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존중하는 기본을 갖추고, 균형을 잡고, 국민을 섬길 준비가 되지 않은 정부가 아무리 행복한 내일을 기약한들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겠는가. 환부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도려내야 한다. 미적거리다간 집도의 때를 놓치기 쉽고, 때를 놓친 뒤의 집도는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의 면역력 증강 3대 요소는 인권, 정의, 청렴이다.

인권은 상호 존중의 소산이고, 상호 존중은 협력의 가치이며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갈 동력이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국민 대통합의 핵심 키워드다.

정의는 시스템의 소산이고, 시스템은 형평의 가치이며 불안과 불만족 그리고 불평등이 없는 내일을 열어가는 조건이다. 그것은 문재인이 약속했던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초석이다.

청렴은 양심의 소산이고, 양심은 도덕의 가치이며 섬김과 희생 그리고 헌신이 일반화 된 널리 이로운 내일을 열어가는 단서다. 19대 정부가 빼든 개혁의 칼과 권위주의 청산 행보의 방향성이다. 그 실현을 위해 더이상 인위적일 필요가 없는 그곳이 우리가 도착할 내일이다.

그런데 19대 정부 내부는 여전히 반민주 프레임에 갇혀있다. 지난 2일 인권문제를 다루는 유엔(UN) 고문방지위원회 심의에서 법무부는 백남기 농민 죽음과 관련해 집회의 폭력성 문제를 집중 부각했다. 비무장 상태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씨에게 계속 물대포를 직사해 혼수상태에 빠뜨린 경찰력 남용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백씨 사망사건 수사가 1년 6개월째 제자리다. 당시 물대포를 조작한 사람이 가해자인데 가해자를 특정하지도 못했다. 법무부는 수사상황에 대한 위원회의 질문을 받고, 백씨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김후균)가 무능력한 것인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뭉개고있는지 밝히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사망 이후에 부검이 실시되지 않아 전문가 의견 등 다른 방법으로 사망 원인과 경위를 분석하고 가해자 등을 확정하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물대포가 사망 원인이란 걸 삼척동자도 아는 사건을 붙들고 장기간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부검을 못한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권력의 폭력성은 힘없는 국민을 희생양 삼아 정당성을 확보한다. 사건은 진행형이고 19대 정부 내부에 엄존한다. 사건 종결 시한을 최대한 앞당기고, 당시 사건을 지휘한 강신명 경찰청장을 비롯한 7명의 살인미수 혐의자들을 어떻게 단죄하느냐는 19대 정부의 인권문제 의식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검찰의 현주소는 어떤가. 지난달 21일 저녁 국정농단 사건 수사 책임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사 대상이었던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수사 종결 직후 휘하 간부들을 거느리고 희희낙락 함께 저녁을 먹어 입길에 올랐다.

검찰은 안 국장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1천여차례 통화한 기록을 특검에서 넘겨받고도 별다른 결론 없이 수사를 끝낸 바 있다. 또, 만찬 나흘 전인 17일에는 우병우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곧바로 불구속 기소해 부실수사 논란을 자초했었다.

그런데 이들의 자축은 만찬에 그치지 않았다. 안 국장은 검찰 수사팀 개개인에게, 이 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 직원들 개개인에게 현금이 백만원에 가깝게 든 금일봉을 각각 건넸다. 어떤 법을 어겼는가를 따지기 전에 상식도 양심도 성찰도 없는 이들의 행태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독점하는 권력이란 이렇게 교만하다. 국민적 공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병우가 누구인가. 박근혜 정부의 실세였다. 박근혜의 분신과도 같았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비위사실을 알고도 진상은폐를 주도하거나 가담했다.

세월호 참사에 당시 해경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수사하는 검찰에 압력을 가해 방해를 시도하고, 그 사실을 국회 청문회에서 부인하면서 위증했다. 정부 고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부당한 좌천인사에 개입하고, 특정회사에 대한 표적수사를 지시하고 불응한 간부 공무원을 고발하도록 강요했다.

우병우는 특히, 자신의 개인비리를 포함한 각종 의혹들을 내사한 특별감찰관의 직무수행을 방해하고, 국회의 증인으로 채택됐는데도 출석하지 않으면서 국민을 경시하는 권력의 표상이 되었다. 이 모든 사실은 이영렬 중앙지검장 휘하의 특별수사팀이 공소장에 기재한 우병우의 범죄 혐의다.

우병우 혹은 그 이전의 김기춘이 사당화한 검찰의 현주소다. 우병우에 적용된 온갖 범죄사실을 밝혀 줄 한 축의 인물이자, 우병우와 공범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과 함께 만찬을 즐기는 검찰이다. 그들의 교만한 귀에는 우병우에 대해 “영장을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던 박영수 특검의 목소리 쯤은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19대 정부의 사정 의지는 어느 정도 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에 박형철 변호사를 임명했다. 그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에서 부팀장을 맡아 수사하다가 좌천성 인사 발령 끝에 검찰을 떠난 검찰내부 사정에 밝은 인물로,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의지와 부합한다는 점이 발탁의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한 정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그는 검찰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이후 반부패비서관이라는 엄중한 자리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행보를 걸었다는 지적 앞에 서 있다. 노조파괴·직장폐쇄로 악명 높은 갑을오토텍 사건을 맡은 뒤 노조간부 형사고소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노조가 직장폐쇄를 중단시켜 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에서도 회사를 대리해 기각 결정을 끌어냈다. 노동계가 청와대의 박 변호사 발탁에 반발하고 나선 이유다. 그러나 박형철은 "오토텍 변론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입장을 표명면서도 "변호사로서 사측에 불법행위를 하지 말도록 조언했다"고 강변해 사퇴요구에 직면했다.

사측의 노조파괴를 대리한 변호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펴보면 그는 입장에 따라 표변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다. 더구나 그의 행위가 노조활동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집약 된다는 점에서 균형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청렴은 신뢰를 구축하는 수단인데, 불신의 도구로 새 세상을 열어가겠다고 하면 웃음거리밖에 더 되겠는가. 내부 평가가 무엇이든지 외부에서 제기된 문제의 진상을 조속히 파악하고,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의 싹수는 노랗게 퇴색하고 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체적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한다면, 내부의 민주주의 적들을 청산하는 일을 선행해야 한다. 지금은 거창한 어젠다들을 쏟아내기 보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정의 정상화는 정부 내부의 건강한 마인드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존중하는 기본을 갖추고, 균형을 잡고, 국민을 섬길 준비가 되지 않은 정부가 아무리 행복한 내일을 기약한들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겠는가. 환부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도려내야 한다. 미적거리다간 집도의 때를 놓치기 쉽고, 때를 놓친 뒤의 집도는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반민주의 복마전에 문재인 정부는 입성했다. 무엇이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