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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호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해사건이 가리키는 수사기관의 현주소

편집국장 공인배

최소한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는 사건들은 내부에서 상시 모니터링 되어야 하는 이유다. 당장 검찰 조직의 인권문제에 관한 인식 전환이 시급 하다. 증거에 입각하지 않는 선입관 또는 실적에 대한 강한 압박감, 무리한 강압·강제수사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삼는 도도한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지를 수시 사무감사를 통해 감시할 필요가 있다.

14일 전의 일이다. 대법원은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에 대해 징역 15년 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경찰의 폭압적인 거짓 자백 강요에 눌려 졸지에 범인이 되었던 한 소년이 1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 재심의 무죄 판결에 따라 풀려난지 16개월 10일 만이다.

사건 발생일로부터는 18년이 흐른 뒤에야 진범이 법의 단죄를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이는 15세 소년이었다. 그는 소년기와 청년기를 송두리째 잃어버렸다. 경찰-검찰-법원으로 연결되는 형사 사법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18년 전 커피배달을 나갔던 소년은 약촌오거리 부근에 세워져 있는 택시 쪽에서 누군가 뛰어가는 걸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소년을 최초 목격자라는 이유로 여관으로 끌고가서 마구잡이로 구타하며 자백을 종용했다.

소년이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하지만 검사는 소년의 자백을 근거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판사는 구속을 승인했다. 자백은 현장 상황과 물리적·역학적으로 불일치 했는데도 검사는 그 검증 책무를 저버렸다.

형사소송법 제310조는 '자백이 그에게 유일한 증거일 때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함으로써, 자백의 진실성을 담보할 증거를 보강하도록 지시하고 있지만, 검사는 피의자의 자백에 전적으로 기대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사건을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오판을 방지하고 인권침해를 예방하려는 형사소송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자백과 관련하여 검사나 판사의 지표가 되는 '자백보강원칙'은 "피고인이 임의로 한 증거능력이 있고 신용성이 있는 자백에 의하여 법관이 유죄의 심증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백에 대한 다른 보강증거가 없으면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자백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에는 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못박고 있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해사건이 일사천리로 기소되자 수사팀은 공을 인정받아 표창까지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심리한 당시 재판부는 "경찰이 잠도 재우지 않고 때려서 한 거짓 자백"이라는 소년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범행을 부인하는 행위에 대해 괘씸죄까지 붙여 소년범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결국 소년은 모든 범행을 인정했다. 형량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였다. “정말 네가 한 게 맞느냐”는 2심 재판부의 질문에 소년은 “맞다”며 고개를 떨궜고, 1심보다 감형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 상고도 포기했다.

그는 감옥에서 형량을 거의 다 채운 뒤에야 재심의 기회를 얻었고, 새로운 재판부는 10년 동안 묵은 오욕의 사건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눈으로 사건을 살핀 끝에 그의 무죄를 밝혔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떻게 생긴 걸까.

이 사건의 가장 큰 시사점은 경찰관들과 검사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편모 슬하의 소년인데다, 학생이어야 할 시기에 커피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없는 소년은 그들의 빗나간 탐욕의 재물이 되었다.

그릇된 공권력은 저항할 힘이 없는 사람을 짓밟고, 자기방어를 하지 못하는 사회적 저층위의 지위를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조건'으로 착각케 하는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한 사술은 현장이나 증거를 천착해야 하는 판사의 눈을 가려서 오판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동시에 악행을 저지른 뒤의 사법기관의 폐쇄성과 노골적인 사건 은폐,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재심을 준비하는 변호사가 사건 기록물을 추적하고 담당 경찰관들이나 검사와의 인터뷰 기회를 얻으려고 할 때 계속 난관에 봉착했던 이유다.

그들은 검사가 재심에 필요한 새로운 증거를 코앞에 디밀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사건을 사법기관이 스스로 뒤집어 신뢰를 실추시킬 리 만무하다'는 그들 믿음의 단서인 것만 같아 씁쓸하고 또 씁쓸하다.

그러나 수사 당국의 부실·과잉수사 관행이 삶의 근간을 흔들어 한 개인을 식물화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수사 당시 막내였던 경찰관이 재심과정에서 스스로 목슴을 끊음으로써 그 내부가 아주 비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는 되었다.

하지만 막내였을 그에게 공권력 악용을 지시했을 다른 경찰관들과 그것을 기소한 검사, 조작 된 사건의 억울한 피해자에게 중형을 선고한 판사는 일말의 사과조차 하지 않고있다. 다만, 이 사건 진범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난 직후 문무일 검찰총장과 전북도경의 현직 형사과장과 강력계장이 피해자를 찾아 사과를 했지만, 그 진정성은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권 정부, 검사의 인권의식을 바로 세워야 그 위에 설 수 있다

검찰의 실수 등으로 구금됐다가 무죄로 풀려나는 인원이 매년 수천명이나 되고 이에 따른 보상금 지급액이 수백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무죄 등 사건평정 및 형사보상금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무죄 평정은 2015년(7,191건)에 비해 8.9%가량 늘어난 7,832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미진한 수사나 법리오해 등 검사의 과오로 인한 무죄평정은 1,295건(16.5%)에 달한다. 무죄평정 3,418건(검사 과오 546건)을 기록한 10년 전 대비 2배 이상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수사미진이 3,500건이 넘는 등 검사의 실수로 인한 무죄가 매년 끊이지 않은 탓에 지난 2008년 79억원이었던 형사보상금 규모도 2017년 360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국가예산 손실이 막대하다.

"정의와 인권을 바로세우겠다" 고 선서한 검사 10명 중 1.65명이 불의 쪽으로 경도되어 있다는 걸 가리키는 통계다. 그들은 개인에개 폭력을 휘두르되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시스템으로부 보호를 받는 칼잡이들이다.

나아가 검사의 오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형사보상금액을 대폭 높이고, 국가가 담당 검사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되 보상금액의 몇 곱절을 물리도록 하는 제도와 공판 검사들의 자질을 높이고 수를 대폭 늘려 일선 검사들의 인권침해 견제장치를 마련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