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편향적 사고의 기저에는 팩트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그것은 불완전한 정체성에서 기인하며 그 존재 방식은 편을 가르고 갈등을 조장하며 과격하게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목적에 동조하기를 강요하고 오직 세불리기에만 골몰한다.

거기에는 '내편의 잘못은 모두 용인하는 것'이라는 불문율이 있고, 상대편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 모순적인 논리의 오류를 방어하는 심리가 있다. 이러한 집단은 승승장구 할 때는 전리품들을 취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패배하고 나면 내면 속에 극단적인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지니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요즘은 '확증편향'이나 '인지부조화' 같은 아주 딱딱한 전문 용어들에 자꾸만 눈이 간다. 일부 언론과 보수세력 쪽이 흡사 사이비종교의 광신도집단 같은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나 정의로운 가치에 기초하지 않은 그들의 왜곡된 신념과 맹목적인 추종에는 제동 장치가 없다.

최근 한 변호사와 현직 검사가 잇따라 세상을 떴다. 주검 현장은 그들의 자살을 추정케 한다. 그들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은폐하려는 국정원의 주구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죽음은 당장 스스로의 인지편향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고, 국정원과 박근혜에 엮여있는 세력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확증편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먼저 죽음을 선택한 두 사람을 보면,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 자기와 주변의 관계, 자기의 죄와 벌의 문제 등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도피했다. 남겨지는 관계들을 가벼이 여기며 등을 돌렸다. 그들이 피하고 외면한 삶은 박제화 되었다.

생명의 유대를 끊고, 차가우며 어두운 침묵의 아가리 속으로 스러진 그들에게 그것은 어떤 가치였을까.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사회적 책무와 오고 가는 생명이 본질적으로 품게 되는 질문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몰이해만을 남겼을 뿐이다.

지난달 30일 국정원의 대선개입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국정원 소속 변호사 J씨가 자신의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2013년 검찰의 댓글 수사 등에 대응하기 위해 국정원이 꾸린 '현안 태스크포스(TF)' 의 일원이었다.

TF는 국정원 간부들과 국정원 감찰실장이던 장호중 검사장 등 파견 검사들이 주축을 이뤘는데, 그는 파견 검사로 근무하던 B검사(팀장)의 지휘를 받는 팀의 실무담당자였다. 그는 앞서 일주일 전에 당시 국정원이 댓글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었다.

검찰의 추가 조사를 앞두고 연락 두절이던 그는 국정원에도 출근하지 않다가 이날 소주 2병과 번개탄 재를 차 안에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검찰 내에서는, 그가 자신으로 인해 B검사 등이 형사처벌 받을 상황에 몰리자 부담을 느낀 것 같다는 추측이 흘러나온다.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그의 죽음이 그가 속했던 집단에 의해 '희생'으로 미화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가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것은 혹여 사후를 예상했기 때문은 아닐까. 기왕에 자신의 죽음이 '순교'이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모호한 주검이 일주일 뒤에 또 하나 발견됐다. 이번에는 빌딩의 4층에서 투신했다. 서울 고검 검사 B씨다. 국정원에 파견근무 중이던 2013년 댓글 수사 대응 TF에서 J변호사를 지휘했던 팀장이다.

그는 당시 검찰의 국정원 압수수색에 대비해 '위장 사무실'을 꾸미고 직원들의 거짓 증언·진술을 도운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지난 3일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 역시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다만, 그는 투신 이틀 전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이 나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봤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구속영장의 내용 가운데 무엇이 그를 격분케 했을까. 공무집행방해·위증교사 등의 혐의는 사실관계를 소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가 검사였으니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었을 일이다. 죄가 없다면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검찰이 적시한 영장발부 사유 가운데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B 검사가 얼마 전 자살한 국정원 직원 J변호사를 회유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그는 J변호사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자살하기까지 일주일 여 동안 J변호사와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J변호사는 검찰에서 댓글 수사 당시의 국정원 내부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였다. 그런 J변호사가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한다는 얘길 듣고 전화를 걸었다는 B검사였다. '너는 죄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쁜 생각을 할까 봐 위로하는 전화였다고 했다.

"그런 걸 회유로 몰고 가다니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한다. 그런 위로 전화를 수차례 했다는 것이다. 당장에 드는 의문이 있다. 피의자인 B검사는 설마 같은 피의사건의 다른 직접 관계자와 내통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가 처한 입장과 사법 전문지식 수준으로 볼 때, 부하 직원에게 전화한 것은 곧이곧대로 진술한 것을 힐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곤경에 처한 그는 '한 솥밥' '같은 편'을 운위하며 패거리 집단의 상층부가 지닌 전가의 보도 '의리'를 휘두르지 않았을까.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는 J변호사에게 '이것은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추종세력의 존폐가 걸린 문제다'고 올가미를 씌우고, '너라고 무사할 것 같으냐' '공멸이다'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기 전에 진술을 번복하라'고 압력을 가하지 않았을까.

J변호사의 죽음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다 보면 그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또, B검사가 J변호사를 몰아붙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가정해야만 B검사의 자살도 이해가 된다. 도대체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죽음의 문턱에 몰려야 할 다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그들의 죄

적폐세력과 특정 정치세력은 두 죽음을 들어 '정치보복 수사' '사람 잡는 개혁'을 운운한다.

일부 언론은 수사팀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이전 정권에서 불이익을 당한 당사자들이라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식으로 수사팀을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권력의 충견'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죽은 두 사람은 가짜 사무실과 가짜 서류로 동료 검사들을 속였다.

법률가로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사법방해 행위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지난 7일 '죽음의 굿판'을 운운하며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사퇴를 주장했다. 그들은 그렇게, J와 B가 얼마나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지를 웅변한다.

편향적 사고의 기저에는 팩트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그것은 불완전한 정체성에서 기인하며 그 존재 방식은 편을 가르고 갈등을 조장하며 과격하게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목적에 동조하기를 강요하고 오직 세불리기에만 골몰한다.

거기에는 '내편의 잘못은 모두 용인하는 것'이라는 불문율이 있고, 상대편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 모순적인 논리의 오류를 방어하는 심리가 있다. 이러한 집단은 승승장구 할 때는 전리품들을 취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패배하고 나면 내면 속에 극단적인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지니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집단에 누가 제발로 들어가겠는가. 어떤 동기에 의해 거기에 동조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은 J와 B는 자기가 지은 죄가 무겁거나 두렵거나 자존심이 손상되어서가 아니라, 어쩌다가 자기가 속한 집단의 편향적 사고에 떠밀려 자결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들 둘은 죄를 지은 것은 기억하지만, 그런 죄를 자기가 속한 조직 혹은 집단을 위해 저질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죄를 저질러야만 했던 이유를 말하는 걸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인지부조화가 뒤늦은 회환의 쓰나미를 만나 고립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엄밀히 말해 타살 되었다. 흉기는 집단 광기다. 저들 집단은 두 젊은이의 죽음을 어떻게든 극단적으로 확대 재생산해서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데 악용할 것이다.

아아, 이것이 참으로 비극인 것은 저들의 확증편향은 부회한 남탓에 빠져 자기의 문제를 끝내 알지 못하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