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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정헌율 시장의 통솔부재는 의도된 것인가 무능인가

편집국장 공인배

행정전문가로서 정헌율 시장의 경쟁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 시장은 또, 사후에 D석산 채석허가 사실을 인지하고 특별 감사를 지시했지만, 두 달여가 지나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경찰의 수사를 핑계 삼고 있지만, 공직기강을 바로잡는데 사법기관의 힘을 빌리는 게 행정전문가다운 것인가.

익산시 환경행정의 취약성이 고구마 덩굴처럼 자꾸만 드러난다. 낭산 소재 폐석산에 일급 발암물질이 함유된 광재가 웬만한 야산 하나만큼 묻힐 때까지 방치한 사건이 터졌는데, 함라 장점마을에서는 눈에 띄게 암환자가 발생했다.

역학조사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 무엇도 속단할 수 없지만, 장점마을 주민들은 인근 A 비료공장을 직접적인 오염원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A 비료공장은 굴뚝에 밸브를 설치해 낮에는 닫고 밤에는 열어 매연을 배출하다가 적발됐고, 시설의 공정과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폐기물 수백 톤을 공장 내부에 쌓아놓고 있다가 적발됐다.

이에 앞서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해 악취를 배출하고, 유해성 폐수를 방류했으며, 폐기물을 허술하게 야적하다가 적발되어 고발당하거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5개월 사이에 무려 9건이 발생했다.

이들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현장행정 부재'다. 폐기물의 반출 허가 서류만 믿고 실제로 무엇이 반입되는지 알려고 조차 하지 않은 결과가 발암물질 광재의 대량 매립을 낳았고, 업체가 신고한 비료생산 공정 서류만 접수한 채 적법하게 가동되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 결과가 A 비료공장의 탈선을 낳았다.

발암물질 비소는 육안으로 식별이 어렵지만, 폐기물을 다루는 환경직 공무원들이라면 그 정도의 전문성은 갖추고 있어야 맞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악취나 폐수는 지근거리에만 가도 포착할 수 있다. 수년 동안 판을 친 환경파괴범들을 앞에 두고 "그럴 줄은 몰랐다"며 업자들의 부도덕성을 탓하는 것은 오래전에 폐기처분 됐어야 할 탁상행정이다.

특히, A 비료공장 사례는 익산시의 담당 공무원들이 얼마나 수동적이고 피동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공장은 지난 2001년부터 가동되었는데 16년 동안 익산시에 적발된 불법행위가 단 한건도 없었다. 마을에 암환자들이 급증하자 주변 환경을 수상히 여긴 주민들이 지난 9월부터 업체의 불법행위를 익산시에 고발하면 단속한 것이 전부였다.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 때문에 현장에 나갈 때마다 불법행위를 적발한 것이다. 장점마을 주민들 사이의 암 발병원이 A 비료공장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단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동안 보여준 익산시 공무원들의 직무유기가 불신을 낳았고, 마을에 인접한 A 비료공장이 암을 유발하는 오염원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익산시는 당면한 문제를 정면돌파 하는 것 밖에 달리 도리가 없어 보인다. 장점 마을의 암환자들과 연관 된 주변 환경에 대한 역학조사를 반드시 실시해 그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단지, 주민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익산시가 불신을 일소하고 환경행정의 확고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한 문제가 된 것이다.

사실, 환경재앙은 오염원들의 유기적인 관계들로 인한 복합적인 작용에 따른 결과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오래 전부터 폐석산에 묻힌 유해물질들이 지하수로 스며들었는데, 수년전까지 지하수를 마셔 온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식습관이나 유전적 문제로 주민들이 암에 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익산시는 현장과 영 동떨어진 서기(書記) 같은 공무원들이 산 오해 때문에 수레와 함께 진구렁에 빠진 형국이다. 수레 안에는 도시의 명예와 자치단체의 가치가 실려 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해도 빠져나올까 싶다.

공직기강해이·중간관리자의 전횡은

뒷짐 진 행정전문가의 턱밑에서 발호

그런 와중에 전 환경국장 B 씨가 공로연수를 3일 앞두고 석산을 사용할 권리가 없는 주체에게 채석을 사실상 허가해 주는 절차를 밀어붙였다가 경찰에 입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C 종중은 D 석산을 놓고 오랫동안 분쟁에 휩싸였다. 채석업자 S는 당초 '대종중'이 D석산을 대표했던 시기에 대종중으로 부터 토지사용 승낙을 받아 채석권을 취득한 뒤 업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대표성 분쟁은 대법원까지 치달았고 결국 D석산 대표권은 '대종중'에 없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 같은 분쟁과정에서 채석업자 S가 익산시에 제출한, 석산사용 승낙 여부를 결정하는 대종중의 총회 서류가 위조되었다는 사실도 드러나게 되었다. 익산시는 대법원 판결 후 채석업자 S에게 D 석산 채석을 중지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채석업자 S는 대표성이 없는 대종중의 석산 사용승낙서와 위조된 서류를 붙여 채석범위 확장과 기간연장 허가를 신청했다. 익산시는 보완을 요구하며 서류를 반려했다. 그러나 채석업자 S는 골자가 달라진 게 없는 서류를 계속 접수하면서 2년 여 동안 익산시와 신경전을 벌이며 밀어붙였다.

환경직 공무원이었던 O 씨가 환경국장이었을 때까지는 익산시의 결제라인은 '불가'라는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폐석산 발암물질 매립 파동으로 O씨가 대기발령 된 뒤 행정직 공무원 B씨가 환경국장직을 맡게 된 뒤부터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환경국장 B씨는 담당 과장을 불러 채석업자 S와 거리낌 없이 골프회동을 갖는 등 친밀한 관계를 가졌고, 직원들에게 채석 허가를 내주자며 앞장을 서기에 이르렀다. 반대하는 공무원들은 전방위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담당 공무원과 계장이 과장 앞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흐느껴 울 정도였다고 한다.

B국장이 의견을 물을 때마다 담당공무원은 뚜렷하게 채석을 불허해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 것으로 들린다. B국장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위법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계장도 과장도 국장의 부당한 지시에 굽히지 않고 전자서류에 '불가'를 표기했다.

B국장은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시장 비서실의 E비서에게 비서실장 방에서 개최할 회의에 참석하라는 문자 전송을 지시했다. E비서는 B씨의 휘하 직원이 아니지만, E비서가 오래전부터 B씨의 꼬붕이었다는 점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에 '부탁'이 아니라 '지시'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E비서는 계원, 계장에게 전 날 비서실장 방에서 개최할 회의에 참석하라는 문자를 전송했고, 다음날 회의에서는 두 가지 사안이 논의됐는데, 하나는 부도위기에 놓인 F폐석산 복구예치금 인출여부에 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D석산 채석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동석한 비서실장은 F폐석산 문제를 원칙대로 하라는 의견을 냈지만, D석산 채석허가에 관해서는 일절 함구한 채 회의를 지켜보기만 했다. 내용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E비서가 회의소집 내용을 간추려서나마 사전에 보고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B국장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판단대로 따라줄 것을 촉구했고, 이 회의가 끝난 뒤 담당공무원은 "국장님의 의지가 저런데 내가 책임지고 국장님 의중대로 기안하겠다"고 했고, 그 마음을 공감하는 계장도 구슬피 울었다고 전해진다. 비운의 남자들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귄위에 바탕을 둔 위계질서 아래에서 규범과 절차에 따라 조직과 관리를 운영하는 조직체계인 '관료제'야말로 가장 이상에 가까운 조직체계"라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익을 추구하려는 자가 관료조직을 악용한다면 관료제는 가장 이상적인 범죄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이 모든 문제들의 핵심은 정헌율 시장의 '통솔부재'다. 경천동지할 D석산 채석허가 사건은 아래에서 위로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국장은 시장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비서실 회의에서 직원들이 뜻을 꺾었는데 동석했던 비서실장도 시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회의를 소집한 E비서도 사전이든 사후이든 시장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익산시의 지휘계통이 이토록 허술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런 조직체계 내부라면 도덕적 해이가 독버섯처럼 번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D석산의 등기상 대표가 정헌율 시장이 2014년 후보였을 당시 선거캠프의 참모였던 P씨라는데, 그에게 보은하기 위해 시장이 B국장에게 지시했거나, 음모를 알고서도 모른 체 하며 쇼를 벌이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