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소비하면 행복해지는가. 소비를 늘리는 것보다 욕망을 줄이면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욕망이 가득 차면 행복할 수 없다. 자본주의란 소비의 과학과 인간의 나약함이 만나는 것이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방영된 3부작 EBS 다큐프라임 '빚'의 반향이 크다. 이 경제대기획의 앵글은 가계부채 1,500조, 가구당 부채 7,022만원 시대를 비추고, 1부 '부채사회'와 2부 '빚의 역습'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돈의 진실, 민주적이지 않는 금융의 실체, 소비 주체들이 마케터들에게 조종당하는 현실을 여과 없이 조명했다.

은행에는 돈이 없다. 지급준비율을 제외하고 예금액 대부분은 다 대출해줘 버렸다. 우리나라의 지급준비율은 보통 3.5%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돈은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상 잡고 있는 것이어서 이마저도 은행이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금융시스템의 돈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고, 단지 컴퓨터 화면에 입력된 숫자로만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예금액을 같은 날 전부 찾는 뱅크런이 발생한다면 은행은 파산을 피하지 못한다. 은행이 예금 한도 내에서만 돈을 빌려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있는 것이다.

은행은 고객이 대출을 해가야 새 돈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남의 돈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게 은행이다. 은행이 대출을 권하는 이유다. 매리너 에클스 FRB(미국 연방준비제도 중추적 기관) 의장은 "우리의 통화 시스템에 빚이 없으면 돈도 없다"고 단언한다.

통화량이 오르면 화폐가치도 떨어져 물가가 오른다. 순간 팽창(통화량 증가)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순식간에 추락한다. 돈이 돌지 않으니 기업이 부도가 나고 고용이 줄어든다. 경제의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망각하고 빚으로 쌓아 올린 호황에 도취되어 있다.

상품을 만들거나 일해서 번 돈이 아니라 빌린 돈의 팽창은 위축(금융위기)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는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니다. 은행가를 위한 은행가에 의한 민간은행 시스템이다" 엘렌브라운(미국공공은행연구소 대표)의 말이다.

벨기에 중앙은행의 간부와 루벵대학 국제금융학 교수를 지낸 금융문제 전문가 베르나르 리에테르는 그의 저서 '돈의 비밀'에서 "은행은 당신을 각박한 세상으로 내보내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라고 한다"고 했다. 존 애덤스 전 미국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빚으로 한 나라를 정복해 예속시킬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이토록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가. 우리는 온갖 전략을 동원해 구매를 부추기는 광고의 바다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당장 돈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게 하는 유혹을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로 받아들인지 꽤 오래되었다. 이는 마케팅의 완승을 방증한다.

마케터들은 고객의 머릿속을 더 깊이 분석하기 위해 뇌 과학을 활용해 왔다. 신경 과학과 마케팅을 결합한 뉴로마케팅이 광고의 핵심이다. 현대의 인간은 소비에 그냥 끌려가는 노예라고 할 수 있다. 광고를 보기 전에는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안 했던 물건들을 원하게 된다.

뉴로마케팅은 소비=감정이라는 속성을 발견했다. 마케터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여성인 이유다. 여성은 감정적으로 훨씬 더 약해서 쉽게 사고 많이 사기 때문이다. 여성은 현장에 있지 않은 사람의 물건까지도 산다.

같은 맥락에서 구매 결정은 95% 이상의 무의식 상태에서 하고, 의식은 무의식이 하고자 하는 소비를 점차 합리화시켜준다. 우리는 브랜드를 통해 나를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쇼핑은 감정이다.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착각하는 것일 뿐 결국 감정이 지배한다.

뉴로마케팅은 또 사람들이 불안한 감정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소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비의 네 가지 유형인 '없어서' '망가져서' '더 좋아 보여서' '그냥' 등은 모두 '불안'에서 기인한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부추기는 강력한 촉매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카드다. 카드는 뇌의 중추신경을 마비시킨다. 카드를 낼 때 뇌가 고통을 덜 당한다. 카드를 내고 돌려받기 때문에 손실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죄책감도 덜해서 자꾸 소비하게 된다.

슬픔도 소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신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슬픔 감정을 느낄 때면 평소보다 더 간절히 물건이 갖고 싶어지고,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내려고 한다. 애정적인 부분의 불균형도 쇼핑중독의 많은 원인이 된다. 이렇게 미친 짓을 했구나 하면서도 합리화를 또 한다. "난 필요했어"라고.

어떻게 하면 소비를 제어할 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나는 쇼핑중독에 무력하다는 걸 선언하는 것이다. 혼자 할 수 없으니 주변의 협력을 받아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큐프라임은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광고나 감정, 카드 등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사실을 포착해냈다.

자존감이 낮으면 현실 자아와 이상 자아 간의 차이가 크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이 소비한다. 낮아진 자존감은 소비를 통해 잠시 회복되지만, 다시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된다. 결국 낮은 자존감이 과소비를 불러온다. 반복되는 과소비는 중독 소비로 간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자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소비하면 행복해지는가. 소비를 늘리는 것보다 욕망을 줄이면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욕망이 가득 차면 행복할 수 없다. 자본주의란 소비의 과학과 인간의 나약함이 만나는 것이다"

이 다큐를 시청한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신이 매일 조종당하는 소비자라는 사실을 자각했을 것이다. 자존감 회복이 절실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을 것이다.

반 민주적 시스템을 개혁해야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소비할 수 있는지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스마트폰 앱들은 끊임없이 열등의식을 자극한다. '자신에게 보상하라'고 끊임없이 세뇌한다. 사람들은 필요하기보다 '갖고 싶어서' '나한테는 없으니까' '나는 고생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소비한다.

비싼 제품이 사회적 지위를 높여준다는 암시를 노골화한 다음의 자동차 광고 카피들은 우리가 어디에 서있는가를 단적으로 방증한다. "우리 아빠를 친구들이 쳐다본다는 것, 음~ 기분이 좋습니다. 남다른 매력 삼성 SM5" "이 시대의 인텔리전트를 생각합니다. 기아 오피러스" "성공 그 다음은 남자의 매력 현대 베라크루스" "열정이 나를 만든다. 나는 체어맨이다 패션 온 더 무브 쌍용 뉴 체어맨"

이런 광고는 심지어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비싼 중대형차와 고급 외제차를 선호하는 풍토를 정착시켰다. 자동차는 더 이상 운송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과 능력의 결정체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광고가 사회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지 오래되었다.

기업은 타산적으로도 소비자들을 홀린다. 생산단계에서부터 세일 가격이 정가인데도 정가를 부풀려 바겐세일을 하고, 원 플러스 원 이벤트 행사를 떠들썩하게 한다. 소비자들은 패키지의 노예가 되어있으면서도 스스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자신이 대견할 뿐이다.

기업은 다지인을 살짝 바꾸거나 기능을 추가한 신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대면서 제품의 수명을 한정하거나 특정 제품을 생산한 이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고장난 제품의 부품 생산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막다른 길' 전략도 불사한다.

가전제품이나 컴퓨터, 스마트폰, 심지어는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소비자들이 그런 제품을 대할 때 일정한 수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식은 일반화 된지 오래다. 기업은 그 바탕 위에서 국부적인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제품의 수명보다 앞당겨 그 가치를 구매하도록 부추긴다.

집값 대출금과 이자, 임대료, 카드빚, 각종 할부, 보험료, 공과금 등 가계의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도 모를 지경인데 그런 위험을 느끼지 않는 우리들이다. 빚 갚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파산절차를 밟으면서도 아무런 위기의식도 없는 것이 우리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민들에게 더 많은 돈을 쓰게 해야 한다'는게 자본가들의 생각이다. 결국 우리는 이 사회를 지탱하는 희생양으로서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실로 새로움을 앞세운 '계획적 진부화' 속에 살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에 매몰되어 멈춰있는 모든 것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빚 때문에 사회적 투명인간이나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 반 민주적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의 가장 큰 적폐인 것이다. 소비자의 의식 개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체제의 변혁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