드러난다. 사실, 저우언라이의 '구동존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유교의 핵심 가치인 인(仁)과 서(恕)의 원리를 준용한 것이다. '구동'은 '내가 원하는 것은 남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적극적인 배려의 준칙인 '인(仁)'의 개념에서, '존이'는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라는 소극적 배려의 준칙인 '서(恕)'의 개념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저우언라이는 1955년 반둥회의의 중국대표 보충발표문에 직접 '논어(論語)'의 관련 구절을 인용했다는 점도 확인했다. 2,400여년이 지난 인도주의적 세계관을 함축한 표어로 세상을 새롭게 바꾼 것인데, 건국 초기부터 '구문화(舊文化) 개조'라는 구실 하에 공자의 사상과 논어 비판을 줄기차게 행해 온 중화민국의 최고 지도자가 구문화의 정점에서 새 시대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 표어로 남은 바꾸면서 자신은 표어에 맞게 바꾸지 않는 점은 아이러니이거니와, 불평등과 억압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세운 공산당의 수장이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못해 밀어냈던 구시대의 사상을 고찰하고 경청에 성공한 결과가 '구동존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시사점일 것이다.

이는 특히, 중국이 새로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폐기 처분했던 낡은 체제의 핵심을 채용·보강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다시말하거니와 중국은 경청을 통해 '구동존이'를 찾아냈지만, 그 표어 이후 상대방에 대한 '경청'이 부족하다. 자신은 한 족장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자기의 속도와 보폭, 방향에 맞추라고만 한다.

그 폐해는 갈등이다. 무역전쟁, 영유권분쟁, 강제 복속 후유증, 차별 철폐와 자율을 주장하는 소수민족들과의 대치, 불평등과 억압의 상징이 된 일당주의에 대한 반발 등은 끊임없이 중국을 위협한다. 인구와 땅의 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큰 대국의 현주소이다.

인구면에서는 대한민국의 27배나 된다. 익산시는 대한민국 안에서도 축소일로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갑·을 지역을 민주당과 평화당이 분점하고 있고, 자치단체장은 야당인 평화당 소속이다. 익산시는 올해 성장동력으로 삼을 만한 수많은 기회들을 만났고, 현재 진행형인 현안 가운데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선정 문제는 익산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익산역이 유라시아철도 시발역으로 선정되면 새만금과 국가식품클러스터·전라북도는 물론 호남과 충남 일부의 물류와 승객을 집합시키는 철도의 거점역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는 기 구축 된 철도체계나 입지 조건 등의 면에서 익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비전이며, 전라북도가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 특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를 위해 명운을 걸고 성사시킬 가치가 있는 사업이다.

호남지역 철도 중에서는 익산역이 가장 적합한 입지조건을 지녔다는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익산역 중심의 광역전철망 구축이 이 백년대계의 관건이다. 그런데 전라북도와 여당의 협력 없이는 요구되는 기간내에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구동존이를 2019년의 방향성으로 삼은 익산시의 의지는 결연해 보인다. 동시에 소통에서 가장 기본이면서 가장 어려운 '경청'을 새해의 화두로 삼고 이를 대외에 천명한 익산시의 용기에 기대를 건다.

정헌율 시장을 필두로 익산시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지역 정치권이 '공통점을 구하고 차이점은 놔둔다'는 변화의 표어를 얼마나 경청하느냐가 '익산역의 유라시아철도 시발역 선정'의 향배를 가를 것이다.

새해 사자성어로 선정한 익산시의 마음이 만방에 공유되기를 바란다. 또한 스스로에게 가혹한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익산시의 의지와 낮은 자세와 정성을 협력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익산시의 각오가 중도에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