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안희정 케이스도 그렇다. 그가 맹수라면 그의 비서는 특별 채용 되는 순간 맹수의 사냥터에 갇힌 꼴이다. 그녀는 먹잇감이지만 자주적으로 사냥터에 남아야 하는 경제적 주체였다. 더구나 안희정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제도의 보호 밖에 있는 입장이었다.

지난 5일 잘 벼린 '미투'의 칼이 집권여당의 흉부를 갈랐다. 국민 모두가 건강하다고 믿었던 주요 장기 하나가 삽시간에 적출되었다. 안희정,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그는 정치적으로 사망했고, 민주당은 새로운 장기 이식을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웠다.

도덕적인 면에서도 이 나라 정계의 바람직한 상(像)으로 주목받던 그가 '미투'의 쓰나미에 휩쓸린 것이다.

'부적절한 관계' 하나만으로도 그가 정치적으로 살아서 제자리로 돌아가 회생할 시간은 없다. 공교롭게도 충남지사 출마를 선언한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자타가 공인하는 '안희정 사람'이다.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두고 그 관계를 노린 정적의 정치공작적 저격을 가정한 '막장 시나리오'가 나오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그것도 당장 루머 이상이 될 수 없다.

일단 안희정이 국민에게 안겨준 배신감은 충분한 확증편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들의 귀에 그가 하는 무슨 말이 들리겠는가.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미투'가 안겨주는 절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현실을 극명하게 비추며,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분출했던 추레한 욕구의 잔해들까지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 빛 아래 드러난 몰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속한 사회의 여성은 성적 주체가 아니라 객체였고, 욕망하는 주체가 아니라 욕망되는 대상이었고, 사람이 아니라 성 도구로 여겨진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당장 남성의 여성에 대한 왜곡된 성의식이 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나쁜 습관은 갖기 쉽지만 고치는데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 곳곳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여성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성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아 나갈 것을 촉구한다.

청소년기부터 올바른 성문화를 학습하도록 근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3년 전 교육부가 각 학교에 보급한 '성교육 표준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2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표준안은 '남성은 성욕이 강하고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충동적으로 성욕이 일기 때문에 여성의 적절한 대처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남성의 야수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여성에게 피해의 책임을 전가했다.

국민적 비판이 일자 통째로 종적을 감춘 그 표준안에는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다 살해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 사례까지 들었다. 이는 우리사회가 야성의 질서를 따르면서 그 힘의 논리를 옹위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우리사회는 근본적으로 평등과 존중을 모토로 삼는 도시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자본은 성을 상품화 했고, 우리의 성문화는 황폐의 극치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고 남성 전체를 일반화해서도 안 되겠지만, 자본은 여전히 남성성이 강하며, 그것은 우리사회의 온갖 불안과 불행의 근원이다.

그 남성성의 대표적인 현상은 바로 '갑질'이다. 군림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착취한다. 지난 3일 저녁 6시 서울 중구 지하철 광화문역 4번출구, 새내기 간호사 박 씨의 안타까운 자살을 추모하는 동료 간호사들의 "너는 나였다"라는 노래는 우리사회가 그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극명한 인식과 우리가 하루빨리 안전한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절절했다.

새내기 간호사의 죽음은 이른바 '태움'에 의한 타살로 전해진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방식을 일컫는 용어로,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다. 일선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교육을 빙자한 가혹행위'로 통한다.

공신력 있는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 규명과 가혹행위자를 발본색원하는 것은 물론, 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해결 등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예방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나오는 이유다.

특히, 상급자의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간호사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와 불규칙한 근무 등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 병원이 지출을 줄이기 위해 인력을 늘리지 않고 간호사들을 지옥 일터로 몰아넣으면서 반인권적 조직문화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나였다"가 푸념에 불과한 오늘

소위 '태움'은 부족한 인력을 메꾸기 위해 '일당백 인력'을 양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 나라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수가 OECD회원국 평균 서너배에 달하고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등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노출되어 있다.

이는 '태움'이 가혹행위 혹은 갑질이라는 것을 상급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환경이다. '절대악'을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간호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환자도 간호사도 위험하게 만드는 암덩어리는 바로 '태움'을 조장하는 병원의 이윤추구인 것이다.

안희정 케이스도 그렇다. 그가 맹수라면 그의 비서는 특별 채용 되는 순간 맹수의 사냥터에 갇힌 꼴이다. 그녀는 먹잇감이지만 자주적으로 사냥터에 남아야 하는 경제적 주체였다. 더구나 안희정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제도의 보호 밖에 있는 입장이었다.

이번 주간은 여성의 날(3월 8일)을 품고 있다. 짧은 기간 전례없이 폭로된 여성들의 슬픔 탓에 내일을 맞이하지 못 할 것 같은 오늘이다.

'미투' 운동이 사회변혁의 희망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내친김에 우리사회를 내일로 견인할 수 있을까. 최소한 여성을 차별받지 않는 당당한 주인으로 세울 수는 있을까.

그런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오늘이다. 권력형 '갑질'을 우리사회에서 퇴출하기 위해서 선행해야 할 '분배의 정의' 실현은 여전히 요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일반의 의식과 생활이 계층적 질서를 타파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갑질'은 최적의 서식환경에서 끊임없이 핵분열 할 것이다.

우리가 도시라고 믿는 도시가 온전한 도시이길 바란다면, 증상에 대한 처방 뿐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개혁 즉 진정한 평등의 실현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