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마지막 낙하, 그 짧은 순간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했을, 노회찬이 마지막까지 전하려 했던 말은 "나와 같은 사람이 정의당에는 수두룩해야 한다"이지 않았을까. 대표만 저격하면 당이 무너지는, 그리하여 권력의 독수(毒手)들이 검찰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추호의 틈만 보여도 득달같이 달려드는, 비정상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마지막 한 획이 아닐까.

아파트 16층의 높이는 약 43.2미터다. 진보정치의 아이콘 노회찬 의원이 맨몸으로 낙하한 거리다. 땅에 떨어진 오욕의 몸 내부는 터지고 끊겨 작동을 멈췄겠지만, 그가 선택한 투신에는 43.2미터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었을까.

틀림없이 죽음에 다다를 수 있는 높이에서 도약했다. 단번에, 하지만 중력에 의한 가속을 온 몸으로 느끼며, 평생 순응해 온 그 중력의 질서에서 일탈하며 정신은 짧으나마 통쾌하였을까. 그러나 노회찬의 자진(自盡)에는 그 찰나의 보상심리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오직 진보의 등대로서,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과 판단에 대한 자괴감이 그 추락의 전말일 뿐이다. 후원절차를 밟지 않고 받은 정치자금 4천만원이 그의 목숨값이었다. 아니, 그가 살아서 단죄를 받을 경우 그 과정에서 자기 진영에 안길 피해의 불가측성을 감안하면 기실 그의 목숨값은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막대하다.

학생운동에서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으로 이어지는 45년 세월 동안 쌓인 그의 입지란, 불의에 대한 일관된 저항의 결정(結晶)이다. 이 나라 진보진영 안에서 배태되어 모진 풍파를 견디고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그의 자양분은 다름 아닌 궁핍을 숙명으로 안고 강자들의 세상에 맞선 그의 도덕성이었다.

거목의 도덕성, 그 무성한 이파리는 요즘처럼 체온을 훨씬 웃도는 폭염 아래서 그 가치를 발하리라. 하지만 노회찬은 오염된 자신의 도덕성 때문에 진영 전체가 위험에 빠질 것을 우려했다. 그의 몫숨값이 진영 전체를 구하는 유일한 출구로 환치되는 이유다.

그는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유서에 썼다.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또 유서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어렵게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그가 받았을 정치적인 압박감과, 진보진영이 그동안 쌓아 온 가치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6.13지방선거는 정의당의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렸다. 정의당 뿐 아니라 진보진영이 처음으로 국민의 품에서 온기를 느낀 근래였다. 그가 느꼈을 무게는 그 보람과 희열에 반비례했으리라. 마지막까지 그의 존재가치를 위축시켰을, 혹은 자존감을 팽창시켰을 대의를 그는 순순히 따라간 것이다.

그에게 더 나은 세상이란 죽음보다 더 먼 곳에 있었을까. 투쟁으로 점철된, 그러나 자신이 약자를 대변하는 약자라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온, 그래서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거니와 은근과 끈기로 급진성을 누르며 진보의 영토를 확장해 온 입장에서 자신이 진보의 과거를 지우고 전진을 장기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까.

하지만 노회찬의 그런 변은 부당해야 맞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결과여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실수 또는 비위 행위가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단은 순전히 착각이었어야 한다. 그가 마지막까지 자타공인 진보정치의 상징으로서 '정의당'을 '노회찬 당'으로 여기고 걱정했다면 그것은 착란에 가까운 것이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현실은 엄연히 '명사 정치' 혹은 '보스 정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과거에, 박근혜가 탄핵된 뒤 보수 정당들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바 있다. 정의당도 그와 같이 취약하지 않을까.

서민과 노동자들 가까이에서 애환을 함께하며, 평등한 세상, 그 목적을 좇아 현장을 함께 누볐을,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시대를 걱정하며 의제를 만날 때마다 격론을 벌였을 정의당의 구성원들은 노회찬과 함께 성장하지 못한 것일까.

같은 키의 구성원들이 많아야 옳고 실제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마저 아무렇지 않게 운용하고 있는 대표정치에서 1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스텝일 뿐이다. 대표를 비추는 조명 말고는 아예 가지고 있는 게 없다.

이 시대 진보의 정의구현이란 '평등의 구현' 아니던가. 모두가 짐을 나누어 무게를 분산시키지 않고, 무거운 짐을 한 곳에 쏠리게 하여 견디는 힘을 약화시키면서 정의당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노회찬은 극단적인 도덕성을 요구하는 진보진영 중심부에 서서, 거기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지고 있던 거대한 짐을 정의당 구성원들이 골고루 받치도록 내려놓고 누운 것은 아닐까.

정치적으로 부침을 거듭해 온 그가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아 했던 "정의는 지지 않았다"는 말을 '정의의 지지 않는 법'으로 치환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곧 '죽음'이 아니었을까.

마지막 낙하, 그 짧은 순간의 자유조차 누리지 못했을, 노회찬이 마지막까지 전하려 했던 말은 "나와 같은 사람이 정의당에는 수두룩해야 한다"이지 않았을까. 대표만 저격하면 당이 무너지는, 그리하여 권력의 독수(毒手)들이 검찰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추호의 틈만 보여도 득달같이 달려드는, 비정상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마지막 한 획이 아닐까.

자중지란이든 타력이든 난파된 배에서 빠져나와 의연히 당을 재건하곤 했던 노회찬의 마지막 꿈은 '원탁'의 정치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