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부는 이제라도 속도조절을 통해 국공립유치원 40% 달성으로 과연 아동교육의 공공성이 완성되는 것인지, 그것은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것이 국민에게 끼칠 막대한 피해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이 폭로한 사립유치원 비리 백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국가가 아이들 밥 먹이라고 준 돈으로 명품 가방을 사고, 노래방이나 숙박업소를 가고, 성인용품까지 샀다니 학부모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졌다.

정부가 전격적으로 반응하고 나섰다. 내년까지 우선 국공립유치원 1,000개 학급을 증설한다고 밝혔다. 현재 10%대인 국공립유치원 취원율을 4년 이내에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유아 교육을 공교육 영역으로 보고 국가가 이를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사립유치원에서 다양하고 심각한 비리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국공립유치원을 대폭 확대해 사립유치원을 도태시키겠다는 정책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는 듯이 이토록 신속하게 대안을 마련하고 추진한 전례가 또 있었을까.

유아교육을 공교육 영역에 편제하는 것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일까. 이 정부가 국가 조직을 관리하면서 특정 조직의 비리가 일상화됐다고 하여 그 특정 조직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애버린 전례가 있었던가. 들어본 적이 없다.

사립교육기관은 정부 조직에 대비할 때 하위에 있다는 것일까. 그러므로 그 존폐를 함부로 결정해도 된다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삶을 영위할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정부는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만연해 있으니 그들의 터전을 잠식해 마땅하다는 듯한 태도다.

게다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사립유치원들에게까지 연대책임을 묻고 있다.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한다. 초법적·위헌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이러한 '전횡'이 사립유치원들의 국가보조금법 위반을 구실 삼았다 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사립유치원에 대한 회계부정 의혹이 있으면 감사(監査)하고, 처벌하고, 해당 유치원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고, 실명을 공개해 학부모들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이런 현실적인 방안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인가.

더구나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감사 근거를 사립학교법으로 삼는 것은 그 자체로 위법하다는 담론이 있고 적실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왔던 마당이다. 정부가 필요에 의해 사립유치원에 특정 보조금을 지원해놓고, 설립부터 운영까지 정부가 전폭 지원하는 상위 사립중고교 학교법인의 재무 회계규칙으로 사립유치원을 감사해서 범법자를 양산한 것이다.

'국공립유치원 확대가 사립유치원 병폐를 차단하고, 교육의 질을 신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는 관념이 국가 부담을 늘려서 사교육 의존율을 대폭 낮추는 지표라면 이 또한 살펴보아야 할 바다. 우선, 유치원이 취학을 위해 수학능력을 기르는 교육기관으로 전형화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성인가를 보아야 한다.

'교육의 질 신장'이라는 목표 앞에서 먼저 숨이 막힌다. 아동들의 사회를 화약연기 자욱한 틀 안에 상정한 경쟁주의의 용어인 탓이다. 이 정부는 과도한 경쟁 구조를 완화하는 교육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했으나 그 추진 결과는 용두사미가 됐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나 '논술 폐지' 등 대입 절차 간소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는데도, 공론의 장에서 각 이해주체간 충돌이 거듭되며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시비율 축소'에 조차 별반 기여하지 못한 채 어정쩡 폐장(閉場)하고 말았다.

이 정부는 '적폐 청산'의 기치를 내세운 촛불 혁명의 산물이다. 우리 사회에서 과당 경쟁보다 더한 적폐가 어디 있는가. 기회의 불균등을 낳는 교육적폐 청산만큼 시급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하지만 진전은 없고 파열음만 나는 교육개혁은 사실상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공연히 국민적 시선을 집중시키고 장기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의 책임을 정부가 떠안고 결국 '무능 정부'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한 결정이라고밖에 달리 생각하기 어려운 행태다. 어쨌든 경쟁의 폐해를 과거 어느 정부보다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는 이 정부가 오히려 그 적폐 청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집권 여당 국회의원에 의해 조장된 분노 여론을 타고 국공립유치원 확대로 오히려 아동들을 경쟁 대열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서 여론의 뒤에 숨는 것은 포퓰리즘이다. 이보다 더한 무신념(無信念)은 없거니와, 그 두 행태가 국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기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한 정치의 적폐는 없다.

국공립유치원이 경쟁을 부추긴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이라고 논박할 수도 있겠다. 전인교육을 강조하는 커리큘럼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 수 십 년 동안 전인교육을 강조해 온 우리의 교육 전반의 현장이 그러한 주장의 허구성을 방증한다.

이 정부의 어젠다 중 하나인 '공교육 정상화' 조차 경쟁능력 강화를 추구하는 것이지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바가 아니지 않은가. 대부분의 학부모들 역시 경쟁에 필요한 교육을 바라고 국공립유치원을 자녀의 취학 전 교육기관으로 선택하는 것이지, 전인교육을 바라고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동기의 교육은 특수성을 요한다. 아동들이 획일적이며 폐쇄적인 환경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립유치원은 전인교육기관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 더 다양성을 살피며 조금은 더 개방적인 환경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사립유치원의 존립이유이며 국공립유치원과의 차별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밀감'이냐 '경쟁'이냐의 선택은 학부모들의 몫이다. 정부가 시장의 수요를 대거 잠식해 학부모들의 선택을 제한하고 결국에는 아동들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표방한 4년 내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달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국공립유치원 시설비용이야 지방재정교부금에 담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부는 4년 뒤부터 매년 560억원(교사 초봉 180만원*최소 필요 교사 2,600명)을 상회하는 인건비를 어떻게 확보할지 아무런 대책이 없다.

정부의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은 또 사립유치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워킹맘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공산이 높다. 교사들이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국공립유치원은 종일반을 운영할 수 없고, 사립유치원은 최소 1주일에서 최대 2주일을 방학기간으로 운영하는 반면 국공립유치원은 한 달을 방학기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사립유치원은 2월 중순에 졸업을 하는 반면 국공립유치원은 1월 중순에 졸업하며, 국공립유치원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차량을 운영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 전환은 특히, 사립유치원 관련 민간영역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됐다.

표퓰리즘이 언제부터

진보의 얼굴이 되었나

사립유치원들의 폐원은 국공립유치원의 시장 잠식이라는 물리적인 요인 말고도, 별안간 도둑으로 몰려 학부모들 앞에 서기 어렵게 된 원장·교사들의 출구가 됐다. 그들과 버스기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쌀이나 부식 등을 사립유치원에 공급하는 연관 업체들도 타격을 입게 됐다.

국공립유치원 확대라는 표피적인 극약처방은 학부모들의 요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 채 아동교육 대란을 불러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가 미디어의 힘을 빌려 '사립유치원은 불법 교육기관'이라는 낙인을 찍고, 장차 사라져야 할 교육기관이라는 인식을 표방한 이상 사립유치원들의 폐원은 잇따를 것인데 국공립유치원이 그 간극을 메워 나가거나 대안이 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 모든 문제는 정책방향의 즉흥성에 있다. 경남 창원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투신해 숨진 것은 그 단적인 부작용이다.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에 드는 비용이 6조3,000억가량 되는데, 이 비용이면 완전 무상교육이 가능하다는 학계의 보고도 있다. 근원적인 해법은 외면하고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판에 사립유치원의 불가피한 상황을 이용하는 꼼수라는 인상이 짙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용진 의원의 의도는 정상적이지가 않다. 사립유치원은 개인 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운영자는 그 회사 통장을 통해 모든 비용을 지출하는 구조다. 정부 지원금을 적정하게 사용했느냐를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 공기업의 재무회계를 관리하는 기준을 적용해 정부지원금이 적정하게 사용됐더라도 그 통장에서 명품 가방을 사고, 노래방이나 숙박업소를 가고, 성인용품을 사면 불법이 됐다.

박용진은 그러한 감사결과를 폭로해 사설유치원을 범죄 집단으로 매도하고, 정부의 부실정책 추진에 조력했다. 향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가늠이나 했었을까. 정부는 이제라도 속도조절을 통해 국공립유치원 40% 달성으로 과연 아동교육의 공공성이 완성되는 것인지, 그것은 실현 가능한 것인지, 그것이 국민에게 끼칠 막대한 피해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공공성을 완성하기 위한 근원적인 해법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 부문에서 이미 경험했다시피, 교육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어렵다.

교육 문제는 상수(常數)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변수들을 검증하고 취사한 끝에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만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백 년을 내다보는 안목과 그 지표를 마련하는데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