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시진핑 국가주석이 장기집권을 예약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지난 11일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폐기하고 '시진핑 사상'을 삽입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찬성 2,958표, 반대 2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통과시켰다.

이 99.79%의 압도적 몰표는 시진핑의 권력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그가 마음만 먹으면 무기한 집권이 가능하다는 걸 시사한다. 이번 개헌안은 중국 공산당 정치국과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 안건이고 전인대가 이를 거부한 사례는 없었다는 점에서 부결될 것이란 관측도 전무했다.

하지만 반대가 2표에 불과한 압도적인 찬성률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공산당의 획일성과 전체주의를 단적으로 투영하는 결과이고, 그 일련의 과정에서 시진핑의 전제적(專制的) 정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국가 공동체의 존재 형태와 기본적 가치질서를 변경하는 투표를, 공개투표라고 밖에 달리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한 현장은, 개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현실을 굳이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중국 공산당의 태도를 여실히 반영한다 할 것이다.

물론 투표는 '무기명 투표' 방식이었다. 전인대는 가림막이 없는 자기 자리에 앉아서 큼지막(A4용지 크기)한 투표용지에 찬성, 반대, 기권 의견을 표기해야 했다. 또한 별도의 기표소 없이 마련된 전자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반드시 펴서 넣어야 했다. 그 투표함 옆에는 '검표인'이라 불리는 투표 감독관이 서서 지켜봤다.

중국인들에게는 이런 무늬만 '비밀투표' 방식이 익숙하기는 하다. 대학에서 처음 인민대표를 선출할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투표를 해왔기 때문이다. 투표 결과가 바로 집계되도록 OMR(광학마크판독기)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접거나 구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투표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을 개정하는 절차였다. 더구나 근대적·입헌주의적 의미의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주석의 임기를 폐기하는 일은 헌법 정신을 역행하는 사안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형식적으로라도 국민적 합의를 명확하게 확인해야 했다. 그것은 개헌 전 과정에서 비밀투표가 전제되었을 때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 표결에서는 논쟁과 토론은 물론 유세조차 없었다. 당국의 엄격한 관리 아래 일사분란하고 빈틈없이 진행된 이번 개헌 절차는 오직 시진핑의 제왕적 권좌를 가리키는 형식이었을 뿐인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번 개헌 투표 결과는 중국 정치사회의 퇴조를 극명하게 비춘다. 개헌 논의 이전과 과정에서 중국 내에서는 과거 절대권력 시대로의 회귀 가능성에 대한 적잖은 비판 여론이 일었으나 개헌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시대에 이어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시대가 이어지며 중국 정치사회에는 주류에 반하는 소수의견이 표출되는 것을 점진적으로 허용하는 등 미미하나마 민주화 진전과 다양성 확대를 이뤘지만, 이번 개헌 투표는 일거에 중국 정치사회 시계를 덩샤오핑 이전의 시대로 돌려놓은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에 따르면 시진핑의 이 같은 천하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집권한 이후 꾸준히 수많은 정적들을 숙청하고 당과 전인대를 친시진핑화 한 결과로 본다. 정권의 나팔수 역에 충실한 관영언론도 정권의 행보에 반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동참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시진핑이 살아있는 동안 그의 취임 초기에 나타났던 풍경을 다시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전인대는 시진핑의 각종 정책·인사안에 수백장의 반대표를 쏟아냈다. 또 최고인민법원과 감찰원의 업무보고에 각각 605표, 485표의 반대표를 던지며 사법 불공정과 공직자 부패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었다.

이렇듯 시진핑 이전 정권이 이룬 민주화의 결실은 시진핑 집권 초기에 정점을 찍었으나, 불과 5년 만에 짓눌려 가까스로 내는 숨소리만 정적을 깰 뿐인 것이다. 중국은 개헌 표결이 끝난 직후 영도자 시진핑에 대한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관영 TV는 11일 밤 시진핑의 치적을 소개하고 이번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공개했고, 앞서 개봉한 시진핑 집권 1기의 치적을 다룬 영화 '대단한 나라' 상영관은 공산당의 지시를 받은 당원들이 몰려 연일 만원사례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 오를 곳, 더 가질 것이 없는 권력이 갈 곳

남의 나라의 일이다. 하지만 시진핑 집권 1기는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공포감을 심어줬다. 아닌 척 하면서도 문화와 관광시장에 영향을 미쳐 한류를 동결시키고 우리나라로 향하던 요우커의 항로를 가로막았다.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이었다.

시진핑은 또 김정은의 핵실험과 미사실 시험발사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했다. 이익 없는 일에 나서지 않고, 우방끼리의 정서적 연대 고리로 인해 북한과 미국 사이의 긴장도가 높아지면 중국의 지위가 덩달아 격상되는 것에 내심 쾌재를 부르는 태도였다.

이웃나라간의 전쟁조차도 자국의 이익과 결부된다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이번 헌법 개정안에 삽입된 '시진핑 사상'의 핵심이다. 주변국들이 그가 지극히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 동북아의 사대적 질서를 꿈꾸는 그에게 중국 내의 모든 힘이 집중 된 꼴이다.

그는 국가주석·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공산당 총서기 등 3권을 모두 차지했다. 중국 국가지도체제가 가장 위험한 체제로 분류되는 일극 중심으로 개편된 것이다.

그는 더 오를 곳이 없으니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진리를 입증하는 수순을 몸소 밟을 일만 남았는데, 그런 순리를 거부하고 더 오를 곳을 마련하기 위해 동북아의 패권 획득과 공고화라는 헛된 꿈으로 소모적 혼란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천하를 통일한 자는 정권연장을 위해 법치주의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자의 이념을 지키는 법은 압제의 수단이 되게 마련이다. 그 체제 아래 국민들은 불행의 나락에 떨어지고, 그런 체제는 짧은 기간 안에 몰락하며, 권력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정권이 그 이정표다. 천년만년 영속을 꿈꾸었던 진시황은 '분서갱유'라는 전무후무한 대규모 문화 탄압을 자행하고, 만리장성을 축조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땅에 묻었다.

그는 사후, 한낱 환관 조고의 헛된 권력욕에 의해 시신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땅에 묻히지 못했으며, 그가 남긴 3족은 몰살당했다. 조고에게 놀아난 시황제의 25남 호혜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재위 15년 만에 진왕조는 완전히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