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당장의 자기 억압과 희생이 장래의 성공을 담보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경쟁은 종교와도 같다. 그렇게 정부와 국민 일반이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데, 소통하는 방법부터 마련하지 않고 성과부터 내려고 한 바탕에는 여전히 '조급증'이 있다.

꾸준히 하락하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지난 주 53.7%에서 멈췄다. 한때 82%대를 기록했던 지지율을 감안하면 사회 전체의 불안기류를 반영하는 지지율 추이다. 이 불안 구간의 문재인 정책추진이 안고 있는 문제는 '조급증'에 있었다.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려는 성급한 행보 아래에는 수많은 지뢰들이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퇴적에 관여한 모든 주체들의 병렬적 협력이 필요하다. 적폐란 적폐세력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렇다. 적폐세력을 양산해 온 적폐 동조 의식에 맞서지 않고는 적폐를 청산할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마련한 해법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각 정책 관련 주체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합의가 필요한데 오히려 적대시한 경향성이 짙은데다, 국민들을 협의의 주체로 삼지도 않고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국민들은 적폐에 대한 고의적이거나 미필적인 적폐 동조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는 탓이다.

정권에 대한 지지가 정책에 대한 지지에까지 이어진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정권의 간판이라 할 만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시대적 소명에 기반한다. 노동력 착취를 동력으로 삼았던 산업화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신자유주의 시장 정책이 한계에 봉착하자 그 출구로 제시되었던 유일한 대안이다.

그렇다면 물질 만능주의는 비단 기업들의 문제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 두루 아는 사실이다. 이 나라 국민들은 건국 이래 경쟁 일변도의 격랑을 헤쳐왔다. 갑과 을의 관계에 익숙해져 있었고, 저마다 일확천금을 꿈꾸면서도 불로소득에 비판적인 성향을 갖게 된 것은 그로 인한 현상이다.

그런 까닭에 국민 대다수는 '분배의 정의'를 낯설어 한다. 생산·공급 ·소비 시장 전반에 공정한 룰이 적용되기를 희망한다. 당장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처럼 보이는 룰은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으며 결국 지표를 잃게 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단초인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과 중소상공인들의 반발, 최저임금 문제를 다시 만지작 거리며 갈팡질팡하는 정부는 그 단적인 예다.

청년일자리 만들기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오히려 고용률은 감소하고, 숙박음식점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만개 가까이 줄었으며, 도소매업 취업자는 12만3천명이나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상인들이 감당하기 힘겨운 비용 압력이 되었고, 이는 또 물가인상으로 이어져 소비 위축을 불렀기 때문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 부른 참사다. 점진적인 정착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었다. 누가 보아도 공평한 정책 룰 혹은 새로운 룰은 국민들의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실효성을 확보한다. 국민의 동의를 얻고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표를 잘게 쪼개야 한다.

당장 성과를 얻기 보다는 새로운 물길을 만드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 이 정부가 야심차게 덤볐다가 들끓는 찬반 양론에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슬그머니 물러서 버린 대학 입시 관련 교육개혁 실패도 그와 궤를 같이 한다.

경쟁사회에 찌든 사람들에게 경쟁을 줄여 학업 피로도를 낮추는 길로 인도하는 것을 너무 쉽게 여긴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서 얻는 행복도 있지만, 당장 경쟁을 줄여서 얻는 행복도 있으니 학교내 경쟁구조를 뜯어고치자는 생각이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신념에 매달려 온 사람들에게 그리 간단하게 먹히리라고 판단한 배경은 도대체 무엇일까.

당장의 자기 억압과 희생이 장래의 성공을 담보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경쟁은 종교와도 같다. 그렇게 정부와 국민 일반이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데, 소통하는 방법부터 마련하지 않고 성과부터 내려고 한 바탕에는 여전히 '조급증'이 있다.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부동산 대책도 마찬가지다. 자본이 돈을 버는 세상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온 국민들이다. 인식 전환을 선결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역시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되 결국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는 문제다.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장에 성과를 내겠다고 서두르는 것은 자본주의를 역행하는 것이다.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위와 같은 문제들로 걷잡을 수 없게 하강 곡선을 긋던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소폭 반등하면서 다시 상승 곡선을 그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달아오르고 있다. 내치(內治)는 여러 분야에서 터덕거리고 있지만 외치(外治)는 지속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9·5 대북 특사단의 방북에 이은 3차 남북정상회담 소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정상회담 요청 소식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치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 정부의 결함이 남북 화해와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

판문전 선언 이후 김정은은 북한이 보유한 핵을 경제와 바꾸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대내외에 표방하고 있다. 이는 남북정상이 38선을 함께 넘나드는 것보다 주목받아야 할 사건이다.

여기에는 북한 사회가 폐쇄성을 탈피하고 개방사회로 나아간다는 지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의 변환은 체제의 변혁이 선행되거나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속도조절 실패가 화근

그런데 폐쇄를 버리고 개방을 선택해 단기간에 세계시장에서 우뚝 선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북한은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의 체제는 개방 전의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확연히 다른 일극중심이며, 그러한 체제 유지를 위해 이미 파탄상태인 국가주의적 생산양식을 버릴 생각이 없고, 자본주의로 이행이 유일한 선택지인 줄 알면서도 체제 변환은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기에 하는 우려다.

그러니 북한의 경제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든 통일이 될 경우 과연 정치적 사변을 겪지 않고 남북 경제가 융합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우리 내부에서 싹트는 것이다 .경제란 그 속성이 자유인데 '통제'를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삼아 온 북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의 선택은 인민들의 행복에 기반한 것이라기 보다는 체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 정권은 필요에 의한 최소한의 시장경제를 허용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촉진할 금융시장은 철저하게 제어하고 있거니와, 국영기업의 사유화 조짐이나 새로운 형태의 소유제 도입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이 같은 경제 체제의 이질성은 외국자본의 경제협력을 방해하고, 국가적 대립과 갈등만 야기 할 공산이 높다. 남북관계가 항구적 평화 또는 통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체제를 고수하는 한 경제적 화해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인 것이다.

이런 마당에 우리 정부가 남북 경제 개방 과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성과에 안달복달하며 속도조절에 미숙한 이 정부의 향후 행보를 걱정하는 것은 과연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