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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정글의 나라

편집국장 공인배

그들의 퍼포먼스 주제는 '도시를 버리고 야생으로 돌아가라'다. 농민들이 제일 먼저 목도했고, 노동자들이 피비린내의 돌풍을 예감한다. 이 나라 대통령이 국민들을 야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성년에 이른 사람 정도면 싸움의 속성을 잘 알리라. 이겨야 한다. 힘이 더 세야 한다. 빈틈을 노리고, 교란하고, 밀어붙여야 한다. 파죽지세의 공격으로 이쪽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그렇다. 싸움이란 적자생존을 위한 파괴다.

그러나 어디 싸움이 일방의 피해에 그치던가. 불나방 처럼 전장에 뛰어들어 제 죽을 줄 무르고 무자비하게 날뛰던 인류가 도시를 이루며 싸우지 않고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것은, 싸움이란 공멸을 부른다는 깨달음에서 비롯했다.

힘은 싸움을 억지할 때 그 가치가 크다. 그러면서도 상대방 위에 군림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지 않을 때 그 힘은 지속가능하게 된다. 득의만면한 얼굴을 보이지 않고,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칼을 갈지 않으며, 혹여 다툼의 불씨를 만들지 않을까 삼가고 또 삼간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생존의 본질은 쟁투다. 섭취하고 배설하는 모든 행위가 결코 평화적인 것은 아니다. 다른 동식물의 죽음없이 생존은 불가능하다. 죽음을 잘게 부수고 분해하고 흡수하는 일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심장이 뛰고 근육이 활동하는 것은 결국 먹기 위해서다. 머리는 항상 먹는 환경을 구상하고 먹는 방법을 강구한다. 이렇듯 삶이란 잔혹사의 점철이다. 이러한 섭리에 천착하면 이 세상은 오직 먹는자와 먹히는자로 나뉘는 이분법에 지배되리라.

하지만 그런 야생이란 얼마나 불안하고 피곤한 곳인지 인간들은 잘 안다. 유전자에 기록되어있다. 인류의 도시란 야성을 제어하고, 그보다 나은 것으로 보상한다. 합의로 방향을 결정하는 소통망은 그렇게 야성의 비움으로 공간을 확보하며 공명한다.

얼마나 도시다운가는 야성을 얼마나 망각했느냐로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야성을 깨우는자는 도시의 공적이다. 도시의 지도자란, '싸우지 않고도 협력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도시의 정신을 일깨우는 존재다.

집중된 힘을 분산시키고, 독점되는 부를 재분배한 것은 그 소임의 핵심 지표다. 그러나 경찰이 맨손인 초로의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해 중태에 빠지게 하고도 책임지기는 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은 가운데, 행자부는 지난 25일 끝내 숨을 거둔 백남기 농민의 각 지역 분향소 설치를 제약하면서 도시를 위협했다.

이들 기관이 도시의 안위를 지키는 첨병이라는 점에서 도시는 혼란스럽다. 특히, 도시를 신봉해 온 시민들은 믿을 수 없는 현장에서 길을 잃었다. 농민 백남기는 지난해 11월 14일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원(한 가마니 80kg)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 농민 120명과 함께 전남 보성에서 상경했다.

그러나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서 차벽을 치고 막아선 경찰은 집회 행진을 하다가 차벽 앞으로 다가간 백씨를 향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쐈다. 강한 물대포를 직접 맞은 백씨는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분사는 그가 쓰러진 뒤에도 15초 이상 이어졌다. 심지어 그를 구호하는 응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쐈다.

법원도 경찰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제 공권력을 부당하게 휘두른 책임자들이 살인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자신들이 기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어 보인다. 이는 국가권력이 훼손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대통령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권력이란 법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 도시의 정신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국정원 문제를 비롯해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에 대한 의혹 등 일련의 과정에서 궤도를 벗어난 권력과 그 권력을 옹호하는 국가권력을 목도했다.

불완전한 국가권력일수록 권위를 잃을 것을 노심초사한다. 행정부가 멋대로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입법권 침해를 바로잡으려던 국회의원은 당에서 축출되는 나라가 된다. 국회가 의결한 장관 해임건의안을 걷어차는 대통령이 된다.

집권여당 대표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문제삼아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여당 국회의원들도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며 장외로 나갔다. 여당 의원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법 모색'이라는 도시정신을 이토록 가볍게 내팽개칠 수 있는 배경에는 대통령이 있는 것이다.

'과잉' 책임을 모르쇠로 일관

농민 백남기의 공권력에 의한 죽음에 대해 국가가 애도하기는 커녕, 그 책임자들이 사과는 커녕 최소한의 유감표명 조차 하지 않는 배경이다. 야당이 아닌 여당 의원들의 장외투쟁은 박근혜 나라의 결정판이다.

국민을 보호할 생각이 없으며, 폭력을 휘둘러 국민을 죽이고도 되레 폭력의 근원이 되는 권력에 흠집이 날까 전전긍긍하는 행태 앞에서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이 나라의 정부와 여당은 오직 정글의 법칙으로 국민들을 야생에 길들이려 한다.

국민들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형에 노출됐다. 내부에서는 부의 편중이 갈수록 심화되고 외적으로는 사드배치 결정과 대북자극 일변도로 고립무원에 떨어졌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야생의 국가는 존립할 수 있는 것인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야생의 나라는 얼마나 지속 될 것인가. 박 대통령은 돌아봐야 한다. 자신에게 부여한 권력은 도시에서인가 정글에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