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치적인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복잡하며, 노력에 비해 별 소득이 없는 일이면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는 정치인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지역사람들은 터전의 재원이 부족할 때, 또는 아무리 노력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 때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또한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역사람들은 정치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지역 소속 정치인들의 무능력과 무관심이 문제를 키워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지역사람들은 역동성을 잃게 된다.

이 같은 정치적 기대감은 비단 먹고 사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공동체가 인재(人災)에 의한 환경 재난에 폭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방하는 일이야 자치단체의 소관이지만, 관리부실로 누적되었던 문제가 일단 터지고 나면, 피해를 당했거나 피해에 노출된 지역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당장 책임주체로서 자기 과실에 짓눌린 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는 행정기관을 상면하면서 길을 잃고 만다.

익산시의 경우 폐기물 재활용업체인 A사의 매립장에 비소(맹독성 1급 발암물질)가 함유된 폐기물이 3만9천톤 가량 매립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2016년 6월 24일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의 수사결과 발표에 따른 것이다. 15톤 덤프트럭으로 2천6백대 가량이 되는 발암물질은 5년 동안이나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 환경청이 관리하는 '올바로시스템'을 무사 통과해 익산시계를 넘어 A사 매립장에 무단 반입되었다.

관리감독 책임을 맡고 있는 익산시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업체들의 이 같은 불법행위가 횡행할 수 있도록 부실한 거름망('올바로시스템')으로 길을 열어 준 주체는 환경부다. 중앙 행정기관의 과실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산지관리법상 산지복구 허가권자로서 현장을 상시 관리·감독해야 할 직무를 유기해 왔던 익산시의 입장에서는 환경부에 전적인 사후처리를 관철시킬 수도 없다. 익산시는 상황 발생직후 '원천적인 책임은 환경부에 있다'고 책임론에 불을 지피며 사후처리 책임도 환경부가 져야 한다는 뜻을 대내외적으로 강력히 천명했으나, 양 기관은 서로 책임 공방을 벌이다가 5개월을 허송했다.

발암물질이 지하수로 스며들고 하천을 오염시키는 비상한 상황이 전국적인 이슈가 되고, 국정감사장에서도 오염된 석산복구지의 조속한 정화가 촉구되자 환경부와 익산시가 내놓은 것이란, 고작 발암물질 배출업체와 매립업체에 석산복구 이행을 명령(2016년 12월 1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그로부터 9개월 뒤인 이행기간(2017년 8월 말)을 배째라식으로 넘겼고, 환경부와 익산시는 하릴없이 이행계약서 제출 기한을 2018년 8월 말까지 1년 더 연장해줬다. 그러나 업체들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고, 기한은 또다시 2018년 9월 21일까지 한 달 가까이 연장됐지만 10월 5일 현재까지 업체들의 태도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중앙환경사범수사단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이래 2년 3개월 동안 익산시민들 혹은 미래의 익산시민들은 소리 없는 독극물의 잠식에 속수무책 폭로되었던 것이다. 환경부와 익산시가 가해자들의 부작위에 질질 끌려가는 것은 복구 '이행명령'이 처음부터 해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매립된 발암물질을 퍼내어 지정폐기물로 처리해야 하는데, A사업장에 매립된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1천억원대를 상회한다. 가해업체들이 이런 천문학적이 돈을 쌓아두었을 리 만무한 것이다. 복구를 강제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니 오염된 익산의 폐석산을 정화할 유일한 방법은 '행정대집행'이다. 원천적인 책임주체이자 이 나라 산하 환경을 총괄 관리하는 환경부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 재정이 열악한 익산시와는 달리 환경부는 환경사고 발생지역에 대한 대응 예산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즉각적으로 행정대집행을 단행해야 한다.

배출업체와 매립업체에 대한 구상권 행사는 그 다음 문제다. 생명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먼저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본령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과실을 안고 있을 경우 국가가 져야 할 책임 범위가 제도적으로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행정대집행은 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비용분담 책임이 모호한 것이다. 환경부와 익산시가 이행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이행명령' 카드로 차일피일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어물쩍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틈인 것이다. 국민들의 생명은 누란지위(累卵之危)의 형국인데 무책임으로 허송하는 시간들은 그 위에 알이 되어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화급을 다투는 문제인데도 지역 정치가 손을 놓고 있다. 해당지역구의 조배숙 의원은 전라북도 정당이라 할 만한 민주평화당의 직전 당대표이면서도 A사업장에 대한 행정대집행과 관련해 일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집권여당의 직전 사무총장이자 민주당의 중진인 이춘석 의원은 지역구의 일이 아니기 때문인지 역시 강 건너 불구경이다. 낭산면에 있는 A사는 갑지역과 연접해 있다. 지하수 오염 피해가 을지역에만 국한된다는 생각이라면 큰 오산이다. 초등학생도 안다. 또한 A사에서 범람한 침출수가 유입되는 하천은 갑지역 북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래서 환경오염 문제는 지역을 구분하여 정치적 영역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환경부가 지역에 책임을 국한하거나 전가해서도 안 되는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예외적으로 암 환자가 다발(전국 평균 40배)하고 있는 장점마을 주변 역학조사에 나선 환경부의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장점마을 문제의 해법은 원인을 밝히는데 있다. 주민들은 인근에서 가동됐던 특정 비료공장을 오염원으로 의심한다. 익산시가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2017년 11월 15일)에 따르면 비료공장의 재료들과 원심력 집진시설 분진에서 인체 발암물질이 확인됐고, 지하수와 저수지 주변 저수지 물에서 인체 발암성 가능물질인 나프탈렌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특히, 유기질비료 공장 내외에서 채취한 공장관련 모든 시료에서 PAHs(방향족화합물로 대개 독성을 지닌 물질과 발암물질로 이루어짐)가 검출됐으며, 2017년 7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이 분석한 결과에서 공장의 폐수가 흘러드는 인근 저수지의 저질 및 수질에서도 PAHs가 검출된 바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환경부가 합당한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지난해 2월 장점마을의 짐단 암발병 공포가 공론화 되었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전북도가 환경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했으나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익산시장의 대정부 압박과 주민들의 국민청원, 시민단체의 촉구가 잇따르자 3개월이 지난 같은해 7월에서야 정밀역학조사를 결정했다.

또한 그로부터 다시 5개월이 지난 2018년 1월 조사를 시작해 지난 7월 18일 '장점마을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조사 실태조사'를 중간보고 했는데, 용역수행 기관인 민간 환경안전 건강연구소의 전문성이 논란이 되었다. 또 시료채취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비롯해 목적에 맞지 않는 시료채취, 부적절한 분석 대조, 일부 항목 목적 부재 등 수많은 문제로 주민들의 불신을 샀다.

환경부는 뒤늦게 주민들이 원하는 지점의 시료를 채취하는 등 격앙된 주민들을 달랬지만, 이번 실태조사는 주민들도 전문가들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내놓을 공산이 높다. 장점마을 파동은 자연발생적인 것인지, 인재(人災)인지 지금으로선 전혀 알 수 없다.

실리 적고 복잡한 일은 외면

그래서 당장 필요한 것은 공공성을 담보한 기관의 합당한 조사에 따른 지표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까지 공전되고 불신과 반목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지역구 의원인 이춘석 의원이 현장을 살피지 않고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익산시민들은 서 있다.

집권여당 소속이며 시민들이 만들어 준 3선 중진의원의 힘은 정작 필요한 곳에 전혀 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익산의 인구는 구멍난 자루의 보리알처럼 걷잡을 수 없게 빠져나가고 있다. 올 연초부터 9월 말 현재까지만 무려 4,984명이 감소했다.

살기 팍팍해서가 그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설령 정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생활고에 부대끼다 살 길을 찾아 타지로 이주를 결행하더라도 정치인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물며 환경적으로도 살만한 곳이 못 되는데다 구제불능의 도시라는 인식이 확산하도록 방치한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이춘석 의원이 지역에 기여한 바가 적다는 것은 아니다. 특교세 확보로 여러 지역 숙원사업을 해소하고, 획기적인 구도심 복원의 길을 연 점은 충분히 따뜻한 시선을 끌 만하다. 하지만 표가 나는 그런 실적들엔 매달리면서, 지역의 미래가 달렸더라도 표가 나지 않는 문제엔 무관심하다는 지역민들의 냉소도 만만치 않다.

지역의 정체성에 관한 사안이자 지역의 백년대계에 관련된 일이며 나아가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정치적인 시간이 많이 소모되고, 복잡하며, 노력에 비해 별 소득이 없는 일이면 그것을 쳐다보지도 않는 정치인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익산지역에는 이 밖에도 정치가 아니면 풀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것이 정치적 실리에만 밝은 약빠른 정치인들 탓이라고 규정해도 반박할 길이 없는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