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그렇다. 비상계엄 시국의 참상은 믿을 수 없기에 그에 따른 두려움을 형용 할 수도 없다. 가용한 모든 군부대와 병기들이 도시를 장악하는 비상계엄 아래서 국민은 곧 폭도일 뿐이었다. 군인들은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비상한 권력이 되었다.
국민들은 그 아래 피곤죽이 되고, 영장 없이 체포·구금되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묵살되었다. 또한 국회는 무력화 되었고, 정부와 법원은 그 폭력집단이 폭주하도록 공간을 내주었다.
음지에 있어야 할 기무사가 갑자기 양지로 나왔다. 국군 내부를 감시하며 군림해 온 막강한 권력이 국민 앞에 체면치레도 할 겨를이 없어 보인다. 분주한 일상의 대로를 가로막거나 광장에서 정신줄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발가벗은 기무사란, 애써 지웠기에 낯설지만 여전히 기억 저 밑바닥에서 공포를 먹고사는 몽마(夢魔)다.
몽마는 어쩌다 경계를 넘어 백주 대낮에 이토록 생생하게 목도 되는 것인가. 발단은 촛불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의 출현이었다. 이 문건은 지난해 2월 18일부터 3월 4일까지 기무사령관의 지침을 받은 기무사에서 작성되었다. 기무사령관은 국방부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나라 제5공화국 이전 세대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시위대에 대한 비상계엄은 끔찍한 기억일 뿐이다. 1960년 4.19 혁명을 진압할 목적으로 계엄령이 선포 된 이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과정에서, 1964년 굴욕적인 한일회담과 군사독재 반대시위 진압 과정에서, 1972년 10월 유신 선포와 함께, 계엄령은 우리 뇌리의 같은 자리에 중첩적으로 각인 된 국가폭력이었다.
특히, 1980년 5월 17일 부산지역에서 제주도까지 확대되어 1981년 1월 24일 해제되기까지 무려 456일 동안 무고한 광주시민들은 군인들이 발포한 총탄 또는 총검, 개머리판, 곤봉 아래 학살됐고 산 사람들을 도시에 유폐됐다.
그렇다. 비상계엄 시국의 참상은 믿을 수 없기에 그에 따른 두려움을 형용 할 수도 없다. 가용한 모든 군부대와 병기들이 도시를 장악하는 비상계엄 아래서 국민은 곧 폭도일 뿐이었다. 군인들은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비상한 권력이 되었다.
국민들은 그 아래 피곤죽이 되고, 영장 없이 체포·구금되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묵살되었다. 또한 국회는 무력화 되었고, 정부와 법원은 그 폭력집단이 폭주하도록 공간을 내주었다.
그렇다. 지난해 연초에 작성된 계엄 시행 준비 문건은,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장관이 군인들을 또다시 대국민 폭력배들로 환치시키려는 획책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당시 촛불정국이 헌법을 수호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라를 위난 상태에 몰아넣었는가를, 헌법과 국민 위에 군림할 비정상의 국가권력이 필요할 정도로 나라의 형편이 위중했는가를, 그리하여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선 국민들이 폭도가 되어 정권을 연장하려는 국가권력의 재물이 되어야 마땅했는가를 평가해야 할 지점에 서있다.
계엄 시행 준비를 최초 지시한 주체를 밝히고 계엄령의 필요성을 공유한 자들을 가리기 위한 민·관 합동수사단의 진상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다.
그런데 문제의 중심에 있는 기무사 수뇌부는 참회는 커녕 몸에 밴 오만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난달 24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무사령관과 100기무대장이 국방부장관과 어긋나는 진술로 날선 공방을 벌인 것이다.
기무사령관은 지난달 16일 국방부장관에게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대해 위중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20분간 설명했다는 것이고, 국방장관은 5분에 불과했다고 맞섰다. 100기무대장은 지난달 9일 국방부장관이 주재한 국방부 실·국장 회의에서 장관이 해당 문건은 법률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고, 장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대응했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가리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두 기무사 요인들이 감행한 일련의 폭로보다 더 주목받는 대목은 오랜 세월의 군생활과 군인의 명예와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운운하며 진술의 신빙성을 강조하는 기무사 대령 등의 하극상이다.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 행위도 아니고, 상사의 비위사실에 대한 고발도 아니다. 그들의 눈과 이빨에서는 오로지 국방부장관을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의도만이 번뜩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하극상은, 군사력을 동원한 국헌문란·내란예비 음모 같은 국가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충절에서 비롯한 것일까. 지난 3월 국방부장관에게 계엄령 문건의 존재를 보고했으나, 장관이 3개월 넘게 깔고 앉아 뭉개다가 뒤늦게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실이 그들의 충심에 상처를 입힌 결과를 낳았기 때문일까.
그들은 전임자들이 저지른 일을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듯이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도 깜짝 놀랬다'는 표정으로 계통의 수장에게 보고했다. 그들이 조명받고자 하는 부분은 그들이 사전적 의미의 '순수한 군인'이라는 점인 듯 하다.
그들은 참여정부 시절, 기무사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통화내용까지 감청하고 민간인 수백만명을 사찰한 것을 알지 못하고, 그런 사실에 분노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현직 대통령의 자서전을 불온서적으로 분류하는 이념편향의 기무사와는 별개의 기무사 요원이었다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정보를 무기로 군내 위계를 무시하며 계급 위에 군림하던 그들의 습성이 그들의 절박성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 것일 터이다. 기무사령관이 전임자들이 작성한 문건을 공개하고, 100기무대장이 국방부장관이 주재한 군 내부의 주요간부 회의 내용을 까발린 것은, 전 육군대장 출신이자 국군의 수장인 장관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기무사 지위 재확인'에 다름 아니다.
그들의 목표가 다름아닌 '기무사 존치'에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하극상에선 ‘우리는 시대와 정세변화에 발맞 출 수 있는 진보성향의 안보관리자들이다’ 또는 '우리는 문제의 계엄령 문건에 개입한 수많은 군 관계자들의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는 시그널이 감지되는 것이다.
개혁위의 권고안은 현실과 크게 괴리
남북간 정전협정이 임박한 가운데, 할 일이 없어 엉뚱한 짓이나 벌이는 기무사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는 국론이 공고화 된 마당이었다. 또 계엄령 문건이 발견된 직후부터는 국방부 등 군 상층부에서 기무사 개혁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고조되는 가운데, 기무사개혁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는 중이었다.
기무사 수뇌부가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는 데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국방부장관이 늑장보고를 하고 후속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가 사안을 가볍게 본 것 때문인지,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무적 판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예비역 장성으로서 자신이 몸담았던 군 상층부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우려한 것인지는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
당면한 과제는 '계엄 시행 준비'의 주체인 기무사와 그 관련자들에 대한 단죄와 군의 권력 찬탈을 예방하는 조처들이다. 하지만 지난 2일 기무사개혁위가 권고한 기무사 조직 30% 이상 감축을 비롯한 60부대의 전면 폐지, 동향관찰 및 존안자료 폐지, 대통령 독대보고 제한 등을 담은 권고안은 사안의 심각성에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기무사는 과거 이전 정권에 의해 특정 부대를 폐지하고 통폐합하는 식의 개혁을 겪은 바 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군 내부 정보를 만지는 기무사의 상층부가 권력을 지향할 경우 어떤 개혁도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다는 걸 기무사 자체가 방증한다.
문제의 핵심을 다시 한 번 짚어보거니와, 계엄령 문건에서 드러나는 기무사의 관점을 보라. 진보세력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당한 제주 4.3사건을 제주 폭동으로, 여순사건은 여순반란사건으로, 부마민주항쟁을 부산 소요사태로 규정했다.
계엄령 문건은, 촛불시위자들이 모이는 광화문에 광주학살 행동대인 공수부대를, 국회가 있는 여의도엔 기계화사단을, 서울시내에 탱크·장갑차를 비롯한 무장병력·특전사 수 천명을 투입해야 한다는 마인드다.
기무사 개혁은 '해체' 아닌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지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