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하지만 피해자 보호와 피해회복, 재발방지, 근원적인 문제 척결 등 후속조치들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남성 일방적 성폭력에 대한 공조직의 대응력 미진은 공조직 스스로 남성 중심적 사고와 제도에 지배되고 있다는 걸 자인하고, 그 종적 구조의 폭력 사슬에 여성이 피할 여지없이 노출되어 있다는 걸 방증한다.

한 여 검사가 검찰 내부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보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열풍이 불었고, 피해자의 용기에 대한 치하와 상처를 어루만지는 격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후폭풍은 부정적인 면에서도 거셌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 검사가 성추행 사건을 인사청탁에 이용하려 했다거나, 그녀의 의혹제기가 정계진출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거나 하는 허위 소문이 검찰 안팎에서 유포됐다. 피해자에게 성추행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는 식의 모욕성 발언도 잇따라 나왔다.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검찰에 특단의 조치와 수사를 요청했지만 발 없는 유언비어는 걷잡을 수 없게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의 전격적인 진실규명만이 이 역작용의 불길을 조기에 진화할 유일한 수단이 된 지점이다.

8년 전, 법무부 검찰 간부의 여 검사에 대한 성추행은 대담했다. 장소가 장례식장이었다. 불특정 다수가 모였고 검사들도 많았으며 법무부장관까지 바로 옆 자리에 동석했다. 그는 여 검사의 허리를 감싸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 시간 동안 자행했다.

검찰간부의 손은 많은 것을 가리킨다. 그 가장 앞쪽에 성적 경계를 침범하는 검사동일체의 역작용이 있다. 선배가 후배의 엉덩이를 더듬는 것 정도는 용인될 것이라는 인식이 드러나고, 그릇된 여성관을 드러낸다.

그의 손은 나아가, 옆에 앉아있는 검찰총장 조차도 검사의 권력이 공적인 영역을 벗어나 사적인 영역에서 행사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동의하리라는 그의 믿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와 검찰의 범죄를 변별하는 기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검찰의 권력은 남성 선배 검사가 여성 후배 검사에게 성폭력을 휘둘러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시사하고, 동시에 정치·경제 권력을 대하는 검찰의 관점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걸 시사하고 있다.

검찰조직은 실제로 그가 가리키는 손끝에 있었다. 문제가 제기된 이후 피해 여 검사는 느닷없이 사무감사를 받았다. 그 결과 검찰총장 경고를 받았고 먼 곳으로 유배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무감사 자체가 부적절하고, 사무감사 지적도 그로 인한 인사발령도 모두 부당하다고 논박한다.

피해자는 ‘나 하나 잘못하면 100여명의 여검사들 전체를 욕먹게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언행을 삼가야 했다. 그는 임관 직후부터 남성검사들의 여성검사들에 대한 성폭력과 성차별이 만연한 검찰조직 문화에 노출됐다. 특정 신체 부위를 비난하거나 "여자는 웃음이 헤프면 안 된다"거나 노래방 도우미 취급을 한다거나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 준다"며 치근대거나 하는 백태(百態)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검찰 간부에게 피해를 당하던 그날도 주위의 눈을 의식하는 건 오히려 여 검사의 몫일 뿐이었다. 몸을 피하면서 손을 피하려고 노력 할 뿐 그 자리에서 대놓고 항의도 하지 못했다. 긴 세월을 망설였다. 그러나 가해자의 사과나 진상규명이나 피해회복은 커녕 갈수록 극심해지는 냉대기류 속에서 한직만 전전해 온 그는 켜켜이 두터워지는 얼음장 아래 눌렸다.

그는 지금 사력을 다해 얼음장을 깨고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사건 초기에 '검찰조직의 명예 실추'를 중시하고 '본인만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며 호통 치며 사건을 무마한 검찰 간부를 상기시켰다.

검찰 내부에서부터 되레 피해자를 음해하는 검사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가) 얼마 전 인사 때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해 불만을 품고 글을 올렸다"는 비아냥이 나오고, 법무부도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고백했는데 피해자의 폭로 직후 내놓은 공식 반응이 '당사자가 인사불이익을 받은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본질 왜곡이었다.

'아무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사라는 사실을 잊은 채 검찰 내부의 힘없고 작은 부품인 존재'였던 피해자는 최근 검사로 돌아왔다. 겨우 뚫고 나온 빙판 아래로 우겨넣어져 동사할 것을 각오한 결단이다. 폐쇄적인 검찰조직 내부, 특히 남성검사들의 '피해자 때리기'의 기류를 극복하고 참된 '검사'로 돌아올 이들은 이대로 없을 것인가.

검찰조직의 명예를 위해 내부의 성폭력 피해를 덮는다는 것은 개인간의 문제를 검찰조직 전체가 틀어막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은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매도를 초래한 것이다. 조직에는 변태적인 괴물이나 정신질환자가 있을 수 있다.

건강한 조직을 위해 그 문제적 인간을 솎아내면 그만이다. 그런 노력을 기울일 때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괴물을 감싸고 괴물에게 피해를 입은 쪽에 침묵과 피해 감수를 강요한다면 유해한 종(種)을 양성해 조직의 괴사 점증을 낳게 된다.

그런데도 검찰조직의 경직성과 폐쇄성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검찰이 남성중심적 사고와 그 체계 안에서의 적자생존 질서를 신봉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퇴행의 기제이며 불신을 부르는 태도다.

메스를 부르는 공조직

검찰 뿐만 아니라 폐쇄적인 공조직은 그런 부적절한 조직문화가 뿌리내리기에 가장 적합한 토양이다. 익산시도 성차별과 성희롱 문제에 대한 관리와 대응력 수준을 평가받을 시험대에 올라있다. 2016년 초에 남성 과장 A씨가 각 부서를 옮겨다니며 지속적으로 여직원들을 성희롱했다는 조직 내 고발에 따른 중징계 결정이 있었고, 그 결과에 불복하며 A씨가 제기한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13일 A씨가 낸 '해임처분취소' 청구원인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익산시가 A씨를 즉각 형사고발하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전북도에 중징계 의결만을 요구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려했던 초기 대응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다.

정헌율 시장체제로 바뀐 익산시는 이 사건이 익산시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예외규정을 적용해 통상의 변호사 선임비용을 초과하는 대형법무법인을 선임했다. 승리 의지의 진정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피해자 보호와 피해회복, 재발방지, 근원적인 문제 척결 등 후속조치들이 능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남성 일방적 성폭력에 대한 공조직의 대응력 미진은 공조직 스스로 남성 중심적 사고와 제도에 지배되고 있다는 걸 자인하고, 그 종적 구조의 폭력 사슬에 여성이 피할 여지없이 노출되어 있다는 걸 방증한다.

검찰이든 지방자치단체든 그와 같이 내부의 폭력이 방임되고 있다는 건 가해자가 초법적 지위를 누리며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들의 폭력이 언제든지 행사될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까닭이다.

사법조직이든 행정조직이든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제는 개혁의 칼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