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아래를 향해서는 최대한 힘을 빼는 이지영 부시장이었지만, 위의 단 한 사람에게는 충언으로 일관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정 시장의 태도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용인술(容認術)은, 인사발령 초입에서 불거져나온 "다루기 쉬운 여자를 허수아비로 삼기 위해 선택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불식시켰다.

동시에 정헌율 시장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사람을 기용했다는 점에서, 장(長)의 최대 덕목인 용인술(用人術)이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헌율과 이지영은 스타일이 아주 다르다는 점에서 부시장 자리를 놓고 정 시장이 어떤 고뇌를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6년 7월 5일 익산시에 한 선물이 도착했다. 가서는 안 될 길, 갈 수 없는 길이 눈 앞에 뻔한데도 길길이 날뛰며 박차질하는 서슬에 가죽이 터지고 근육이 파열돼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익산시 공직사회였다. 자기 제어가 안 되는 수컷의 난동이 남긴 폐허 속으로 한 여성이 걸어들어 왔다.

정헌율 시장이 그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민선 6기 재선거에서 당선된 그가 새 체제의 부단체장을 여성으로 선택한 것이, 익산시 공직사회의 내상을 치유하고 새 살을 돋게 할 목적이었는지, 그리하여 새로운 목표를 향해 매진하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정 시장이 밝힌 바 없다.

이지영 부시장이 부임했을 때, 지방자치 실시 이래 도내 최초 여성 부단체장을 맞이하는 익산시청 안팎은 우려의 목소리가 주류를 이뤘다. 내부 살림을 도맡아 할 역량이 있을지, 과연 조직 장악력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팽배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런 우려들은 사실로 확인되는 듯 했다. 그의 의사결정은 주체적이지 못해 보였고, 어떤 주장이든 내용이 없어 보였다. 정 시장이 그녀를 왜 부시장으로 선택했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그저 아줌마 같고 할머니 같은 그녀의 언행을 두고는 익산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자기를 비추는 언론의 조명 앞에서조차 손자 예찬에 거리낌이 없고, 여성이었기에 차별 받았던 유년 시절을 담담하게 회고하기도 했다. 공직의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나 돌아가 편히 쉴 곳이 있고,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구박하는 관습의 무게를 딛고 찬란하게 일어선 자부심의 발로였다.

그럴 만하다. 그가 오늘 부이사관으로서 공직을 갈무리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경쟁에서 승리한 토대와 남성우월주의를 관통해 온 불굴의 의지가 있다. 그렇다고 공직사회의 남성 편중 현상이 완화된 것은 아니다. 지방 공직사회의 여성 진입률은 급증했지만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여전히 기적같은 일이다.

이지영 부시장은 그런 여성 공무원들의 희망이자, 동시에 남성들에게는 질시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녀의 부임 소식 직후 급속히 확산됐던 걱정은 거기에서 비롯됐다. 그녀의 능력을 아직 모르는 마당에서는 그녀가 여성 공무원들의 대약진을 주도할 견인차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배제하기도 어려웠다.

이지영 부시장의 등장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공직사회에 달갑지 않은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막연한 위기의식을 촉발하는 기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38년 동안 공직사회에서 획득한 모든 무기를 모두 내려놓았다. 무장을 해제한 그는 무기력해 보일 정도였다.

무기가 없으니 스킬도 없어 보이는 못난이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유효했다. 상급자의 갑질이 일반화 된 공직사회 내부의 2인자, 그 무골호인(無骨好人) 앞에서 모든 공무원들은 경계를 풀었다. 지휘계통의 소통이 원활해지고 일사분란한 조직이 되었다.

그는 여성 특유의 관계설정으로 내부갈등을 최소화 하면서도, 몸에 밴 성실과 열정으로 늘 현장을 가까이하며 현장의 목적에 최대한 부응했다. 그의 솔선수범은 지시가 실행되는지를 점검하는 방법이었을 뿐 아니라 현장 공무원들의 노고를 어루만지고 독려하는 접근법이었다.

그런 섬세한 업무처리는 AI(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을 강타할 때 익산시를 막바지까지 AI 청정지역으로 사수하면서 빛을 발했다. AI의 원천차단 전략이 특정 기업의 해이한 방역의식 때문에 최후에 어이없게 무너지기는 했지만, 그가 보여준 공격적 방역 전술은 중앙 정부가 방역 모델로 채택해 일선 자치단체에 전파할 정도로 완벽했다.

그것은 이지영 부시장이 AI가 창궐하는 동안 귀가를 잊고 불철주야 현장을 누빈 결과다. 익산시는 과거 수 차례의 AI 파동을 겪었지만, 그 선제적 대응에 이지영 부시장처럼 피땀을 흘린 간부는 일찍이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지닌 여성성에서 비롯했다.

경험이나 추리에 의하지 않고 현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깨닫는 직관성이나, 공감성·따뜻함 같은 그의 태도가 현장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의 여성성은 정헌율 시장과 공무원들 사이의 완충지대이기도 했다. 남성성이 강한 정 시장은 취임 초기에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공무원들을 자주 닦달하곤 했는데, 이 부시장은 그 폐해에 대해 직간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래를 향해서는 최대한 힘을 빼는 이지영 부시장이었지만, 위의 단 한 사람에게는 충언으로 일관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정 시장의 태도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용인술(容認術)은, 인사발령 초입에서 불거져나온 "다루기 쉬운 여자를 허수아비로 삼기 위해 선택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불식시켰다.

동시에 정헌율 시장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사람을 기용했다는 점에서, 장(長)의 최대 덕목인 용인술(用人術)이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정헌율과 이지영은 스타일이 아주 다르다는 점에서 부시장 자리를 놓고 정 시장이 어떤 고뇌를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부시장의 스타일과 달리, 정 시장은 상명하복의 공조직에서 고위직만 섭렵한 전형적인 관료다. 경험을 중시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맺고 끊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이지영 부시장의 입을 빌리면, 정 시장은 대쪽같이 강직한 성품으로 정도(正道)가 아니면 걷지 않고 정론이 아니면 입에 담지조차 않는다.

또 매사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무서울 만큼 냉철하다. 바람직한 관료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스타일의 눈에는 일선 현장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원인, 해결과정, 결과 가운데 원인과 현장을 오가는 과정이 생략된, 정돈된 과정과 결과를 주로 처리해 온 관성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란 그다지 유용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경험에서 비롯하는 자기 주장이 공감을 얻을리 만무하다.

게다가 백해무익한 자존감에 갇힌 채 모든 관계를 자로 잰듯 재단하는 차가움에 사람들이 꼬일리도 없다. 단적으로, 이지영 부시장은 자치단체장으론 겉도는 관료 정헌율을 정치인 정헌율로 부단히 순치시켜 온 대류(對流)였던 것이다.

시정 운영에 있어서도 이 부시장은 정 시장이 보낸 무한 신뢰에 화답했다. 정 시장은 이 부시장이 부임한 직후부터 경제나 민생과 직결된 중요한 현안 몇 가지만 직접 챙기고 기업유치 세일즈에 올인하면서, 대부분 현안사업이나 일상 업무와 관련한 책임과 역할을 이 부시장에게 일임했다.

이 부시장은 모든 민원을 가급적 되는 방향, 전향적인 방향으로 해결하면서, 행정의 관료주의와 권위주의를 괄목할 만큼 타파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남기고 가는 인화의 불씨

이지영 부시장의 힘은 힘을 뺀데서 비롯한다. 바로 난득호도(難得糊塗)의 덕이다. 똑똑해 보이는 것도 어렵지만 바보처럼 보이기도 어려운 일이다. 총명하면서 바보처럼 보이기는 더욱 어렵다. 자신의 빛을 감추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간부들은 기피하고 시장도 난처한 답이 없는 때에 그는 기꺼이 앞으로 나섰다. 왕궁물류단지를 반대하는 소상공인들의 반대가 극렬할 때나, 익산시의 청렴도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 쳤을 때, 인구가 걷잡을 수 없이 줄어들 때, 도시가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을 때 그는 선뜻 앞으로 나서서 뭇매를 맞았다.

당장 해법이 보이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줄 수가 없고, 원론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바보처럼 보일 게 뻔하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누가 보아도 하나마나하고 곤란한 언론브리핑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익산시가 문제를 고민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리라는 믿음을 시민들에게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이지영 부시장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검게 그을린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는 화장도 못하시는 줄 알았다.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언제나 관계를 중시했던, 그리고 익산시청 내에 디쉬가든을 만들어 시민들과 더불어 행복한 공간을 공유하고자 했던, 그가 이 달 말 공직을 떠난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지속가능한 열망을 남기고 간다. 희생정신과 인화의 불씨다. 남은 자들이 지켜가야 할 불씨다. "가족처럼 든든한 익산, 가족처럼 힘이 돼주는 시정을 펼쳐나가는데 보탬이 되겠다"던 그의 취임 일성이 사그라들지 않고 내내 토닥토닥 타다가 후임자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가 밝혔듯이, 자신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그의 생활 신조는 인생 2막 역시 찬란한 무대를 연출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은 그이고,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그이기에 석별의 안타까움은 더 깊어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