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바람은 그렇게 모든 과거를 알기에 오늘 정확하게 미래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삶이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이니, 사람살이를 다루는 정치는 무릇 바람을 대하듯 해야 한다. 존중하고 수용하며 상생해야 한다.

'블로잉 인 더 윈드'는 바로 오늘 난마처럼 얽힌 이 나라 정국 한가운데서 불려져야 할 노래가 아닐까.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이며 화가인 밥 딜런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밥 딜런은 내달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불참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선약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그의 시상식 불참은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다시금 백열화하는 기제가 됐다.

반대론의 핵심은 스웨덴 한림원이 노래 가사를 노벨문학상으로 선정한 초유의 사실이다.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로 스코틀랜드 소설가 어빈 웰시를 꼽을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것(노벨 문학상)은 노쇠하고 영문 모를 말을 지껄이는 히피의 썩은내 나는 전립선에서 짜낸 노스탤지어 상"이라고 비난했다.

"음악 팬이라면 사전을 펴놓고 '음악'과 '문학'을 차례로 찾아서 비교하고 대조해 봐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CNN은 "앞으로 수많은 작사가들에게 노벨 문학상의 문이 열리는가"라는 시니컬한 반응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래 가사는 노벨상에 걸맞지 않다'는 반응은 올해 노벨상 후보로 오른 세계적인 문호들과 팝가수를 같은 반열에 놓고 단순 비교한 데 대한 분노와 무관치 않다. 포스트 모던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돈 드릴로를 비롯한 퓰리처 상을 수상한 필립 로스, 세계 판타지상을 수상한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밥 딜런에게 밀린 데 따른 팬들의 아쉬움이 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팬들의 안타까운 마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표현이 다원화 된지 오래인데, 인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표현의 장르가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 표현의 영역이 계급 층위를 이루니 각각 다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을 것 아닌가.

그래도 그런 소아적 수준에 머물며 막말을 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추종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라던가 필립 로스의 '휴먼스테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같은 작품들을 독해할 수 있는 수준은 될까 라는 의심 말이다.   

밥 딜런은 자기 삶의 영역에서 무엇을 이루었나. 1982년 작곡가로서 명예의 전당에,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그가 쓴 시는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과서로 널리 쓰이는 '노턴 문학입문서'에 실려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업적이 노벨상 수상 기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작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이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거기에서 비롯됐다. 자괴감, 멋쩍음, 계면쩍음, 혹은 그가 느꼈음직한 여러 감정상태를 더듬다 보니 표피적으로나마 그의 생애의 기록들을 마주치게 되었을 뿐이다.
  
어쨌거나 노벨위원회는 "밥 딜런은 위대한 미국 음악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고 평가했다. 다른 후보작들을 제친 발 딜런의 작품은 불어오는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바람 속에 있다네)'라는 곡이다.

노벨위원회의 평가는 '이 음악이 흑인 영가에서 영감을 얻고, 흑인들의 좌절과 염원을 가사에 반영하되, 밥 딜런의 음악 체계에서 새로이 구성되고 표현된 작품'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이 곡은 1962년 작품인데, 밥 딜런은 남북전쟁 무렵 흑인 노예들이 불렀던 '노 모어 옥션 블락(No More Auction Block)'에서 곡의 멜로디를 따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전쟁 반대·인권 평등을 테마로 한 프로테스트 송이다. 이 곡은 밥 딜런의 대표곡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 곡을 10분 만에 써내려갔다고 했다. 저항의 메세지를 가사에 담기로 명성을 날리 그였기에, 그 축적된 토대 위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다음은 가사 전문이다.  

"인간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만 한 사람의 구실을 하는 인간이라 불리는가/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밭에서 쉴 수가 있는가/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다녀야 영원히 포탄 사용이 금지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산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존재해야 바다에 쓸려나갈까/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생존해야 자유를 허락받을까/ 어떤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고개를 돌려야 본 것을 못 본 척 할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어떤 사람은 얼마나 여러번 위를 올려다봐야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귀를 가지고 있어야 다른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죽음이 있어야 그는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광란의 시대. 우리들이 직면한 질문들의 답이 바람 속에 있다는데, 그 바람은 무엇인가. 작가가 먼 곳에 있으니 추론할 뿐이다. 아마도 그 바람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바람이 아닐 것이다. 저 스스로 존재하는 바람, 자유자재하고 불변하며 영원히 사는 바람일 것이다.

이 세계를 가득 메우고, 수많은 형태로 존재하지만 한 덩어리인 바람. 그래서 바람 하나의 나타남은 전체의 밀림에서 비롯한 일각의 돌출, 그것은 주변 변화에 대한 상호작용. 앞서는 것 뒷 서는 것, 혹은 위에 있는 것과 아래 있는 것이 서로 다를리 없다는 증거. 바람은 그렇게 모든 과거를 알기에 오늘 정확하게 미래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삶이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이니, 사람살이를 다루는 정치는 무릇 바람을 대하듯 해야 한다. 존중하고 수용하며 상생해야 한다. '블로잉 인 더 윈드'는 바로 오늘 난마처럼 얽힌 이 나라 정국 한가운데서 불려져야 할 노래가 아닐까.

오늘 바람들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에 사무쳐 운다

해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온몸을 감싸고 있는 바람 속에 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고 반문하는 이 노래를 모두가 함께 합창해야 하지 않을까.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기에 늘 새로운 바람을 삼키고 내뱉으며 낡은 부조리를 토해내고 정화해야 하지 않을까.

밥 딜런 자신은 정작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 곡조의 전신인 '노 모어 옥션 블락(No More Auction Block)'은 흑인들이 일할 때 부르는 노래일 뿐이라고 했다. 무엇이면 어떠랴. 다만 우리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문화의 축적 위에서 보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

무엇보다 노벨위원회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대중가요의 가사를 노벨문학상으로 선정한 사실 자체 만으로도 밥 딜런의 '바람' 노래의 영향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의 평등을 구현한 역사적인 사건은 불어오는 바람이 일으킨 것이다.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행진곡으로 불렀던 베트남전 반대 시위자들이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끈 워싱턴 행진 시위자들이 2016년 바람으로 돌아와 노벨위원회를 기점으로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노래 한 곡이 이렇게 위대한데 우리의 대통령은 왜 이렇게 왜소한가. 코 앞에 닥친 태풍을 애써 외면하며,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자신을 축출하는데 쏟아부으라고 강요한다.
 
청맹과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 바람들은 이제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아니라,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에 사무쳐 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마지막으로나마 제대로 된 대통령 폼 잡고 물러나 준다면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을 텐데, 되레 자신이 쥔 권력으로 형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 그의 비참한 말로가 우리들 자화상인 듯하여 또 통곡한다.

아아, 정녕 청와대에는 바람도 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