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의당 전국위원회가 지난 주말 평화당의 공동교섭단체 구성 제안을 받아들였다. 양당의 전략적 연합은 절차적 수순만 남았다. 20대 후반기 국회는 더불어민주당(121석) 자유한국당(116석) 바른미래당(30석)에 이어 네 번째 원내 교섭단체(20석)를 갖게 된 것이다.

현행 제도상, 국회운영과 의사일정 협상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소수정당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양당의 선택이다. 공동교섭단체 출범이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난 1963년 6대 국회 당시 민주당과 자유민주당, 국민의당을 합친 ‘삼민회’, 2008년 18대 국회의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합친 ‘선진과 창조의 모임’에 이어 세 번째다.

하지만 과거 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공동교섭단체가 심대평 의원 한 명의 탈당으로 깨졌던 점을 감안하면 그 구조는 지극히 취약하다. 가뜩이나 진보 색깔 정의당과 보수개혁 성향의 평화당이 손을 잡았다. 정체성이 판이한 네 번째 공동교섭단체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태생적 다름에서 비롯하는 정책연대의 협소한 지형에 자주 봉착하고, 교섭단체 운영에서 잦은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두 정당이 자기 색깔만을 고집하는 한 불가피한 부작용이다. 4개 교섭단체 체제의 다원화 국회가 실현됐지만, 양당의 동거가 불안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정치 실험은, 양당이 근시안적인 정치적 이익을 좇느냐, 아니면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가는 해법을 모색할 것이냐에 따라 우리 정치사에 선악의 족적을 뚜렷하게 남길 것이다. 물론 공동교섭단체 구성의 이유가 후자여야만 그 명분이 확보될 것이고, 그 실현을 위해서는 '촛불 정부'와 국회의 공통분모에 대한 집중이 요구된다.

양당이 사심을 걷어내고 정당의 본령을 수호하는 연대체제를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책 취사(取捨)에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새 공동교섭단체는 국회의 좀 더 전향적이고 폭넓은 토론과 대안 모색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당간 연대 경험이 적은 우리 정치현실 속에서 기왕에 출범한 정책연대다. 국민들이 거는 기대가 적지 않다. 거대 정당 중심의 국회 운영에 소수 정당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다양한 유권자의 목소리를 정책과 법률안에 반영하는 등 국회운영의 긍정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공동교섭단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안 문제를 대할 때 공동선에 입각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게를 보탤 곳을 선택하며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린다면, 그것이 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공동교섭단체는 우리 정치에 해악을 끼칠 뿐이다.

가뜩이나 정체성이 사뭇 다른 정당간 연대인데, 갈지자 걸음으로 우리의 정치지형을 어지럽힐 것이라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것이 옳다. 양당의 연대에 자꾸만 눈길이 가고 혹여 잘못될까 애타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가파른 변혁의 변곡점에 서 있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의 산적한 현안들은 우리의 평화와 평등, 그리고 다양성을 전례없이 향상시킬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추동해야 할 국회는 제1 야당의 발목 잡기로 미동도 하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정의당이 평화당과의 공동교섭단체 구성의 지표로 삼은 것이 그러한 '현실 직시'에 있다는 점이 더욱 더 국민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전국위 회의에서 “정의당이 4월과 5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에 기여하고, 우리 당과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논의에 개입하려면 지금이 공동교섭단체를 만들 적기”라고 했다.

적실한 상황인식이다. 정의당의 소수정당간 연대는 여당인 민주당을 견제한다는 의미를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공동교섭단체가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적극 지원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열 개헌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힌다.

동상이몽의 말로는 참혹

특히, 우리의 눈길은 그가 표방한 연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인 '선거제도 개혁'에 걸린다. 우리는 기초의회의 4인 선거구제 정착과, 투표하는 민심에 비례한 국회의석 수 배분 같은 시대적 화두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이 지방분권국가를 선언하고 있지만, 2인 선거구 획정에 의해 구성된 대부분의 기초의회는 일당독식체제를 부추기고 심화시켜왔다. 정치신인과 소수당 참여를 봉쇄한 2인 선거구는 '감시와 견제'라는 의회의 본령을 질식시켜 제왕적 지자체장을 양산해 온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신인과 소수당이 제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려운 국회 운영 제도는 국회가 민생을 도외시하고 거대정당간 당리당략의 각축장으로 전락하는 구실이 됐다. 이렇듯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은 우리의 왜곡된 정치를 바로잡고 내일을 여는 중차대한 일이다.

우리가 기뻐할 일은 우리가 그와 같이 부조리한 정치구조의 문제를 본 무대에 올리고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다당제 구조가 형성된 지형에 서 있다는 것이고,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통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공동교섭단체의 한 축인 정의당은 시대정신과 함께 호흡하는 반면, 다른 한 축인 평화당은 수개월 전부터 개헌안을 정부가 내는 것 자체에 반대하면서 사사건건 촛불 정부의 전진을 가로막는 한국당의 기조에 발을 맞추고 있다.

"촛불정신의 핵심인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 진행되지 않는 병목은 바로 국회"라는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평화당은 유권자와 지지자들에게 이토록 불안한 동거를 왜 시작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평화당의 행태는 '교섭단체' 지위 확보를 통한 재정적 이익과 다가올 지방선거의 선거연대를 노린 계산적 정치 연대 이상의 모습이 되지 못한다. 동상이몽의 양당 연대라면 역사를 배반하는 일이고, 그 말로는 참혹할 것이 명약관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