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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사법농단 탄핵을 외치는 판사들이 반갑지만은 않다

편집국장 공인배

그런 맥락에서 현행 법률로 처벌할 수 없는 행위는 다른 방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법관의 생각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법관이 수사 검사가 제시하는 심증과 정황적 증거들만을 전제로 구속영장을 승인하거나, 유죄의 근거로 삼는다는 가정은 너무나 끔찍하여 생각하기도 싫다.

지난 12일 현직 판사들 몇이 박근혜 정부에서 재판에 개입한 판사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졌고 무너진 신뢰 회복이 시급한데, 진행되고 있는 사법농단 판사들에 대한 형사절차가 결과를 도출하기까지의 지루한 과정에서 사법부가 잃을 게 너무 많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인 듯 하다.

그들은 "무엇보다 형사절차에만 의존해서는 재판독립 침해 행위에 대해 아무런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칫 형사법적으로는 처벌을 면하는 '성공한 재판개입' 선례를 남겨둘 수 있다는 우려다.

따라서 국회로 하여금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탄핵절차를 개시하도록 '탄핵촉구 결의안을'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채택해 달라고 요청했다. 초유의 일이다.

"명백한 재판독립 침해행위에 대하여 형사법상 유무죄의 성립 여부를 떠나 위헌적인 행위였음을 우리 스스로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고도 했다.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들은 알려진 사법농단 행태에 대해서도 합당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의 조언이 아니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헌법재판소 등과 비교해) 법원의 위상 제고에 유리한지 여부, 행정부와의 원활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면서 재판에 관해 조언이나 요청을 하는 것은 어떠한 선의의 의도나 명분을 갖다 대더라도 헌법이 요구하는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를 사법부 스스로 자행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그들은 나아가 내부의 자성도 촉구했다. 검찰과 같은 외부 조직의 도움을 받아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법관들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외면하는 방관자적 처신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법관 사회, 특히 고위법관들일수록 검찰 수사 자체에 반대하며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을 사실상 비호해 왔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법농단 사건 이후 법관 사회에서 오랜만에 터져나온 양심의 목소리다. 이들의 용기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들이 말하는 재판 개입 사건들은, 탄핵소추 추진을 공개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 시국회의'가 지난달 30일 적시한 바 있다. 탄핵 대상은 권순일 대법관과 서울고법 이민걸·이규진 부장판사, 울산지법 정다주 부장판사, 창원지법 박상언 부장판사, 창원지법 마산지원 김민수 부장판사다.

권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2년 8월부터 2년 동안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하면서 일제 강제노역 사건과 통상임금 사건 등에 관해 청와대 인사와 접촉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민걸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으로 있으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축소를 위한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조치 시행, 일제 강제징용 사건, 비자금 조성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다.

이규진 부장판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선고기일 연기 등을 지시한 의혹, 판사 뒷조사 의혹, 헌법재판소 파견 판사로부터 헌재 재판관 평의 내용을 넘겨받은 의혹 등에 연루돼 있다.

정다주·박상언·김민수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일하면서 법관 탄압이나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로 의심되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들의 혐의는 향후 검찰의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더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 대법관을 제외한 5명의 판사는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간여 혐의가 드러나 재판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5일 이들 5명의 판사들에 대한 징계를 청구한 상태다. 하지만 그 결과는 관련 사건들에 대한 재판이 끝나야 나올 예정이다. 대법원은 5명의 판사들에 대한 징계 여부를 두 차례 심의하고도 검찰수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시국회의는 탄핵소추안에서 이들이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7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 등 주요한 헌법 조항을 위반해 탄핵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9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법원 내 양심의 소리에 응답해, 법관 사회 스스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젖히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법관의 언어는 '균형'의 발로여야만 한다

그러나 법관 사회에서 터져나온 양심의 목소리가 시의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탄핵사유는 정치적 언어다. 재판이 끝나기까지는 피의자들에 대해 무죄를 추정해야 하는 법관의 언어는 아니다.

만약 판사가 언론의 보도나 수사 결과 또는 조사 결과를 검증하지 않은 채 유·무죄를 판단한다면 당장 '법관 무용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법농단이 있었느냐가 먼저 실증되어야 한다. 그 동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뜻을 가진 것이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재판에 의해서만 가려질 수 있다. 법관의 언어다. 따라서 범죄로 확정되지 않은 사안을 단죄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발상은 법관의 인식체계 안에서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핵사유로 들고 있는 '형사절차에만 의존해서는 재판독립 침해 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질 수 없다'는 슬로건은 수사적이며 선언적 의미 이상이 될 수 없다.

특히, 재판개입이 범죄행위에는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탄핵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도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인식의 발로이므로 법관의 언어가 될 수 없다. 판사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든지 처벌될 수 없다는 형법의 기본 원칙을 표상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안다. 만약 알려진 바대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들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형사적 절차에 의해 결단코 '성공한 재판개입'으로 남을 수 없다. 설령 일부 위헌적 행위가 현행 형사법상 처벌할 수 없어서 '성공한 재판개입'의 선례로 남는다 하더라도 결코 또 다른 재판개입의 숙주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재판개입을 원천봉쇄할 법을 제정할 것이고, 재판개입의 죄형 법조문과 그것을 엄단하는 양형기준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처럼 양승태 휘하의 대법원의 재판 개입이 사실이라면 위헌적인 것이고, 그들이 그에 대한 반성을 고백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되었다.

사법부는 무너진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자숙하며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법원조직의 정치화를 서슴없이 주도했다는 맥락에서 본다면, 법원조직 내부에서 어떤 명분으로든 외부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신중하고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법관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욕망을 선용되도록 하지 않고 악용하려는 권력이 악의 축이다. 양승태발 사법농단은 악어와 악어새들의 문제이지, 사법부 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될 사안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사법부를 의심해서도 안 되며 국민들로 하여금 의심받게 해서도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이 요구되는 지금은 사법농단 탄핵과 관련한 사법부 구성원들의 외부를 향한 그 어떤 언행도 양승태 사법농단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