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왕정체제 아래서 지방관료를 평가하는 성과지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구 추이'였다. 인구가 현격히 감소한 지역의 지방관은 파직을 면치 못했다. 인구는 세금의 원천이었으니, 그 감소는 지방관의 실정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바로미터였다.

인구는 지방관의 역량 뿐 아니라, 인격의 등위까지 결정했다. 지방관의 덕성도 민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는 곧 지방관의 부덕이라는 등식이 황금률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방관이 증산운동 못지 않게 인심좋은 고을, 협동하는 고을, 살맛나는 고을, 자랑스러운 고을을 만들고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못했던 이유다.

인구 문제라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인구를 유인하고 보전하며 늘리는 일이 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방법은 많이 바뀌었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상시적으로 하는 일이란, 도시기반시설을 확장하고 산업기반시설을 확충하며 문화기반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

예와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내용을 도외시하고 외형에 치우쳤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는 늘어난 외형을 감당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도심이 하나씩 개발될 때마다 구도심 지대가 확장되고, 구도심의 공동화는 심화일로에 놓이게 됐다.

막대한 혈세를 삼킨 산업단지는 오랫동안 잡초 우거진 황량한 벌판이 되어 시민들의 가슴을 허허롭게 하는 가운데, 조급해진 자치단체는 실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 퇴출된 또는 도태의 기로에 선 환경유해 시설들을 감지덕지 유치하는 실정이다.

익산의 문화재단은 1개 과 규모에 해당한다. 문화산업국에서 할 수 없는 문화 혁신과 창달이 설립 취지이지만, 정책수립이나 문화관광상품 개발, 지역문화 향유, 시정 정책 연구 등의 기능은 거의 없고, 국가, 도, 시에서 위탁한 사업이나 각종 문화행사를 도맡아 하는 잡업 조직으로 전락했다.

그 밖에 익산 문화재단의 업무들을 따져보면, 문화산업국의 업무를 이관받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적으로 익산 문화재단은 익산시 문화관광과 산하 조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민간조직이 공조직의 업무를 대행하는 이런 형태는 편법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업무가 일정하게 분장되기 어렵고, 갑·을의 층위가 형성되어 종적인 관계가 야기하는 각종 부작용이 유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막대한 예산을 소비하는 문화재단은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는 형편이고, 창의적인 전문조직으로 뿌리내릴 틈을 갖지 못한다.

한마디로 익산시는 고급 문화인력들을 용역업체 직원들을 부리듯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기반시설, 특히 문화기반시설 가운데 문화재단의 현실을 집중하여 말하게 되는 이유는 갈수록 내용을 상실해 가는 도시의 현주소가 문화재단의 침몰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신도심 조성은 토목사업에 불과했다. 건물을 새로 지어 인구를 집중시키고 편리한 소비 공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거기엔 수요에 부응하는 소프트웨어가 빠져있었다. 이를테면 실버타운이라든지 신혼부부타운이라든지 예술인타운이라든지 하는 영역별 맞춤형 정주환경은 없었다.

지역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군(群)에 최적화 된 공간은 전국적인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다. 1시간 생활권내에 들어있는 수도권 인구들의 유입도 촉진 할 만한 매력을 익산이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운 조성비용이 신도시 개발비용보다 더 많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집적화는 수요를 창출한다. 실버타운에는 각종 병원이 필요한데 고령인구가 집단화 된다면 병원들의 입점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복지시설이나 요양·휴양시설을 비롯한 고령인구에 맞는 정주환경을 특화해 수도권은 물론 전국의 노인들을 유인할 수 있다.

이 밖에 각 부류별 타운도 조건이나 필요를 충족한다면, 익산이 신혼부부나 예술인들이 살기 좋은 도시로 부상하고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산업단지도 그와 궤를 같이 한다. 터닦기와 상하수도 및 전기 공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게임산업단지라든지 1인벤처산업단지라든지 농생명산업단지라든지 같은 여건과 트렌드에 맞추는 공간구획은 없었다.

무엇보다 산업단지에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유치해야 하고, 꿈을 좇는 기업인들이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춰야 한다. 농생명산업단지의 경우는 혁신도시와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연계해 성과를 공유하는 측면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려 해 볼 만한 설정이다.

이렇게 기본에만 충실해도 가능성이 높은 특화된 공간을 창출할 수 있고, 그 기반으로 사람과 기업을 유인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니며 유치 활동을 해도 기성기업 유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선 사양산업의 입주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촌극을 피할 수 없지만, 창업자들은 자발적으로 찾아 온다.

각 산업의 요구를 충족하는 지원시설과 연구, 정보, 지원시스템을 집적화 하면 된다. 익산제3일반산업단지에 '기회'의 가치만 뚜렷하게 배분되었어도, 산단 조성 이후 5년 동안 미분양에 따른 막대한 재정 손실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화기반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익산문화재단의 책임도 크다. 문화재단의 존립이유는 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함께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인데, 그 기본을 세울 기회를 갖지 못하면서 인심좋은 고을, 협동하는 고을, 살맛나는 고을, 자랑스러운 고을을 피우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기반시설의 방향성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공유와 나눔, 협동이 생동하는 공동체의 가치가 발붙일 공간이 없다는 것, 도시의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의 관심을 끌만한 것이 없다는 것, 풍요와 행복과 자긍심을 높여야 할 도시기반시설들이 오히려 결핍과 불만 그리고 자괴감을 낳고 있다는 것, 그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없는 곳에는 오직 '기만'이 판을 친다.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나 '30만 인구'를 시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설정하고, 그 붕괴를 막는답시고 초법적 임시방편으로 시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익산시의 인구정책이라는 게 전입신청서를 돈을 주고 사거나, 위장전입을 독려하고 부추기는 정도다.

실효적일 리 만무하다. 인구 추이는 증감 롤러코스터를 타지만 붕괴된 30만선을 가리는 위장술일 뿐이다. 지난 1월 한 달 새 1,041명의 인구가 감소한 것은 그 단적인 방증이다. 인구 문제는 이렇게 표피적 처방으로는 부작용만 낳게 되어 있다.

기술은 눈부신 발달을 이루었건만 인구정책은 왜 이렇게 퇴행했을까. 위정자들이 실패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숫자를 유지하기 위한 인구정책이 아닌, 중장기적인 '도시의 가치 높이기'가 절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