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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호 '불안'의 진앙지 정 시장, 석고대죄가 현안 해결의 실마리다

편집국장 공인배

사실상 민자사업이며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원하는 청사를 신축할 수 없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어불성설로 핵심흐리기를 그만 멈춰야 한다. 주차장과 본 건물을 분리하며 자신의 대시민 사기를 호도하는 천둥벌거숭이적 태도를 고치지 않고서, 과연 새청사를 지을 수 있을까.

관리감독은 행정기능의 기본이다. 정 시장은 자칭 행정전문가로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해 환경대란을 부른 것이 치욕스럽지 않으냐는 질문 앞에 서 있다. 도덕성은 정치인의 기본 덕목이다. 정 시장이 선거 전에 거짓말로 희망을 조장하고 선거과정에서도 그런 사기극으로 일관하면서 표를 훔친 부정행위가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됐다.

4년 전에 거짓말로 도시의 불안을 조장한 죄는 단죄되지도 용서받지도 않은 현재 진행형이다. 정 시장의 부도덕한 행위들이 그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정 시장 발 불안 기류가 익산시 하늘에 먹구름을 드리워 투표를 마친지 이제 갓 달포를 넘긴 익산시민들에게 바위덩이 같은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난지 어느덧 달포를 지나가고 있다. 도시는 축제기간 동안 달아올랐던 홍조를 가라앉히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반도의 '공존공영'이라는 도도한 흐름에 한 표를 보탰던 유권자들과, 거꾸로 거슬러 가서 양안(兩岸)을 딛고 현실을 고민하는 '인물'의 손을 잡아 준 유권자들이 문득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는 시점이기도 하다.

두 개의 시선은 무표정하며 차분하다. 선거 직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지역 정계의 양태가 표면화되면서 여러 우려를 불러일으키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체념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눈이다. 그러나 이 시선 둘은 각자의 선택 오류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더듬다가 결국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

익산지역에서 그 시선 하나는 민주당에 대한 몰표 군(群)이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선거에서 무조건 1번에 도장을 찍었다. 그 바람에 경륜이나 능력면에서 경쟁 우위에 있는 것으로 하마평에 오르던 비민주당 후보들이 민주당 후보와 큰 표차로 낙선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또 하나의 시선은 민주당이 공천한 익산시장 후보를 낙선시킨 51.90%의 시민 군(群)이다. 그들에 의해 재선에 성공한 정헌율 시장은 기호 4번 민주평화당 소속이다. 그러나 정헌율의 당선을 놓고 민주평화당이 선전(善戰)한 결과라고 평가하는 유권자들은 거의 없다.

광역의원 선거구 4곳 전부를 민주당이 차지했고, 기초의원 선거구 25곳 가운데 민주평화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그 두 지역의 유권자들이 정당을 보고 투표한 게 아니라 '인물'을 선택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름 크다.

그들이 각자 경제·사회 분야에서 상당 기간 인지도를 높여 왔고 나름의 넓은 인맥을 구축한 사실에 기반한 목소리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쏠린 시선과 '인물'을 가려낸 시선은 서로 마주보면서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의 시선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익산시민들 대다수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일꾼'을 뽑는 책무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이는 익산시의회가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장애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민주당 지배의 환경을 조성한 배경이다. 반면, 집행부의 수장인 정 시장에게는 통합적 사고와 협치를 요구했다. 독단과 전횡을 예방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정 시장에게 유용한 직능은 고위직 행정공무원 출신의 관리능력보다 지난 2년 동안 초선 시장으로서 길러 온 정치력인 이유다. 시민들이 2년 전과 새로운 4년의 시작을 같은 인물에게 맡겼지만, 새로운 4년에 거는 기대는 2년 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정 시장이 얼마만큼의 무게로 수용하느냐가 민선 7기 성패의 관건인 것이다.

유권자들, 익산시장의 통합적 사고와 협치 요구

2년 전까지, 익산시민들 사이에는 전기 익산시장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었다. 열정을 앞세웠지만 미숙했고, 외부 방식을 도입해 현안을 해결하거나 도시의 미래를 담보할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그 과정에서 의심을 샀으며, 공조직을 검증된 지표도 없이 실험하듯 운용해 내부 갈등과 불만 게이지가 임계점에 다다랐고, 사업들을 방만하게 벌이다 부채를 과도하게 늘렸다.

단체장의 독단과 전횡이 난무하기도 했다. 자치단체가 해서는 안 될 일을 밀어붙였고, 무원칙 인사로 공조직을 흔들고, 부당한 명령에 불응하는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줬다. 정치권과는 무한 반목을 조장하고, 집행부로 하여금 의회를 보이콧하게 하는 등 민주주의를 부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한마디로 2년 전의 익산시민들은 도시를 '불안'에서 구하는 것이었다. 그 적임자가 정헌율이라고 보았고, 정 시장은 주어진 반토막짜리의 어수선한 임기를 수행했다. 도시의 지표가 더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한적인 시간내에 나름의 안정을 도모한 것은 평가받을 만 하다.

그러나, 요구는 있지만 시간은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던 2년 전 익산시민들의 정서와 더 주어지는 4년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민들의 정서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산적한 '불안' 해소에 거는 기대 수위가 높다. 민선 6기 정헌율 체제 초기에 1급 발암물질인 비소가 함유된 지정폐기물 7만여 톤이 한 폐석산에 매립된 사실이 사법기관에 의해 드러났다.

발암물질을 퍼내 처리하고 해당 폐석산을 원상복구해야 하지만 2년 넘게 손조차 대지 못했다. 그 사이 침출수는 지하로 스며들고 범람하여 하천으로 유입되고 있다.

근심거리가 또 하나 있다. 익산시 청사 신축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익산시가 뭔가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부지원금이 한 푼도 없는데 익산시는 재정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익산시가 이른바 구도심의 희망으로 내세운 신청사 신축사업은 기실 민자유치 사업이다. 게다가 익산시는 이 사업의 주체이면서도 갑이라기 보다는 을의 지위에 가깝다. 우선 LH의 투자 유인을 위해 익산시가 소유하고 있는 땅을 아파트 신축부지로 내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LH의 신청사 신축비용에 대한 등가교환은 매듭되지 않는다.

LH는 현청사 부지에 청사를 신축하면서 연접한 곳에 수익창출형 부대시설을 지어 일정기간 이익금을 거둬갈 수도 있고, 그래도 부족분이 발생하면 익산시에 보전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정부의 지자체 청사 리뉴얼 공모사업 요강은 익산시의 계약 당사자적 지위를 불평등하게 부여한다.

그러나 정헌율 시장은 '정부 공모사업 선정'을 자신의 공적으로 지나칠 정도로 활용해 왔다. 그 바람에 익산시는 좁아진 선택의 폭 안에서 골머리를 앓게 됐다. LH의 투자비에 대해 대체부지를 주는 것 이상 다른 것을 더 얹어주었다가는 여론의 맹폭을 당할 공산이 높아진 것이다.

"익산시 돈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청사를 지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해 온 정 시장이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이다. 전문가들은 청사 신축비용이 어림잡아 1천4백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2년 전 전기에서 물려받은 부채도 단기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려운 마당이다. 전기 시장들이 새청사 문제를 거론하지 못했던 배경이다.

여기에서 새청사 신축이라는 소모적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부채를 늘리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꼴이다. 이렇듯 전기 시장들의 시정운영 행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잔존하는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 채 새로운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이는 것을 유권자들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잔존하는 '불안'에 새로운 불안을 양산해

만화방창, 국토를 뒤덮은 파란 꽃 물결 속에 당당하게 핀 초록색 꽃이다. 희소한 승리는 초라하지 않고 두드러져 보이는 법이다. 기적같은 신승이라 할 만하다. 태풍에도 끄덕하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은 익산지역 민심의 결정이었다.

당선이 확정된 순간 정 시장의 가슴속에 용솟음쳤을 '분골쇄신으로 시민들의 뜻에 보답하겠다'는 감동과 충성심이 결코 묽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쿵쿵 뛰어야 할 그의 심장 소리는 불과 달포 만에 잦아들고 싸늘히 식어가는 양상이다.

당장, 당선 후 첫 번째로 단행한 인사가 지나치게 예측불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공직사회가 뒤숭숭하다. 일각에서는 "정 시장이 주어진 4년 다음은 필요없다고 선을 그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내 맘대로 하겠다'는 독선과 교만이 '불안'을 조장하고 더 압력을 높일 것이라는 예측이 공공연하게 제기 된다.

정헌율 호의 시계(視界)는 불투명하다. 그가 시장을 위한 시장일 뿐 시민을 위한 시장으로 평가받지 못할 행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 거짓말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양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5년 전 당시 현역 시장이었던 상대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익산시를 '파산도시'로 규정했다.

'회계처리 준칙' 같은 것을 내세워 부채를 부풀리고 자신의 전문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말에 대한 신빙성을 높였다. '파산방지대책위'까지 꾸려 도시의 위기를 조장했다. 그는 익산시장으로 당선될 때까지 불안한 연기를 지속적으로 피웠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도 익산은 파산하지 않았고, 2년 전 익산시장으로 입성한 정헌율 자신도 익산시의 부채는 걱정할 만한 규모가 아니라고 공표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시민들을 속여온 데 대한 일말의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폐석산에 발암물질이 묻힌 것도 그렇다. 환경부 소관의 올바로 시스템에 폐기물의 이동 경로와 처리장이 기록된다고는 하지만, 폐기물이 매립장에 반입되고 매립되는 것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은 명백히 자치단체장에게 있다.

하지만, 정 시장은 모든 책임을 환경부에 미뤘다. 표면적으로는 폐석산 원상 복구비용을 익산시는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어서 익산시의 이익을 지키는 태도로 비쳐지지만, 복구비용은 행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보전받을 수 있다.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려면

다만, "익산시에는 책임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 시장 자신의 정치적 이해타산 때문에 익산지역을 환경대란에 빠뜨린 최대현안을 2년여 동안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채 표류케 하고 있는 것이다. 정 시장이 지자체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시민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자체적인 해법을 일절 모색함이 없이 환경부만을 밀어붙여서 과연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를 질문해야 할 시점이다.

정 시장이 익산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한 마디만 하면 익산시비로 오염원을 저감시킬 수 있다. 최소한 침출수 정도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익산시 청사 신축문제도 마찬가지다. 정 시장이 치적 홍보를 위해 '정부 공모사업 선정'을 강조해 온 홍보가 부적절했다는 것을 시인해야만 사업이 본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정 시장은 유권자들로부터 '불안 제거'를 명령받은 단체장이다. 유권자들이 집권정당의 프리미엄을 포기하면서까지 선택한 '인물'이다. 그러나 익산시민들은 예측가능한 대가를 지불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물평가의 오류에 따른 불가측적인 피해까지 각오해야 할 마당이다. 정 시장은 시민들에 대한 석고대죄 없이 협치는 커녕 난마처럼 얽힌 각종 현안을 한 올이라도 풀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