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진앙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늘 그렇듯이 인간은 이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경주에 있는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이 후쿠시마 원전과 오버랩 됐다. 그런데 이 나라 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지진에 둔감하다.

지난 7월 21일 부산과 울산 지역에서는 한동안 가스냄새가 발생했다.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랐다. 그러나 당국은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자 가스는 공기 중에서 사라졌고,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이윽고 주민들의 후각 기능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다른 냄새를 가스냄새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당국의 조사결과 아닌 결론에 따라서.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경북지역 주민들과 학계에서는 가스냄새가 지진의 전조현상일 수 있다는 의견을 계속 제기했다.

지진이란 판과 판의 충돌에서 비롯하는 것이고, 판과 판의 경계부에 셰일과 같은 암석 등 에너지가 분포하는데, 지진이 진행되면 암석이 옆으로 움직이며 파쇄가 되면서 가스가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부산과 울산지역에서 생겼던 가스냄새는 셰일가스일 가능성이 높고 유황냄새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수백 명의 주민들이 맡았던 가스냄새는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묵살했고, 지진의 전조현상이란 건 없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서로 충돌하며 그것은 괴담이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7월 22일 새벽 4시 31분 25초에 익산시 북쪽 9km 지점에서 규모 3.9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앙에서 200km 떨어진 서울과 부산에서도 지진이 감지됐다. 판의 경계부에서 거리가 먼 내륙지역이어서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됐던 익산의 지진은 나라 안팎에 적잖은 충격파를 안겨줬다.

전북 내륙지역의 지진은 1년 전에도 있었다. 2015년 12월 6일 오전 5시 32분께 전주시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진 북위 35.9도, 동경 127.4도 지점(진안군 일대로 추정)에서 규모도 비슷한 3.3의 지진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지진으로 인접한 완주, 전주지역 주민들은 쿵 소리와 함께 미진을 느꼈고, 소방서에는 지진신고 전화가 쇄도했다. 지진 관측 이래 전라북도에 크고 작은 약진들이 여러 차례 관측되었지만, 사람이 실내에서 현저하게 느낄 수 있는 리히터 규모 3.3~3.9의 지진이 내륙지역에서 발생하자 전라북도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종이 울렸었다.

90년대에만 모두 8차례 지진이 발생했고, 6년 만에 발생한 당시 지진 등 발생횟수가 늘고있는데다, 진앙도 바다가 아닌 도내 내륙으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강진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잇따랐다.

하지만 전라북도나 도내 14개 시군 어느 곳도 더 이상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몇 개의 도내 신설 공공기관 건물에 내진설계를 적용한 것이 고작이다. 그렇게 안일한 태도로 시간을 좀먹은 지 1년 만에 익산에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당국은 규모 3대의 지진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도식적 해설을 되풀이하며 불안에 떠는 국민들을 다독일 뿐이었다. 위기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뻘쭘해졌다. 지방정부도 별거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떨며 혈세를 축낸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지레 걱정하며 뒷짐 지고 먼 산을 바라봤다.

그 덕에 전라북도는 지진 진앙 감지나 대응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고, 지진이 발생한 정확한 이유도 모른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먼 나라 그들만의 재앙일 뿐이다. 영화 혹은 소설 속에나 존재하는.

6년 전 아이티에서는 규모 7.2의 지진으로 23만 명이 죽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칠레에서는 규모 8.8의 지진이 발생했다. 전 세계는 지진의 공포에 빠졌다. 그리고 약 10여일 후 한반도 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리히터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거대한 쓰나미가 덮친 일본 도호쿠 지방은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다. 116만채의 건물이 무너졌고, 2만8,600여척의 어선이 파손되거나 전복 또는 유실됐다.

이로 인해 1만7,333명이 사망하고, 3,155명이 실종됐으며, 2만6,992명이 부상당했다. 이 지진은 우리 돈으로 184조원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산된다. 쓰나미는 또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다. 수소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모두 2만여명의 희생자가 양산됐고, 여전히 피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17만여명에 달한다.

후쿠시마 원전 폐로까지는 40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도호쿠 지방은 아직도 복구 중이다.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말마따나 세계 2차 대전의 종결 이후 65년간 일본에 닥친 가장 거칠고 가장 어려운 재난이었다.

속수무책 재앙에 하늘만 원망할 것

이후 한반도에서는 수십 차례의 지진이 발생했고, 급기야는 지난 12일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관측 이래 최강의 지진이다. 익산 지진 이래 2개월만이다. 앞서 부산과 울산에서 감지 된 가스냄새는 경주 지진의 경보였을 공산이 높다. 이후 경주에서는 하루 평균 45번, 현재까지 총 400여차례의 지진이 일어났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가장 많은 횟수의 여진은 13회로 1996년에 발생한 영월 지진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경주 지진 이후의 여진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경주를 떠받치고 있는 양산단층대의 형성된 시기가 오래되지 않아 지질구조가 연약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국이 흔들렸다. 지진 직후 카카오톡 등 SNS가 불통이 됐다. 사찰 건물이 무너지고 주택 기와가 부서져 떨어졌으며 승용차 앞유리가 깨지는 등 사고가 속출했다. 쿵쾅 덜컹덜컹 쩌억 소리와 출렁거리는 진동에 놀라 건물 밖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갈라진 도로를 목도했다.

진앙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늘 그렇듯이 인간은 이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경주에 있는 방사능폐기물 처리장이 후쿠시마 원전과 오버랩 됐다. 그런데 이 나라 정부는 지금도 여전히 지진에 둔감하다.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아이티와는 전혀 다른 안전한 지층 위에 놓여있다'는 협소한 분석의 기반 위에서 무사태평하기 그지없다. 3~4초대로 긴급 지진 속보를 내는 일본의 지진 감지와 경보시스템은, 역단층을 일으키는 나라만의 것이라는 인식이 그 기저에 깔려있다.

그러나 판의 충돌 문제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상식이다. 판들의 충돌이 일어나면 연접한 판이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진앙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 초~ 수 분 내에 지진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의 지진 기록이 많이 남아있으며, 조선실록에는 1,900여건의 지진 기록이 있고,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깔려 죽었다"는 등의 규모 6.5 이상으로 추정되는 강진 상황들이 묘사되어있다.

그런데 정부의 지진에 대한 태도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제대로 대비하지도 않고 대응 매뉴얼도 없으며, 경각심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지진운(물결무니 구름)이 익산 지진을 예보하고, 수십만 마리의 개미떼 이동과 가스냄새(유황냄새 유사)가 경주 지진을 예보했지만, 자연이 주는 경보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촉각을 곤두세워 위험을 감지해야 할 마당에 육안으로 확인되는 조짐을 일상적인 일로 일축하고 불안을 봉합하기 일쑤다. 사람으로서 할일을 다하지 않고 재앙이 일어난 뒤에는 하늘만 원망하는 무지하고 불성실하며 무기력한 나라가 아닐 수 없다.