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 영화의 질문은 단순해 보인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이토록 위험한 존재들이었던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최적의 서식환경인가?'다.

억울한 사람은 쓰레기통 같은 걸 걷어찬다. 무기물이 부서지거나 일그러지는 만큼 걷어찬 발의 통증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억울한 사람은 벽에 지도를 그리지만, 이정표가 가리키는 벽의 반대편으로 넘어가려면 기적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그 벽을 짓문지르는 손이란 차라리 기억속에서 지도를 지우고 싶어하는 몸짓이다.

불의한 자들은 사람을 걷어찬다. 차인 몸은 파열되고 해체된다. 걷어찬 발은 튕겨나오며 흥분한다. 온전한 의식을 잡고있지 못하도록 몸을 몰아붙이면서 불의한 자의 혈관에서는 광기가 날뛰는 것이다. 폭력의 지배란 고통을 주고 종국에는 그 고통에 압살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를 심는 방식으로 획득된다.

영화 '재심'의 앵글은 그 두 축을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뚜렷한 내일이 설계되지 않은 사회적 약자와 그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법 집행자가 현실속에 존재한다는 건 설득하기 어려운 주제다. 하지만 그런 사건은 엄존했고, 단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카메라는 가급적 무표정해야 했다.

누명을 쓴 채 10년의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피해자나, 죄를 씌운 대가로 잘 나가는 경찰관들은 각자 주어진 몫을 산다. 피해자는 루저답게 허구헌날 소주병이나 까고, 경찰관들은 만만한 상대를 골라 고문을 일삼는 것을 수사기법으로 굳혔다.

더 잔인한 것은 피해자가 잃어버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군대갔다가 온다고 생각해라" 가해자들이 주입한 레드선의 키다. 피해자가 가혹한 삶에 절망할 때 그 키는 불쑥 떠올라 '이 정도여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자기최면 상태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것이 "너 같은 놈에게는 보호받아야 할 인권도 없다"는 상궤를 벗어난 언어인데도, 그가 살인현장을 지나다 덫에 걸린 시점에 맞닥뜨린 경찰관들의 말을 빌리자면 '다방 양아치'였기에, 병약한 홀어머니와 살면서 학업을 포기하고 막연하게 검정고시를 꿈꾸며 되는대로 사는 인생이었기에, 재수없는 일을 당해도 싸다는 경찰관들의 말을 받아들인 것이다.

주변에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늘진 곳에서 살며, 힘도 없고 의지가 박약한데다 법을 잘 모르면 짓밟혀도 된다는, 또는 짓밟아도 된다는 아수라 법칙의 일반화에 동조하는 것이다. 가해자들이 반대쪽에서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기실, 그 사건은 한 인간에게 한 때의 소나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 활착력을 빼앗았다. 갈수록 말라가며 관계에서 벗어나 고립무원에 떨어졌다.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으며 자포자기한 존재란 스스로 희생양이 필요한 경찰관에게 '척결 대상'이라는 인지편향을 안겨줄 뿐이다.

특히, 공권력을 흉기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된 세상의 중심에는 형언할 수 없는 구멍이 있다. 그것은 사리사욕을 방해하는 인간성이나 정체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들의 자부심이나 자긍심이란 제 멋대로 흉기를 휘두를 수 있다는 오해에 기반한 허영일 뿐이다.

사건 현장을 구성하는 살인 용의자의 동선과 거기에 소요된 시간의 편차가 한 눈에 보이는데도 경찰관들은 그걸 설득력있게 짜맞추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살인도구로 사용됐다는 칼의 크기가 사체에 난 자상과 불일치하고, 칼에 혈흔마저 없는데도 버젓이 증거로 채택됐다.

실인현장을 묘사하는 경찰관의 소설과 거기에 동의하는 용의자의 자백으로 충분했다. 살인사건을 해결한 경찰관들이 특진하는 것과 같이 실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검사 역시 기본없는 조서를 다시 꾸며서 기소하는데 급급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밑바닥 인생에 대한 판사의 확증편향을 노린 암수(暗數)였다. 원심에 이어 항소심 판사가 유죄를 선고했고, 피해자가 국선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감형을 받기 위해 쓴 반성문은 형을 확정시키는 구실이 되었다.

짓밟힌 인권, 위험한 공권력,

수수방관하는 우리들이 치러야 할 대가

'재심'은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불행한 일이다. 조폭의 도시 익산, 쓰레기 도시 익산이라는 오명에 이어 악귀 경찰의 도시로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입소문에는 믿을 수 없는 팩트와 엄존하는 문제에 경악하는 비명이 섞여있다.

이 영화의 질문은 단순해 보인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이토록 위험한 존재들이었던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최적의 서식환경인가?'다. 감독의 시선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그 집행자들의 폭주를 숨죽이고 따라다닌다. 그 끝에서 피해자가 당도하는 멘붕상태를 뇌진탕을 당한 순간의 눈으로, 그러나 미동하지 않는 태도로 바라본다.

진실을 조작한 당사자로선 돌이킬 수 없는 법이다. 파멸의 바다를 등지고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수형 중일 때 진범이 잡혔지만, 경찰관들과 검사는 진범이 자백을 번복하도록 사주한다. 진범이 범행도구를 버렸다는 곳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팀에게도 철수 명령이 내려진다.

진범을 조사했던 군산경찰서 황상만 반장은 약촌오거리 택시살인사건의 진범을 구속하라고 군산검찰청 담당 검사에게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끝내 수사팀은 해체됐고 황반장은 지구대로 좌천됐다가 퇴직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재수사의 기로에서 사법기관은 조직의 보호를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현장을 목격한 재심 증인을 체포·구금해 증언을 방해하고, 변호사가 임시직으로 소속된 법무법인까지 흔들며 사건 포기를 종용한다.

돈 없고 빽없는 벼랑 끝 변호사는 바로 이 거대한 공권력 집단의 조직이기주의와 마주한 것이다. '재심'은 그와 피해자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법원으로부터 결국 재심 결정을 받아내고 억울한 누명을 벗기까지 온갖 난관을 극복해 내는 인간승리를 다룬 영화다.

그러나 감독은 피해자가 무죄 선고를 받은 것에 대해 크게 기뻐하지 못한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사법부가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지만, 책임지지 않는 그들의 사죄에는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악귀 경찰들이 축출되지 않고 상존하리라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이 영화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유전무죄의 일반화가 있고, 편견을 악용하는 법 집행자들이 있고, 그걸 방치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고, 더구나 범법자들을 다루는 사법기관의 불투명성이 있다. 공권력을 다루는 기관이 인권 사각지대라는 사실의 충격이 감독이 메가폰을 들게 하는 원인인 것이다. 영화 '재심'은 우리가 미연에 예방하지 않고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며 수수방관하다가는 '재심' 처럼 나중에 바로잡더라도 빼앗긴 삶은 되찾을 수 없다는 뼈아픈 경종을 울린다.

무엇보다 영화 '재심'은 개봉 16일만에 220만 관객을 넘겼다는데, 문제를 자각하고 사법기관을 관찰하는 눈이 천만 이상 생겨나는 것이 당장에는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