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미투' 운동은 여성보호에 취약한 사회 안전망을 대신해 남성의 검은 손을 노출시키고 제거수순을 밟는 여성들의 용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열풍을 악용한 특정 여성들의 남성을 향한 가해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사회에 이상 성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이렇게나 많이 도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다. 가해자들의 변태 성욕은 병증이 분명한데, 그 다양한 사례자들은 병명을 한마디로 명명하는 것을 불허한다.

여성과 격리된 성직자, 법을 집행하고 수호하는 검사, 기예의 정점에 오른 문화 예술가, 큰 규모의 팬덤을 가진 연예인, 진실과 내일을 좇는 언론인, 후학을 육성하는 교수 등 변태 성욕자가 속한 집단들이 보통사람들의 기대와 다르게 병균을 사멸시키는 청정지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높은 도덕성과 자정능력을 가져야만 하는 집단 내부에서 성추행 가해자들이 속출하고 버젓이 서식하면서 보통사람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성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이 개인의 문제 못지않게 집단의 문제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특히, 가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집단 안팎에서 추앙을 받거나 집단을 이끄는 리더인 경우가 대종을 이룬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 크다. 그것은 권력이 폭력화 된 것으로 우리가 여태껏 야만의 아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말하자면, 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자만에 빠져 자기 제어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권력을 쥔 정복자가 전리품을 챙기듯 자기보상의 대상을 찾다가 일탈하는 경우를 우리는 간혹 맞닥뜨리기는 했었다. 하지만 권력에 도취된 끝에 포식자가 된 권력의 민낯이 이토록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야생의 포식자에게는 지배의 논리만 있을 따름이다. 규범이나 도덕을 초월한다. 피해자를 집단에서 고립시키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포식자의 힘은 피해자나 피해를 입게 될 개인의 두려움을 먹고 갈수록 비대해지는 법이다. 상대에 대해 둔해지고 무감각해진다.

거기에 남성중심의 폐쇄성이 겹치면서 포식자가 타깃으로 삼는 여성이 속절없는 노리갯감이 되고 마는 구조가 형성되면, 성추행은 만연하며 집단 내부는 음울해지지만 표면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투영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절절하게 알게 되는 나날이다.

이 폭발적인 양상으로 전방위 확산하는 '미투' 운동은, 가해자와 연대하는 불감증과 웃으면서 휘두르는 폭력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걸 단적으로 방증하는 것이다.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억압이 압력수치를 높인 끝에 급기야 더는 누를 수 없는 폭발점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받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너무나 뜻밖이기 때문이다. 탈 권위주의시대를 살며 첨단문명을 향유하는 우리다. 주종관계의 적폐, 야만의 논리에 찌든 집단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 폭로들을 모두 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나 초라하다. 깜짝 놀란 우리사회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망을 고민하게 됐다.

하지만 성 문제는 복잡하고 미묘한데다 당장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고작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전자발찌 착용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성범죄 종류를 늘리는 정도다. 성이란 태생적으로 은밀하다. 피해를 느끼는 개인차도 천차만별이다.

그런 맥락에서 피해자들 가운데는 처음 부터 피해자가 아니었을 경우도 다소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렵다. 집단 내에서 종속관계에 있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처음에는 가벼운 성의롱으로 시작했다가 성추행에까지 발전한 경우, 그 과정은 묵시적 합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배제하지 못한다.

여성이 당초에는 집단 내의 가부장적 제도를 옹호하는 잘못된 통념을 의식하면서 남성의 동의하지 않는 접촉에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못했지만, 점점 자의반 타의반 수용하면서 입지의 안정을 도모하는 경우라면 남성의 성희롱이나 추행도 그에 비례하는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 상간을 여성은 신분이동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수많은 강간사건이 일어나고, 그 가운데는 법정에서 화간으로 판명나는 케이스도 허다하다. 말하자면 남성들의 그릇된 욕망이 자라는데는 그런 여성들이 한 몫 한다는 걸 우리는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경우 상대 남성과 이해(利害)가 엇갈린 여성은 오늘과 같은 성추행 고발 파동을 해당 남성 축출의 기화로 삼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최근 터져나오는 성추행 고발의 양상이 너무나 급격하며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 같기에 드는 생각이다.

가해자일 수도 있다

남성사회가 이렇게까지 썩었단 말인가. 남성은 참지 못하고 여성은 그토록 참을성이 많았단 말인가.

누구든지 사방의 파상공격에 고립되면 패닉상태에 빠지기 쉽다. 원인과 과정이 무엇이든 간에 피해자의 고발이 '성추행'이라면, 소위 하루 아침에 가해자가 된 남성은 그 '성관계'가 팩트일 경우 속절없이 사면초가에 떨어지고 만다.

대중화 된 성추행 폭로 쓰나미는 가해자가 된 남성에게 석명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만약 변명이라도 한다면 달궈질대로 달궈진 여론이라는 것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 남성의 인생을 찢어발겨버릴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이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삶의 현장에서 피하기에 급급하다면, 그것은 '당장에는 도망치지만 과열 된 이 세상이 냉정을 되찾은 뒤에 혹은 이성이 주도하는 법원에서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미투' 운동은 여성보호에 취약한 사회 안전망을 대신해 남성의 검은 손을 노출시키고 제거수순을 밟는 여성들의 용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열풍을 악용한 특정 여성들의 남성을 향한 가해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우리가 냉정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다. 만약, 자기결정에 의한 행위를 남에게 덮어씌운다면, 그것이야 말로 포식자의 폭력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