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자들만이 진실을 인양할 수 있다. 질문은 무엇보다 진실을 지키는 방법이다. 인류사에서 진실이 침몰한 적은 없다.

광장에서는 거짓을 향한 '민중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내일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2017년 1월 9일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이틀 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얼어붙은 몸으로 춤을 추었다. 뼈와 근육이 움직일 때 마다 투둑 툭 얼음이 튀었다. 이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가쁜 숨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웅얼웅얼 희미하고 숨소리만 힉힉 언 벽에 부딪혔다.

그날 살아서 돌아온 이들의 하늘에는 해가 뜨지 않았다. 무려 1000일이 흘렀는데도 암흑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아마도 저희가 잘못한 게 있으면 그것은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성인이 되었지만, 그날 이후 찬 바다에서 성장을 멈춘 친구들의 나이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죄스러움은, 구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했다고 여기는데서 비롯한다. 헬기도 오고 해경도 오고 구조대가 온다기에 주변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침몰하는 배를 빠져나온 것인데, 때늦은 구조대의 손길은 배 안에 고립된 이들을 건져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친구의 손을 잡고 나오지 못한 회한에 짓눌리는 것이다. 거친 바다 위에서도 안락했던 세월호 선실이 악마의 아가리가 되어 밤마다 덮치는 것이다. 이렇게 뜻밖의 재앙을 겪은 이들은 평온한 현실을 믿지 못한다.

더구나 18세의 꽃다운 나이, 그 예민했던 감수성의 촉수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만신창이가 되었다. 아비규환,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와는 거리가 먼 현장, 배신에 상처를 입고, 무방비상태에 절망하고, 나약하기에 부서지고, 불가항력 앞에서 혼비백산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용돌이 속으로 허망하게 빠져 들어간 것은 우리들의 푸르름이었다. 망망한 바다 속으로 세월호가 자취를 감추었을 때 우리는 모두 소재불명 상태가 되었다. 내가 선 땅은 어디이며, 너와 나는 누구이며, 우리가 이루었던 공동체는 무엇이었던가.

304명을 수장시킨 세월호 이후 우리가 줄곧 스스로에게 던져 온 질문이다. 광장으로 몰려들었던 이유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서로의 민낯을 비춘다. 세월호를 탈출했던 당시 단원고 학생 아홉 명도 광장으로 나왔다. 더 이상 비난받을 것을 두려워하며 숨어있지 않겠다고 한다.

나중에 친구들을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고, 우리와 너희를 멀리 떨어뜨려 놓은 사람들 다 찾아서 책임 묻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산자의 하늘에는 해가 뜨지 않고

우리는 세월호에 동화됐다. 불의의 사고를 피하기 위해 급선회하다 길을 이탈하고 말았다. 소용돌이를 만나 넘어진 채 길을 잃었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바다를 알게 되었다. 생명을 품고 넘실거리지만 길을 벗어난 자에게는 한없이 흉포하다는 것을.

우리가 사는 현장이 얼마나 불안한 곳인지를, 개인의 힘으로는 미래의 불확실성이나 불안정성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감당할 수 없는 불안을 덜기 위해 발생한 공동체가 국가라는 사실을, 새삼 극명하게 자각했다. 멈추지 말아야 할 곳에 멈춘 우리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고 소재불명의 국가 공동체를 발견했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바로 눈앞에서 차디찬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국가는 단 한 명의 아이도 구하지 못했다. 복원력을 잃은 세월호 좌현이 90도 가량 기울어진 채 침수중이라는 사고 보고가 해경 접수된 시간은 오전 7시 30분께다.

본격적으로 침몰이 시작된 10시 30분께까지 두 시간 가량은 구조대가 물 위에 떠있는 배 안으로 들어가서 승객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인근에 있었을 군함 한 척에 승선하는 해군 정도, 혹은 속도가 생명인 공군의 수송헬기 10여 대 정도면 유속이나 수심의 장애를 전혀 받지 않는 상황에서 구조를 완수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세월호의 선미가 바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또 다섯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긴 시간을 발만 동동 구르며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때늦은 구조 활동에 나선 애먼 구조대원들의 잇따른 순직에 또 가슴을 쳐야 했다.

세월호는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여객선이다. 출발은 단순한 해상교통사고였다. 하지만 국민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대형 철선 안에 고립된 순간, 국가는 재난대응 매뉴얼을 즉각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만이 군대를 사고현장에 보낼 수 있다. 따라서, 세월호가 기울고 있을 때, 침몰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즉시 대통령은 최단시간에 인명을 구조할 최적화된 정예요원들을 출동시켜야 했다. 그러나 사고현장을 얼쩡거리는 무능한 해경은 경악과 충격 실황의 조연일 뿐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구조할 수 있을 때 구조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그랬다면 국가재난대응 시스템의 오작동을 드러내는 것이고, 대통령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가 명백하다.

그 책임이 실로 크다. 부작위 혹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희생자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기에 학살이라고 할만도 하다. 광장에서 산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이유다. 대통령은 어떻게든 세월호와 관련한 모든 책임의 중심에 있다.

소재불명의 국가, 너는 듣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그러나 여당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국에도 세월호 사건은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며 빼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혹자는 "세월호 들추는 소리들 이젠 지겹다"고 하며, 혹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체가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빈축한다.

또한 박 대통령은 탄핵사건을 심판 중인 헌법재판소에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에 대해 제출했는데, 이 1001일 만에 공개한 자료들은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 관저 집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보고서를 받아 검토했다"는 게 대종을 이뤘다.

세월호 사고를 처음 알게 된 시점이 언제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검토를 어떻게 했는지도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검토 결과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를 했는지는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재는 보완해서 다시 제출하라며 답변서를 돌려보냈다.

대통령의 행적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예 잠적을 했거나 수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증언에 응하지 않았고, 그나마 증언에 나서더라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은 "제 할 것은 다했다"고 강변한다. 모든 정황은 대통령이 그날 주체적으로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리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대통령을 옹호하는 정당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았다. 진실도 함께 심해에 가라앉아있다. 그로인해, 우리에게는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한 이들이 있다. 함께 숨 쉬는 우리라고 다를 것인가. 살아갈 길을 찾는 일을 지겹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덕목이다.

모든 분야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유지하는 일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유기한 것에 대해 추궁하고 재발을 막고자 하는데, 힘을 모아 한목소리로 주장을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국가가 청맹과니에 마이동풍이니 더욱 견고한 스크럼과 더욱 체계적인 저항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장기전을 피할 수 없다면 더욱 정치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고 줄기차게 나아갈 수 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명령한다.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묻고 거듭 묻고 또 물어라" 그래서 불안을 어떻게 제거하는지의 본을 보여라.

진실한 자들만이 진실을 인양할 수 있다. 질문은 무엇보다 진실을 지키는 방법이다. 인류사에서 진실이 침몰한 적은 없다. 광장에서는 거짓을 향한 '민중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리네/ 내일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