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 고사에서 눈여겨 볼 점은 제갈량에게 마속과 같은 심복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갈량이 쌓아 온 신뢰의 두께에 비례한다. 익산시민들을 참담한 지경에 몰아넣은 장본인들 가운데 마속과 같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바로 이것은 정 시장이 쌓아 온 신뢰도를 가늠할 바로미터다. 정치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정헌율 시장이 취임 1년을 맞았다. 난국을 물려받은 양상이 촉한과 같고, 유비가 죽고 그 뒤를 이은 유선의 처지와 정 시장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지난 1년 동안 정시장의 행태가 북벌에 나서며 유선에게 올린 제갈량의 출사표와 상치되는 점이 많다.

출사표에서는 앞서간 이가 남긴 덕을 빛나게 하여 뜻있는 이들의 의기를 더욱 넓히고 키워야 한다고 했는데, 주로 지시를 하달하기만 했던 고위공직자 출신으로서 정 시장 자신의 뜻만이 옳다는 독선에 고립되어 있지는 않았는지, 그리하여 자신의 의기를 넓히고 키우는데 주력한 나머지 시민들을 위해 고민하며 열과 성을 다하는 이들은 고사시키고 꼭두각시들 만을 양산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익산제3일반산업단지는 도시의 명운을 건 전대의 한판 승부였는데, 그 덕을 빛나게 할 기업유치에 매진했는지, 그 성적표가 너무 초라하지는 않은지도 자성이 필요하다.

지금 익산시에 부채를 갚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보다 급한 일이 없다.

산단 내 기업유치가 마무리 된다면, 인구증대까지는 과한 욕심이라 하더라도 인구유출을 막고 자연감소를 대체하는 효과는 거둘 수 있다. 무엇보다 세수가 증대된다. 지방자치시대, 자치단체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단연코 없다.

익산제3일반산업단지 진입로는 수도권과의 육로 거리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킨다. 물류수송 시간 단축은 지방산업단지의 경쟁력 가운데 핵심 부문이다.

산업단지가 완공된지 3년이 지났고, 당초 2016년 2월에 준공할 계획이었던 산업단지 진입도로 개설공사가 난항에 빠졌다. 60%에도 미치지 못한 공정률은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과 박약한 의지를 드러낸다.

출사표에서는 불확실한 기준이나 필터로 옳은 것들을 걸러버리고 공익에 충실한 간언이 들어오는 길을 막아버리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고 했는데, 미래농정국 신설과 그 사무소의 함열 설치는, 익산시를 농업도시의 메카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정헌율 시장의 의지 표방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본청 조직에서 국단위 기구를 분리시키는데 따른 비효율성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우선 복합민원에 대한 신속한 업무처리가 결여되고, 건물 구입비 등으로 62억원 가량을 낭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소수의 북부권 주민들을 위해 익산시민 다수가 불편을 감수하고, 44억원에 팔았던 건물을 106억원에 다시 사들이면서 특정 학원에 막대한 이익을 공여했다.

이 같은 문제들을 검토한 공무원들이 다음과 같은 간언들을 하지 않았을까.

"신설 미래농정국을 함열에 설치하는 것은, 그 당위성 못지 않게 정헌율 시장이 고향에 치적을 쌓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원성을 살수 있다"고 더 구체적으로 "정 시장 자신의 표밭을 공고하게 할 목적으로 다수 시민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충언하지 않았을까.

또한 그러한 행위는 보편성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사전선거운동으로 비쳐질 소지가 많다고, 특히 특정 학원은 특정 종교단체에 예속되어 있어서 종교단체의 구성원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자치단체의 재정을 축내는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고 간언하지 않았을까.

시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구매행위는 또 사전선거운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익산시 공직사회 내부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을까.

공익적 가치가 높은 간언, 혹은 정치적 폭거로 비쳐질 정도의 편향에 대한 경고를 정 시장은 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 비전을 내세우며 묵살한 것은 아닐까.

의회 조차도 반대했었다. 조직개편안도 공유재산취득 승인안도 부결시켰었다.

그러나 숙고하는 시간을 갖지 않고 전향적인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미래를 담보하는 일을 의회가 가로막는다는 불만을 토로할 뿐이었다.

계속 밀어붙이자 의회는 결국 안건들을 통과시켰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예산편성권을 쥔 시장의 눈치를 봤다는 비판을 불렀다.

또 앞선 민선 6기 반토막짜리 무자격 시장과 끊임없이 충돌해 온 의회가 높은 피로도 때문에 되도록 충돌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동정론도 일었다.

아무튼 정 시장이 보여준 일방통행식은 앞선 무자격 시장의 방식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책임의 무게는 판연히 다르다. 미래농정국은 재선에 도전하는 정 시장의 당락을 결정할 변수가 될 수 있다.

도시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뚜렷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정 시장의 정치적 종언을 알리는 부메랑이 될 것이다.

출사표에서는 공평하고 분명한 다스림을 밝혀야 한다고 했는데, 상벌권을 운용함에 편벽되고 사사로움은 없었는가. 정 시장이 취임한 이후 1년 동안 익산시청에선 수많은 사건사고가 터졌다.

그중에서도 폐석산에 막대한 양의 맹독성 발암물질이 묻힌 사건은 전국적인 망신을 샀고, 시민들은 구멍난 환경행정을 목도하며 불안에 떨었다.

또, 대표성 없는 토지사용승낙서를 근거로 특정 업자에게 석산개발권을 주기 위해 국장이 전횡을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관련 부서가 또다시 수사 대상이 됐고, 익산시의 신뢰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을 겪는 정 시장의 태도는 뜻밖이었다.

즉각 특별감사를 지시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어물쩍 넘긴 것이다. 전자는 직무유기가 명백하고, 후자는 최소한 전결규정을 명백하게 위반했는데도 사법처리 결과를 기다린다는 핑계를 대며 눈을 감았다.

신상필벌이 결여된 용병술

신상필벌은 한비자에서 유래한다. 그 뜻은 너무나 단순하다.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죄를 범한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는 것이다. 한비자는 "정당한 보상은 낭비가 아니고 정당한 형벌은 포악이 아니다"고 했다.

그것은 병사들로 하여금 전장에 나아가 기꺼이 싸우게 하는 동력이라고 했다.

장수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용병술인데, 용병술의 근간이 신상필벌이라는 것이다.

결국 신뢰가 병사들을 사지에라도 뛰어들게 하는 힘인 것이다.

필벌을 놓고 의미있는 고사 하나를 들라하면 제갈량의 읍참마속이 제격이 아닐까 한다.

제갈량이 친구 마량의 동생이자 심복인 마속의 목을 울면서 벤 것인데, 전장에서 소임을 저버리고 임의로 다른 전략을 구사하다가 병사들을 사지에 몰아넣어 참패한 마속의 책임을 물은 고사다.

다시 얻기 어려운 장수이니 살려놓아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제갈량은 사사로운 정을 포기하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엄격한 군율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런데 이 일벌백계의 과정엔 우리가 간과하지 못하는 마속의 신의가 있다.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올린 마속의 글에 그 마음이 여실히 담겨있다.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대하였습니다. '곤'을 죽이고 '우'를 흥하게 한 뜻을 깊이 생각하시어 평생의 사귐이 이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시면 저는 비록 죽지만 황천에서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곤’은 요(堯)임금의 신하로 치수에 실패하여 사형을 당한 사람이고, '우'는 곤의 아들로 치수에 성공한 사람이다. 요임금의 명을 받고 '곤'은 나라를 홍수에서 건져내기 위해 9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했지만 물길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고, 요임금은 그 책임을 물어 '곤'을 처형했다.

요임금의 양위로 제위에 오른 순임금은 곤의 아들 '우'에게 치수를 맡겼다. 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물길을 막는 방법이 아닌 물길을 내서 물이 빠지게 하는 방법을 써서 작은 시내는 큰 강으로 흘러들게 하고, 강물은 바다로 빠지게 만들었다. 이렇게 13년의 노력 끝에 '우'는 마침내 홍수를 다스리게 되었고, 후에 순임금의 양위로 제위에 올라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를 세웠다.

이 고사에서 눈여겨 볼 점은 제갈량에게 마속과 같은 심복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갈량이 쌓아 온 신뢰의 두께에 비례한다. 익산시민들을 참담한 지경에 몰아넣은 장본인들 가운데 마속과 같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바로 이것은 정 시장이 쌓아 온 신뢰도를 가늠할 바로미터다. 정치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 시장에게는 그 밑천이 없는 거다. 믿음을 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숙고해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