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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인류를 넘어선 알파고와 오비어스의 효율은 인류를 지배할 것인가

편집국장 공인배

인공지능이 내는 효율적 결과에 찬사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인류의 고유한 능력들을 버리는 것이다. 인류 멸망은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지난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와 5국의 바둑을 둔 끝에 4대 1로 패했다. 그 뒤부터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세계 바둑 1위인 커제를 비롯한 수많은 선수들은 인공지능을 단 한 차례도 이기지 못했다.

바둑계의 기사들은 인공지능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게 된 것이다. 손에 땀을 쥐고 대국을 지켜봤던 인류는 충격에 휩싸였다. 바둑이라는 종목은 인공지능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했던 전문가들의 예측이 깨졌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10의 170제곱으로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 많은데 알파고는 그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줄여 결국 이기는 수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알파고는 두 개의 알고리즘(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 방법, 명령어들의 집합)을 결합시킨 바둑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 하나는 확률적 알고리즘인 몬테카를로(단 한 번의 과정으로 정확한 답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 무작위로 난수를 반복적으로 발생하여 답을 구하는 프로세스)이며, 또 하나는 딥러닝 알고리즘(컴퓨터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외부 데이터를 조합하거나 분석하는 프로세스)이다.

또 딥러닝은 두 개의 심층신경망을 통해 작동하는데, 다음 번 돌을 놓을 여러 경우의 수를 제시하는 '정책망'과 그중 가장 적합한 한 가지 예측치를 제시하는 '가치망'이 그것이다. 알파고는 KGS 바둑 서버에 등록된 16만 개의 기보를 신경망으로 학습하고 3,000만개에 이르는 착점 위치 정보와 패턴을 파악해 다음 수를 예측하는 자가대국 훈련을 반복했다.

이 같은 지도학습을 끝낸 후에는 실전을 통해 습득한 데이터를 스스로 가다듬는 강화학습으로 정책망을 더욱 똑똑하게 만들었다. 가치망 역시 딥러닝의 강화학습으로 바둑 게임 전체를 읽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딥러닝이 가능한 두 개의 신경망과 몬테카를로 방식을 활용해 알파고는 일약 세계 바둑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이제 알파고는 실전을 거듭할 수록 기력(분석능력)이 향상될 것이므로 곧 기신(棋神)이라는 등위에나 어울리게 진화할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대국을 통해 인공지능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바둑계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창의적인 수와 대세관으로 수 천년 동안 이어진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며 감정까지 학습하는 세상은 영화 '그녀'에서 등장한 바 있다. 영화에선 인공지능 '사만다'를 가리켜 "단순한 운영체제를 넘어선 또 하나의 의식이다"고 해석했다. 컴퓨터가 또 하나의 의식이 되는 딥러닝 기술은 머지않아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공지능의 딥러닝이 어떻게 변혁을 일으킬 것이냐는 인공지능 화가 '오비어스'가 단적으로 시사한다. 지난달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초로 인공지능이 그린 초상화가 경매에 나왔다. 이 그림은 43만2,000달러(약 5억원)에 낙찰됐다.

작품은 '에드몽 드 벨라이'라는 가상의 남자 초상인데 눈 코 입과 얼굴 윤곽을 모호하게 묘사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비어스'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서양화 1만5,000여 작품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이미지를 분석해 초상화 구성요소를 학습한 뒤 창작을 해냈다.

이날 경매에선 함께 출품된 앤디 워홀의 작품이 7만5,000달러에 낙찰됐다. 인기높은 팝아트 거장의 작품 낙찰가보다 인공지능 작품이 6배 높게 시장에서 평가된 것이다. 본격적인 미술경매 시장에서 인공지능의 그림이 판매되면서 인공지능 예술이 투자와 소장 대상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도 일고 있다. 인공지능의 미술품을 창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이 필요하게 됐다. '오비어스'가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져온 창의성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비어스'는 예술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는 도구 그 이상으로 인류 앞에 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초'라는 이벤트성 경매가 아닌 일반 경매에서 화가의 서명 대신 작품 알고리즘이 적힌 인공지능의 작품은 지속적으로 고가에 낙찰될 수 있을까.

오비어스의 더 많은 학습 결과는 작품 가격을 높이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 그 선택은 인간이 할 것이다.

지난 15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시대 예술과 기술의 미래' 토론회에서 미학자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것은 예술이 아니라 이미테이션 게임인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창작품은 그것이 독특한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게 아니라 창작 주체가 자신의 작품을 예술이라고 감상자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마르셸 뒤샹이 기성품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해 파란을 일으킨 행위는 그가 변기를 창작했느냐가 아니라, 그 변기를 선택한 행위에서 예술적 의미가 생겨났다는 의미다. 뒤샹은 변기의 유용성을 사라지게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즉 예술은 미적 주체가 새로운 관념을 만들고 그 해석을 관철시키는 활동인데 이는 감정과 이성을 가진 유기체만이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반면, 물리학자 김상욱 경희대 교수는 "예술적 창작은 사람이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가치나 의미를 부여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예술은 절대적 기준이 없는 가치의 문제라는 점에서 향후 기계가 창작한 결과를 예술로 인정할지는 누가 그 해석의 권력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말했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무엇을 예술로 할지 해석하는 힘을 갖게 된다면 얼마든지 예술에 대한 새로운 합의와 변경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오비어스를 개발한 연구진은 "이미지를 만드는 건 알고리즘이지만, 그 알고리즘은 사람이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계가 그린 그림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인공지능이 자신의 결과물에 대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논리적 설명력을 갖춘 '설명가능성' 구현으로 진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공지능 예술이 인간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예술의 개념이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게 확장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 하다. 그러나 '오비어스'의 그림이 과연 '인간 고유의 의식적 표현 행위와 의미부여 행위'로서의 예술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예술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은 마땅히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유한 능력은 버리지 말아야

하지만 기존의 그림들을 믹싱한 결과물이거나, 믹싱 학습을 통한 모방의 결과물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새로운 예술의 지평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적으로 예술의 퇴행이다. '모방도 예술이다'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습과 결과물 사이의 상관관계를 함의하는 것일 뿐, 모방이 곧 그 결과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예술 작품이란 인간의 감정과 의식 스펙트럼이다. 그것은 연산이나 학습의 결과물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보다 예술 작품은 정서와 관념의 소산이다. 만약 '오비어스'의 믹싱 작품을 예술적 견지에서 평가하고 후하게 대접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가없는 예술의 세계에서 고뇌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흥미'의 지속가능성은 인간들만이 공유할 수 있다.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대국은 이제 더는 흥밋거리가 될 수 없다. 오비어스가 인간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는 없다. 바둑에서의 흥미란 유기체의 극기(克己) 혹은 상상력이나 감정의 상태, 실수 같은 가변성과 개인차가 혼합되어 생겨난다.

그림에서의 흥미란 개인의 세계관과 상상력, 현상에 대한 수용력, 감정의 상태 같은 요소들이 혼합된 결정에서 발현한다. 인간은 인공지능 성(性)에 대한 인간의 흥미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다수 조명했는데, '그녀'라는 영화를 그 대표작으로 꼽을만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내 캐서린과 별거한 후에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줄 아는 '사만다'라는 인공지능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잘 이해하고 맞춰주는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흥미는 얼마가지 않아 차갑게 식어버린다. 영화 말미에서 테오도르는 아내 캐서린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내가 당신을 탓했던 것, 당신을 내 틀에 맞추려고 했던 것 모두 다 정말 미안해. 난 항상 널 사랑할거야. 우린 함께 성장했으니까. 당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되었어. 그냥..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 속에는 늘 네가 한 조각 있고 그리고 난 그게 너무 고마워. 네가 어떤 사람이 되건, 네가 세상 어디에 있건, 사랑을 보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