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돌아서서 다시 보는 축제장은 실로 블랙홀이다. 국화향으로 몽롱하고 흥분에 들뜬 사람들 소리에 멍멍한 그곳에서는 온갖 불법이 판을 치며 시민들의 호주머니에 빨대를 꽂고 있었다.

축제가 끝난 뒤 시민들에게 국화를 나눠주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라며 금지하면서, 관변단체에 부스를 몰아주는 것은 지극히 효과적인 기부행위라는 점을 검토하지 않은 걸까.

익산 천만송이 축제가 지난 6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에도 새로워진 국화 조형물들과 그 사이를 가득 메운 가을 향기에 시민들은 흠뻑 취했다. 그 열흘 동안 가을은 농익어가는 국화 향기에 아득히 깊어졌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무엇이든 바람에 실려 보내지 않고는 몸살이 나 못 배길 것 같은 그런 날들이었다.

국화축제는 이렇게 다채로운 볼거리로 또 한 번 각광을 받았다. 그렇다면 축제의 다른 요소인 먹거리는 어땠을까. 축제장 북측 입구에서 중앙 광장 조형물에 연접하는 지점까지 통행로 절반을 점유하고 줄지어 선 수십개의 천막 안팎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의 어깨는 덩실거리고 발걸음은 사뿐했다.

꽃밭이거나 천막 안이거나 꽃을 찾아 날아든 벌떼 같은 시민들로 북새통이기는 매한가지였으나 '꽃보다 음식'이라 할 만했다. 일선 주민자치회 별로 배분된 천막 안에는 통장 반장 이장들이 일사불란하게 서빙을 수행했다. 무심코 지나치면 모든 것이 축제의 일부였고,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축제장을 둘러싼 도로를 막 건너가면 주변에선 완전히 다른 목소리들이 들린다. 가을이 다가기도 전에 덮친 설한풍 속에서 시름이 깊어가는 요식업소들이 그 진원이다. 가뜩이나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자치단체가 나서서 고객들을 가로채고 있으니 죽을 맛이다.

돌아서서 다시 보는 축제장은 실로 블랙홀이다. 국화향으로 몽롱하고 흥분에 들뜬 사람들 소리에 멍멍한 그곳에서는 온갖 불법이 판을 치며 시민들의 호주머니에 빨대를 꽂고 있었다. 축제가 끝난 뒤 시민들에게 국화를 나눠주는 것도 선거법 위반이라며 금지하면서, 관변단체에 부스를 몰아주는 것은 지극히 효과적인 기부행위라는 점을 검토하지 않은 걸까.

자치단체가 관변단체를 무분별하게 지원하다가 선거법 위반 논란과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해, 그 지원기준을 까다롭게 하고 심의를 강화한 지 오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익산시의 시계는 관선시대로 역주행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천막은 또 통행로 가에 조성된 공원의 줄지어 선 벚나무를 위시한 조경수들을 점령했다. 어떤 천막들은 나무들을 천막 안에 집어넣기도 했다. 나무들은 천막을 지지하는 동아줄에 묶이고 전등 가설을 위한 전깃줄 지지목이 되었다. 그것이 술맛을 돋우는 운치라고 자랑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작년에도 그 자리였는데 올해 또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운빨도 좋다고 자랑한다. 그가 나무에게 치명적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을까. 끈으로 감고 햇빛과 바람을 차단하고 아닌 밤중에 환한 전깃불을 밝혔다. 그 열흘은 이른바 나무들에는 지옥훈련 기간이었다.

어떤 주민자치회는 체육공원에서 청소년수련관과 예술의 전당으로 통하는 계단 전체를 점령해 버렸다.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해서 시간적·물적 피해를 입혀도 좋을 만큼 통행 공간 점유의 실익이 크다는 말인가. 축제장의 먹거리 부스 하나를 더 늘리기 위해 기본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법을 익산시는 따로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이처럼 공원을 훼손하고 기능을 마비시키는 행위는 근원적으로 불법이다. 체육공원은 시민들의 혈세로 조성되었기에, 익산시의 체육진흥과는 그것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불법을 자행하도록 허용했다면, 그 명목이 공원을 보호해야 할 법익보다 상위에 있는가. 그 평가의견을 밝혀야 하는 지점이다.

그런 검토 자체가 없었다면, 담당 공무원들은 직무를 유기한 것이니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천막을 지지하기 위해 땅속에 박아 넣었던 팩들은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손하기 마련이다. 훼손된 공원 복구를 위해 또다시 혈세를 쏟아부어야 한다.

무엇보다 공원 내에서의 상행위는 금지되어있다. 익산시도 그 모법을 근거로 조례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부스를 분양받은 각 주민자치회는 단대목 장사로 제법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누가 보아도 상행위인데, 익산시는 아니라고 한다. 주민자치회는 상인단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서 판매하는데 주체가 상인이 아니면 음식장사로 보지 않는다니, 상인이 아닌 익산시민 누구나 축제장 부스에서 음식을 팔아도 상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익산시 공무원들은 이런 궤변이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심각한 무지가 드러난다.

그래도 위법 행위를 '주체론'으로 모면하려고 하니 주체인 주민자치회를 보자. 주민의 편의와 복리를 증진하고 주민 자치 기능을 강화하여 지역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단체다. 일선 읍·면·동 단위 행정 기구와 자발적인 참여 주민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 상인단체는 명백히 아니다.

그렇다면 백번 양보해 축제 난장에서 벌어들인 전액을 주민의 편의와 복리를 증진하는 데 사용한다면, 불법 상행위를 눈감아줘야 한다는 관점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통·리·반장들의 음식장사 서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주민자치회는 수익에서 인건비와 1년 동안의 자치회 운영비를 뺀 나머지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고 있다.

열흘 동안 고수익을 보장해 주고 수익 중 일부를 불우이웃 성금으로 기부하라고 하면 거절할 시민이 어디 있겠는가. 어쨌거나 주민들의 상행위는 불변의 사실이다.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불법이다. 그 책임은 익산시장 이하 관련 공무원들이 공동으로 져야 한다.

그런데 그 천막 입구에서는 해당 지역구 시의원들이 이른바 삐끼 노릇을 하고 있다. 그 표정이나 태도는 자원봉사자를 표방하듯 떳떳하기만 하다. 그들의 뜻이 어떠하든 주민자치회의 수익을 증대하는데 기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서빙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의원들은 지역구의 통·리·반장들과 한살이다. 달리 말할 수가 없다. 그들 대부분은 영업의 시작과 끝을 지킨다. 유급 정치인들이 집행부를 견제하는 본연의 책무를 버리고, 온몸으로 일부 지역구 주민들의 사익 창출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위가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지는 않는지 선거관리위원회에 물어라도 보았을까. 비단 그들뿐인가. 일선 읍·면·동장들도 열흘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행사장에서 죽쳤다. 대관절 그곳이 자신이 명 받은 직무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당당하게 손님들을 맞이했다.

일선에서는 열흘 동안 관리자 공백이 생겼다. 근무지 이탈이다. 시장이 그것을 명하거나 허용한 일이 없을 테니 무단이탈이다. 중징계 대상이다. 익산시의 근무기강이 어쩌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는가. 숙고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부당 행정행위는 향토 의식을 좀먹어

익산시의 마인드와 행태가 이 모양이니, 축제장과 연접한 도로변에 불법 노점상들이 판을 친다. 시유지 도로를 점용하고 있어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허가를 내줄 수도 없고 그들 업자들은 애당초 허가를 받을 생각도 없다. 게다가 그들은 타 지역 상인들이다.

축제장이나 전국 장을 떠도는 장돌뱅이들이다. 익산시 담당공무원들은 그들을 강력하게 단속하지 못하는 이유로 '그들이 축제를 깽판 칠까 봐서'라는 점을 든다.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국화축제장 주변의 무허가 천막들과 축제장 안 쪽의 천막을 번갈아 살펴보면, 주민자치회가 운영하는 식당들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각 천막들의 먹거리는 파전·닭곰탕·순대·잔치국수·인삼튀김·도토리묵 따위가 대종을 이루며, 천편일률적인 틀에 갇혀 있다.

시민들은 먹는 음식 조차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볼거리에 비교할 때 먹거리가 궁색스럽기 짝이 없다. 먹거리 부스는 익산을 대표하는 식당들 중에서 선정해야 한다. 다양한 메뉴들이 입점할 수 있도록 적절한 안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원을 훼손하지 않고 주요 통행을 방해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축제의 먹거리장을 서측 주차장에 한정시키면 된다. 먹거리 부스를 공정한 공모로 민간 요식업체들에 배분한다면 지금 횡행하는 온갖 불법행위들을 근절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경제에도 기여하게 된다.

행정청의 모든 행정행위가 법으로 위임받은 것이고, 그 관리행위는 법 밖에서 불가능하다. 민간에는 엄정한 법이 행정에는 관대하다면, 그것은 자기정체성 상실을 방증한다. 장차 공익을 훼손하는 길목에서 누가 무늬만 공무원들에게 통제받으려 하겠는가.

축제란,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시민 모두를 기껍게 하며, 향토경제의 선순환에 기여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자긍심을 높이는 효과를 지향한다. 자치단체가 자기 존재의 덕목 가운데 애향심 함양을 뺀다면, 과연 '자치단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