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나아가서는 진흙탕 싸움에 휘말려 정치적으로 실익도 없이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지 않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KTX익산역이 동네 북이 되었다. 하지만 전주 쪽에서는 틈만 나면 두들기려 하고, 익산 쪽에서는 조심하며 아끼는 북이다. 정치권의 태도 차이다. 전주권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은 북소리가 널리 울려 퍼져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를 바라고, 익산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은 그것을 돕게되지 않을까 조바심치며 애써 북에서 멀리 떨어지려 한다.

힘의 논리에서 비롯한 기현상이다. 우선 호남선로를 경계로 동부(전주권)의 인구수와 서부(익산권)의 인구수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더구나 동부에 있는 혁신도시는 인구밀도가 높은데다, 혁신도시의 주요 구성인자인 공공기관 직원들 상당수가 기러기 노릇을 선택하고 있다. 가족의 생활거점을 이전하지 않고 수도권과 혁신도시를 오가고 있는 것이다.

KTX혁신도시역 신설을 주장하는 동부의 특정 정치인도 이른바 '쪽수'에 기대고 있으리라. 가당치도 않는 주장이라는 걸 모를 턱이 없다. KTX는 속도가 존재 이유이고, 호남선의 역들은 KTX가 최고속도에 도달해서 같은 속도로 운전을 하다가 효율적으로 감속하기 위한 최소거리에 설치되었다.

이 역간 거리 46km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여객·화물 유치에 유리한 짧은 역간거리를 포기하고 선택한 합리적 적정거리('운영효율' '시간절감' '적정한 역사신설 비용' 고려)다. 그런데 익산역과 정읍역 사이에 혁신도시역을 신설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무려 15km 안팎을 본선에서 이탈해 정차했다가 다시 30여km를 달려 본선으로 복귀하도록 하자는 비효율적인 주장을 국토부나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거들떠볼리 없다.

우선 익산역에서 혁시도시까지는 거리가 짧아 KTX 메커니즘(가속-최고속도-표정속도 유지-효율적인 감속)이 작동할 수 없다. 15km 안팎에 적용될 가속과 정속 운행 후 감속은 보통열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혁신도시에서 정읍역까지는 정상운행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효율이 반감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호남선에 KTX 역이 두개가 더 설치되는 것과 대동소이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이다. 속도를 얻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였으며 고비용으로 운영되는 KTX를, 저속철로 전락시켜 결국은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역사신축과 노선신설에 드는 비용은 총 1조6000억원 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산출 된다.

관련 법은 역을 신설하거나 증축 또는 개축하는 경우 그 비용의 전액을 원인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혁신도시는 전주시 덕진구와 완주군 이서면이 연접해 이루어진 곳인데, 그 비용을 분담하는 논의 자체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두 자치단체의 재정 형편상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주권에서조차 말하기를 꺼리는 안(案)이다.

또, 북을 두들기는 천둥벌거숭이 정치인의 요구가 타당성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용역을 국토교통부가 발주했는데, 김제에 KTX 역을 신설하는 안(案)이다. 그렇다면 한 해 총 예산 규모가 6,249억원인 김제시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까. 누가 보아도 불가능하다.

또한 이는 익산역과 정읍역 사이에 역을 하나 더 신설하는 것으로, 시간이나 비용의 규모가 약간 다를 뿐 혁신도시역이 KTX 호남선을 무용화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경우다. 이와 같이 전주권 정치인이 두들기는 북소리는 아무런 맥락도 가락도 없다.

혁신도시의 교통여건은 어떤가. 익산역과 김제역에 대한 접근성이 시간적(거리)인 면에서나 편의적(교통소통)인 면에서 별 다름이 없다. 익산역과 혁신도시를 오가는 시외버스는 하루에 11편이나 운행되고 있다.

익산역과 혁신도시간 접근성을 높이는 데는 익산시가 국비 경쟁에 뛰어든 '광역전철망 구축'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6년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수립했고, 선정된 대상 사업에 100% 국비를 지원하는데, 익산시의 구상안이 그 조건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익산시는 '익산시철도 인프라 구축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을 발주한 상태인데, 추후 이 구상안이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삽입되면 혁신도시 뿐만 아니라 전북권 전역의 교통편의가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구상안의 골자를 보면, 기존 전라선을 기반으로 중추도시생활권인 전주-익산-대야-군산-새만금을 연결하는 총 90km의 '동서축'과 호남선을 기반으로 논산-익산-김제-정읍을 연결하는 총 80.6km의 '남북축' 구축이 1단계 사업인데 여기에는 940억원 가량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단계는 전주역-전북대-도청-혁신도시-김제역(또는 익산역)을 연결하는 총 21.4km의 전주시내권에 신설노선을 구축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5,200억원 가량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같은 전북권 광역전철망 구축사업 구상안은 그 효용성과 구체성을 뚜렷하게 확보하고 있다. 삼척동자가 보아도 경쟁력이 높은 구상이다.

혁신도시를 비롯한 전주권의 KTX 익산역 이용객들에게 KTX 호남선의 효율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KTX 혁신도시역이나 김제역을 신설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교통편익(시간·비용·편의)을 제공한다는 방향성인 것이다.

전라북도 정치권이 대동단결해 반드시 실현시켜야 할 당위다. 같은 맥락에서 KTX 혁신도시역이나 김제역 신설 주장은 우리가 맞이해야 할 더 나은 변화(광역전철망)를 가로막는 행위다. 아니면 말고식 포퓰리즘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다수를 속이고 희생시키는 이기주의의 소산이다.

그러한 행위가 '안 되더라도 정치적인 득이 있을 뿐 손해는 없다'는 1차원적 계산에 비롯했다면 그것은 정치적 무책임의 전형이며 즉각 퇴출되어야 할 부덕이다. 철없는 북춤을 당장 멈춰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현상을 전제하는 관점에서 '헛소리에는 무대응이 상책이다'며 침묵 전술을 견지하는 이춘석 의원의 태도엔 일리가 있다.

대응하여 같이 북을 치면 소리를 더욱 커지게 하는 꼴이어서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쪽으로 일이 전개될 것이라는 이 의원의 우려는 익산시와 시민들에게도 나름 먹혀든 모양새다. 그의 말대로 내년 1월 KTX 김제역 신설 타당성 용역결과가 나오면 혁신역 문제는 완전이 마무리 될 것이라고 믿는 시민들도 많아졌다.

불성실과 비겁함의 소산일 뿐

그러나 이춘석 의원의 논리는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헛소리가 어떻게 실효성(實效性)을 확보하며, 일을 실행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헛소리를 논박하지 않고 내버려 두니 자꾸만 헛소리를 확산시켜서 지역사회를 힘의 논리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우리는 헛소리에 의해 지역사회가 일단 힘의 논리에 경도되면, 얼마나 많은 큰 갈등과 반목을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로인해 결국 우리가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일들이 발생한 사례가 우리 주변에 수두룩하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정말 혁신역 문제가 완전히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목적이 있고 핌피에 편승한 저들에게는 KTX역 신설 주장은 어떻게든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지난 달 13일 느닷없이 튀어나온 민주평화당 전북도당의 논평이 그러한 정치적 편승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논평은, 최근에 '혁신역 신설은 불가능하다'고 한 이춘석 의원의 발언은 '정치생명을 위한 지역이기주의적 편파적 사고'라고 비판했다. '혁신역 신설을 공론화하자'고 주장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익산지역 민주평화당 당대표와 당원들이 KTX혁시도시역 신설을 결사 반대했던 태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정치의 어둠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주평화당은 10곳의 전라북도 지역구 중 5곳을 차지한, 전북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다. 정동영 당 대표를 비롯한 김광수, 김종회, 유성엽 등이 전주권(혁신도시)에 쏠려있다.

도민들이 전북도당의 논평은 곧 당론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7개의 지역구 의원들이 혁신도시역 신설 찬성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KTX 혁신도시역을 결사 반대하는 익산시장이 민주평화당 소속인데도 일어난 일이다. 당론 분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힘의 논리에 기반한 망동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헛소리 하는 정치인들이 한 둘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걸 예고하는 극명한 표징이다. 헛소리를 근절하기 위해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있는 이춘석 의원의 태도가 불성실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진흙탕 싸움에 휘말려 정치적으로 실익도 없이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지 않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도덕하거니와 '비겁함'의 소산이다. 정치란 문제에 직면해 무서워서 피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더럽다고 피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토론을 기피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상대방이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면 공론화를 피할 이유가 무엇인가. 잡초는 싹일 때 뽑아야 뿌리 째 뽑을 수 있다.

3선 국회의원의 관록과 집권여당 사무총장의 힘으로 당장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한다면, 쾌도난마의 논리로 헛소리를 평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성실한 직무 수행을 선서한 국회의원으로서 주저할 바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