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보고싶은 것만 봤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과 거기에 놀아난 대통령이 그들에게는 다르게 보였다. 모함받는 억울한 대통령과 그 친구였다. 불순한 세력들이 체제를 전복하고, 그 위에 다른 나라를 세우려 하는데서 비롯했다는 피해의식에 들떴다.

촛불을 숫자로 보았다. 태극기의 숫자로 광장에 나온 촛불을 가릴 수 있다고 믿었다. 헌법재판소도 그 숫자에 눌려 감히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대통령은 그들이 더 많이 결속하도록 시간을 끌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자신은 탄핵 대상이 될 만한 어떤 원인도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은 특검을 부정하고, 헌법재판소의 공정성을 폄훼했다. 특검의 수사 결과나 탄핵 소추단의 공소장이 위법하고 헌재의 재판 운영이 부당하므로 승복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밖으로 나와 한 곳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국민들이며, 대의 기관이 국민들의 뜻을 받든 표결 결과를 두고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여론을 조장해 분란을 일으키고, 마녀사냥식으로 트집을 잡아 목적을 달성하려는 무리들을 타도해야 마땅하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파했다.

헌재의 구성이나 재판 절차, 나아가서는 탄핵사유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그 자의는 편협한 시각을 기준으로 삼으며, 그 시각은 그나마 지엽적인데에 사로잡혀 있는데도, 그것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게 강력한 교시가 되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다수 국민의 반대편에서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이들'을 선동하여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우리가 빠진 함정이고, 앞으로도 벗어나기 어려울 불행이다. 오직 자신의 생존과 자신들의 카르텔 보존을 위한 획책이었다.

국정원의 개입에 힘입어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출범 초기부터 정통성 논란에 휩싸였고, 사실상 검찰의 칼날 앞에 섰던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의 역린은 격정적으로 떨렸고, 수사 지휘라인은 물론 일선 검사들이 공작에 의해 축출당하거나 한직으로 좌천당했다.

이때 탄핵됐어야 했던 대통령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수사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국민이 선택한 결과를 철회해야 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부족했다.

하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이건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이 대선에 영향을 미쳤고, 그 수뇌부가 진두지휘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박근혜의 당선은 부정선거 결과였다. 그렇다면 그 당선은 무효다.

선거 과정에서 그에 대해 어떠한 패널티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야당의 대표가 그 자체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들의 너그러움에 감복하기는 커녕, 언제든지 속일 수 있는 어리석은 대상으로 여기듯 국정원 게이트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조차 하지 않고 버텼다.

본령을 다하다 된서리를 맞은 검사들을 끝내 복원시키지 않고, 맹목적인 추종을 존재이유로 삼는 주변의 왜곡된 신념들을 옹호하는데 급급했다. 정의로운 가치가 설 자리란 애초부터 없었으며, 그 주변은 광신도 집단과 흡사한 양태를 보였다.

김기춘이나 우병우는 그 광기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그 사례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최순실도 그 일단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선호하는 전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주변에 포진시켰던 것이다.

두 번째 비극이었다. 자신의 선입견이나 그릇된 신념, 왜곡된 정보, 과거의 트라우마, 피해의식들이 정책에 스며들고 국정운영에 작동하여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오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문제들을 양산한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정보나, 믿고 싶은 사안들만 선택적으로 취하면서 이에 반하는 정보와 사실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기피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사건들을 지나 온 대통령의 족적들이 그걸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과 접촉하고 섞이면서 새로운 견해를 받아들이거나 오류를 걸러내 자기 신념의 지평을 확장하지 않은 대통령이 오늘 우리 비극의 발단인 것이다. 실수와 과오를 최소화하는 길을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몰랐거나 잃어버렸던 것이다.

모순적 논리를 앞세워 사실을 호도하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갈등을 조장해 편을 가르는 최고의 권력자는 바로 우리가 선택한 결과물이었다. 진영논리의 본질이 우리에게 백해무익한 것이지만, 목전의 이익에 매몰된 편향적 사고는 가장 쉬운 그 결속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았다.

폭탄 게임에 직면하다

우리가 이 국난의 와중에 안고있는 사드(THAAD, 고고도 요격 탄도미사일 방어체계) 문제가 우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비춘다. 사드는 이미 안보문제라기 보다 두 세력을 구분하고, 보수를 결집시키는 도구가 된 듯한 양상이다.

수렁에 빠진 보수가 일대 반전을 노리고 개시한 폭탄 게임이다. 그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사드 폭탄에 불을 붙였다. 이제 곧 이 폭탄은 야권으로 넘어갈 것이다. 야권이 제때에 폭탄을 보수쪽으로 넘기지 못하면 우리는 극단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역학적으로 현 정부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 한 마당에, 야권이 창출할 차기 정부로선 그 폭발의 피해를 고스란이 감당해야 할 구조다. 현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을 호재삼아 사드를 국내에 반입하는 등 미친듯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국민은 용서했지만 반성의 결핍 탓에 감화의 과정도 없었기에, 선의를 조롱하듯 짓밟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대신 끝까지 힘의 논리에 사로잡혀 반전을 꾀할 권한대행을 인선한 탓이다. 홀로 자성할 기회를 맞이해서는 대통령의 퇴진을 바라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뜻을 깔아뭉개며 보수의 결집을 선동했다.

자신이 곧 최상위의 헌법기관이면서, 특검 조사에 불응하고 헌재에 출석하지 않았다. 헌법을 부정하면서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통령은 우리의 깊은 내상이 되었다. 억울하다면서도 사실을 은폐하고, 조사에 응해 진실을 밝히겠다던 약속도 저버렸다.

한낱 개인이었더라도 비난받아 마땅할 짓을 서슴없이 자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국민의 정서와 국회의 행동과는 별개로, 대통령은 이미 스스로 헌법적 지위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10일의 참상이 국민들이 열망한 결과였다니 허망하기 짝이 없는 오늘이다. 그가 살아있는 권력으로서 자신이 쥐고 있는 메가폰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착각한 후유증을 우리는 고스란히 안게 된 것이다. 헌재의 만장일치 결정을 그가 믿을 수 있을까.

스크린을 지배하며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국민들도 봐주길 바랐던, 그리하여 여러 영역의 감독들을 살생부에 올리고 서서히 고사시키던 허무맹랑한 그는, 우리에게 한없는 자괴감을 안겨주고도 모자라 끝내 추한 모습으로 퇴장하며 우리를 참담한 수렁 속으로 떠밀었다.

결국 오늘 우리가 처한 국난은 '검증'과 '선택'에 신중하지 못했던 우리의 책임론에 귀결된다. 그런데 숨돌릴 틈도 없이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새로운 내일은 악순환을 끊어버렸을 때 맞이할 수 있다. 책임지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 그들은 이제 청산의 대상이 되었고, 오류를 범했던 우리는 오늘의 우리에게 화해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