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신과 함께'는 잘 쌓아 올려진 '신파'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부족한 개연성을 상쇄할 만큼의 감동을 안겨준다. 어쩌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은 그야말로 '신파'를 만나기 위해 '신과 함께' 앞에 모여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영화 '신과 함께'가 지난 19일 현재 누적관계 1,400만명을 돌파했다. 특정 종교적 색채가 강한 영화다. 타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역대 흥행 2위의 반열에 '신과 함께'가 당당히 오른 것이다.

죽은 사람이 심판을 받기 위해 10개의 지옥들을 거쳐야 한다는 설정은 불교에서 채용됐다. 심판관들의 이름이나 심판 받을 행위, 지옥의 묘사도 불교에서 가져다 썼다. 이 영화의 프레임은 그렇듯 비현실에 기반을 두었기에 보편적 설득력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지옥 재판이 억지스럽고, 현실세계의 원귀가 지옥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설정도 낯선 이유다. 그렇다면 '신과 함께'가 다양한 관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영화의 주요 틀인 사후세계의 심판을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면 그것이 보인다.

죽은 사람 즉 주인공의 삶과 가족애가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지배한다는 것, 사후 심판과 저승길 그리고 지옥도(地獄圖)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비추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며 창이라는 것, 그래서 그런 관점에 사로잡힌 일부 관객들은 목하 영화의 곳곳에 설치된 '신파'의 덫들, 즉 눈물샘을 자극하는 정량적 장치들에 치를 떨며 비난하는 리뷰들을 쏟아내고 있다.

주인공은 생전에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소방관이었고, 그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살신성인의 태도는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한 궤적은 그를 의인으로 저승길에 오르게 하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의 모든 선행은 그의 입장에서 직업의식이나 홍익인간 정신의 발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희생일 따름이었다.

그는 소방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힘들고 궂은 온갖 아르바이트에 여가시간 제로의 삶을 살았다. 그것은 소방관이 되기 전 그가 저지를 뻔 했던 그릇된 결행에 대해 스스로 내린 형벌이자 속죄의 방법이었다. 농아인 어머니는 지병으로 혼수상태였고, 법관을 꿈꾸는 동생과 자신은 삶에 맞설 기력이 소진된 청소년이었다.

그의 절망감은 가족의 집단 자살이라는 현실도피로 전이되었다.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행하려 했던 존속살해와 자살은 동생의 방해로 실패했고,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간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죄책감 때문에 죽을 순간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가 수많은 생명들을 구했지만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서 한 행위였을 뿐이라고 치부하고, 부모를 죽이려했던 죄인이므로 결코 의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배경이다. 러닝타임 내내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진 주인공의 특별한 슬픈 사연들은 관객들의 감정을 뒤흔든다.

'신과 함께'가 이렇게 극적 몰입보다는 감정이입에 매달린 탓에 한국형 '신파'라는 분류는 매우 당연해 보인다. 이 영화의 역대급 관객물이가 흥행공학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신파이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거나 "눈물이 아깝다"는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신과 함께'는 무너진 도덕성과 반인륜적인 세태를 반영한다. '죄에 대한 심판은 이승과 저승이 다르지 않다'는 게 주제다.

인과응보가 악(惡)을 위한 대원칙이어서는 안 될 일이고, 영화의 메시지인 권선징악이 무리한 징악에 경도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카메라의 앵글이 살벌한 살육의 장, 혹은 끝없는 시간과 싸우는 시지프스만을 비춘다면 과연 그런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만약, 관객들이 의로운 사람 자홍(주인공)이 영화의 초입에서 죽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가 생전에 N포 세대와 똑같은 슬픈 사연을 이고지고 살지 않았다면, 그의 유일한 듯한 죄가 어머니의 진정한 용기에 의해 지옥에서 사면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영화의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홍의 특별한 삶이 전혀 실존적이지 못하고 그래서 보편적인 삶을 사는 불특정 다수가 실존적이지 못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의사회 구현을 바라는 사람들이 이승에도 공평무사한 저승의 심판관들이 존재하기를 꿈꾸고, '신과 함께'가 도덕성 회복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생겼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신파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우리는 저승을 체험해 보지 못한 산 사람들이고, 간접 지식을 통해 저승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영화 속 저승은 믿기 어려우며, 영화 속 심판과 형벌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이 영화는 의인에게조차 혹독한 저승을 장치했으며, 가혹한 형벌이 집행되는 지옥경을 비췄다.

그러나 '신과 함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이승에서 무심코 짓는 죄들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고, 다른 이에게 큰 상처를 주는 죄들을 무수히 짓고 있다는 점이라면, 그런 장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성공을 구가한 격이다.

이승에서는 피한 형벌이라도 저승에서는 반드시 받는다는 것을 관객들은 차오르는 눈물샘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눈물샘은 각 지옥 심판관들이 공명정대하지만 매우 인간적이며 상식선을 좇았기에 더 많이 열렸다.

심판관들이 결과에 시선을 고정하고 기계적으로 유무죄를 판단하며 어떠한 소명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건조하게 죽은 자의 운명을 결정하였다면, 그것이 옳다 하더라도 남는 것은 판결을 향한 것이든 죄인을 향한 것이든 관객들의 분노밖에 더 사겠는가.

공동선도 균형 잡힌 감정의 산물

감정은 이성에 앞선다.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가 스스로 그 일원이 되기 위해 그것을 통제하여 이성을 앞세우려 할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이성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선(共同善)조차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좋은 세상의 지표가 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이성은 감정과 서로 다르지 않다. 이성이란 객관화된 균형 잡힌 감정이다. 영화 제작자는 흥행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고, 감독은 영화의 인물과 사건·구조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하려 한다. 관객들의 감정을 사로잡지 못하고서 달성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보편적 우리는 주인공에 비해 썩 착하게 살지 않았다. 그런 그의 죽음부터가 슬픈데, 그에 대한 심판이 또 슬프다. 자신 보다 훨씬 더 의롭게 살다 간 사람에 대한 논고가 관객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는 이유다.

'신과 함께'는 잘 쌓아 올려진 '신파'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부족한 개연성을 상쇄할 만큼의 감동을 안겨준다. 어쩌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은 그야말로 '신파'를 만나기 위해 '신과 함께' 앞에 모여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도리를 다하지 못한 참회의 눈물이며, 삶의 고통에서 배어나오는 눈물이기에, 마지막에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환생'은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